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럼버스, 🌿 여름의 빛깔, 우아함 그리고 치유 🌿

한편 그 사이로 늦여름의 푸르름을 오가는 작은 인간 두 명이 보인다. 한 명은 키가 크고 말쑥한 캐주얼 정장을 입었으며, 영 까칠한 눈매를 가졌는데 그럼에도 조곤조곤 대답하는 낮은 목소리가 퍽 어우러진다. 다른 한 명은 자유롭게 곱슬거리는 중단발의 머리카락과 느껴지는 분위기에서 비롯되는 특유의 나긋나긋함을 가지고 있으나, 그의 깊은 눈을 보고 있으면 이와는 또 다를 그의 사정이 궁금해진다. 나이나 성별, 거주지도 전혀 다른 이 두 사람의 이름은 진과 케이시다.

이들은 과연 어떤 연유로 이곳에서 스치게 된 것일까? 진은 원치 않았으나 콜럼버스에 당도했고, 케이시는 자진해서 이곳에 머무는 중이었다. 둘은 어느 평범한 낮에 처음 마주친 이후 담배 한 개비로 말문을 튼다. 이후 계속해서 이어지는 서로 간의 대화는 나름의 박자로 일렁이며 콜럼버스를 맴돈다. 함께 바라보고 있는 이 건물의 양식 속 의미를 공유하는 동안 그들 삶의 일부분도 조심스레 드러나며 또 흘러가는 중이다. 그 속도나 세기가 글로 전달하기엔 터무니없이 부족하기 때문에, 여기서부터는 영화를 직접 보기를 권한다.

〈콜럼버스〉는 다양한 길이의 대화로 이루어진 산책과도 같아 보는 사람들만 준비가 되어 있다면 쉽게 그들의 대화에 빠져들 수 있다. 영화의 모든 장치들이 등장인물이 내뱉는 말과 그가 겪고 있는 심정을 있는 그대로 전달하기 위해 애쓰고 있으니까. 어떤 장면들은 배경음악 대신 차라리 공백을 택한다. 한동안 꼼짝없이 쳐다볼 때도 있고, 미끄러지듯 움직이며 사람들을 비추기도 한다. 그건 단조로운 관조가 아니다. 우리 안에 잠겨 있는 그 무언가의 감정을 이끌어내기 위한 시도다. 평범한 톤과 그 사이의 쉼표, 일상의 백색 소음과 속삭임, 읊조리는 순간과 폭발적으로 감정이 쏟아져 나올 때의 기운들에 주목하기를. 그것들은 분명 이 영화가 선사할 수 있는 가장 큰 부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