성덕, 🎤 당신의 X는 당신을 선택하지 않았습니다 🎹

하늘이 무심한 건지 너무 많은 걸 바란 건지, 이 성덕은 하루아침에 제 모든 걸 부정당해 버렸다. 좋아하는 연예인이 범죄자가 되어버린다는 건 내 과거와 현재를 한순간에 짓밟혀버리는 일이다. 예상치도 못한 교통사고. 운전자는 다름 아닌, 내가 누구보다 사랑했던 그 사람이고, 그 사람은 나 몰라라 부리나케 도망가 버렸다. 결국 그와 함께했던 팬들, 특히 학창 시절을 다 바쳐 애정을 쏟는 한국의 젊은 여성들은 그로 인해 제 인생의 일부가 절단되는 듯한 고통을 겪는다. 분노의 고통, 상실의 고통, 후회의 고통 그리고 동시대의 여성들에게 해를 끼쳤다는 자책의 고통까지 말이다.

“범죄자가 되어버린 연예인의 팬은 피해자인가 가해자인가?” 감독은 이 물음에 ‘둘 다’라고 답한다. 아무것도 모르고 좋아했다고 하기에는 어쩐지 그와 연루된 친구들까지 너무나도 익숙해 그 자체로 떳떳할 수 없는 게다. 제 순수한 사랑이 조금은 범죄의 동력이 된 것만 같아서. 엄청난 분노가 끓다가도 그를 좋아했던 시절들을 들춰내다 마음이 약해지는 제가 싫어서. 하루에도 몇 번씩 모순된 감정을 느끼다 끝내 자신을 탓하게 되는 이들이 있다.

왜 팬은 혹은 과거에 팬이었던 사람들은 쉽게 그 연예인들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걸까. 그와의 추억이 너무 많아서? 그가 무슨 짓을 했는지 까먹어서? 원래는 착한 사람이라서 또는 나를 위로해 준 사람이라서? 그와 나 사이에 깨지지 않는 믿음이라도 있어서? 아니면 그동안 보여준 모습이 가짜일 리 없어서? 어쩔 수 없지만 함께 쌓아온 서사가 있어서? 이미 신과 같은 존재라서? 그마저도 아니면 그 사람을 부정하면 나 자신도 부정하게 되니까? 이미 나의 일부이기 때문이니까?

여하간 저마다의 이유로 범죄자가 되어버린 우상을 응원하는 이들도 있다. 범죄를 저지른 연예인의 곁에 남은 팬들이 있고, ‘박근혜 대통령님’께 편지를 보내는 추종자들도 있다. “우리보다 더 소중한 분이 힘을 내셔야 하니까.” 태극기 손수건을 목에 두르고, 자연스레 팬레터 비스름한 편지를 눌러쓰는 감독의 그 모습에 웃음이 나다가도 어쩐지 찜찜해지는 이유는, 전혀 이해하지 못할 것만 같았던 이들에게서 내 덕질의 몇몇 순간이 스쳐 가기 때문일 테다.

그럼에도 감독은 여러 가능성을 찬찬히 경유하는 질문을 던지고, 누군가의 팬이었던 여성들은 저마다의 답을 내린다. 덕질에 대한 열정을 앗아가 버린 연예인과 곁에 남은 팬들에게 정신 차리라고, 연민조차 최악이라고 말한다. 그의 만들어진 ‘깨끗하고 순진한’ 이미지를 좋아했다는 걸 인정해 보기도 한다. 내 우상도 그저 사고 치고 다니는 남자 아이돌 중 하나였구나 생각한 이도, 살아있는 사람은 영원한 우상이 될 수 없다는 깨달음을 얻은 이도 있다. 연예인도, 사건도, 감정도, 생각도 제각각인 (구)팬들이지만 결국 범죄 사실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일침을 가하는 이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