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드 맥스: 분노의 도로·퓨리오사: 매드 맥스 사가, 🎸 혁명은 거친 사막의 끝에서부터 🏜

조지 밀러, 〈매드 맥스: 분노의 도로〉·〈퓨리오사: 매드 맥스 사가〉

2015년 모두의 심장을 뒤흔든 〈매드 맥스: 분노의 도로〉에 이어, 후속작 〈퓨리오사: 매드 맥스 사가〉 가 9년 만에 우리를 찾았다. 모든 것을 빼앗기고 세상에 홀로 내던져진 퓨리오사가 꿈꾸는 것은 부조리로부터의 탈출과 모든 약자들의 구원. 결승점까지 풀악셀로 돌진하는 미친 페미니즘 서사.

🎸 혁명은 거친 사막의 끝에서부터 🏜

조지밀러, 〈매드 맥스: 분노의 도로〉·〈퓨리오사: 매드 맥스 사가〉

2015년작 조지 밀러 감독의 〈매드 맥스: 분노의 도로〉 (이하 분노의 도로)를 개봉관에서 보지 못했던 것이 큰 후회로 남아있다. ’21세기 가장 뛰어난 영화’ (엠파이어, 2020) 로 꼽힌 〈분노의 도로〉의 재개봉 소식을 듣고 마침내 영화관에서 봤을 때 ‘극장이라는건 바로 이 영화의 상영을 위해서 만들어졌다!’ 라고 생각하며 마음속으로 오열했다. 처음 개봉했던 당시 영화관에서 이 영화를 따끈따끈하게 관람했을 수많은 동료 관객들에게 뒤늦은 질투심이 들 정도로 멋진 영화였다. 금속 의수를 찬 임페라토르 퓨리오사가 올라타 질주하는 거대한 은빛의 8기통 워릭, 거기서 느닷없이 튀어나온 다섯명의 아름다운 신부들, 추악한 워로드 임모탄과 그가 이끄는 자동차 부대의 귀염둥이(?) 빨간 쫄쫄이 기타리스트, 발할라에서의 맥만찬(McFeast)을 위해서라면 서슴없이 자살특공을 자행하는 워보이들까지 태어나서 처음 보는 것들이 현란하게 스크린을 채우는 것을 입 벌리고 감상했다. 주인공 퓨리오사가 달리는 워릭 위에서 신들린 사격으로 적들을 하나씩 없애버리고 미친 전투력의 맥스가 자동차와 맨주먹으로 임모탄의 부하들을 격파하는 장면은 다른 어떤 액션 영화에서도 찾기 어려운 쾌감을 선사했다.  

커다란 바퀴를 가진 멋진 빈티지 차량들과 흥미로운 월드 빌딩, 고막을 찢고 심장을 두근거리게 하는 음악과 액션으로 가득 차 있는 〈분노의 도로〉는 핵전쟁으로 인해 방사능으로 오염된 오스트레일리아를 그리는 포스트 아포칼립스 영화이다. 인류 문명이 붕괴된 후 야만적인 생활상으로 회귀한 인간 사회의 수직적 계급 제도를 자못 직관적으로 표현하는 시타델의 도시 디자인, 또 불렛 팜과 가스타운을 오가며 아쿠아콜라(물)와 가솔린, 우유와 음식 등의 생존을 위한 물자를 목숨 걸고 실어나른다는 세계관에 SF 장르 독자라면 사로잡히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우리는 이 세계에서 유일하게 물을 조달할 수 있는 도시 시타델과 그 지배자 임모탄 조를 만나고, 그가 야비하게 독점하고 있는 권력으로 인해 절벽 아래의 더럽고 어두운 땅밑에서 비참하게 살아가는 수많은 인간들을 본다. 이 비참함은 권력이 집약되어 있는 절벽 위쪽의 세상에서도 어김없이 나타나, 시타델의 문을 여닫는 중노동에 강제로 동원되는 수많은 기술자들과 워보이들은 물론이고 임모탄의 아이를 낳기 위해 강제로 임신을 하거나 모유를 생산하는 데 동원되는 여성들의 삶이 조명된다. 우리가 사는 현실과 멀지 않아 그리 낯설지 않은 웨이스트랜드의 세계, 자원의 불공정한 분배와 폭력과 불평등이 지배하는 세상에 퓨리오사가 있다. 그는 시타델의 기술자이자 군인으로 물자가 실린 워릭을 몰고 다른 도시로 이동하는 일을 하는데, 높은 자리에 올라 큰 힘을 가지게 되었지만 결코 현실에 순응하여 권력에 굴복한 인간이 아니라는 것을 곧 눈치챌 수 있다. 사실 퓨리오사가 모는 워릭에는 물자뿐만 아니라 사람들이 실려 있는데, 이들은 임모탄 조의 아내들이고 그들은 악랄한 워로드의 마수에서 벗어나 자유를 찾는 도망자이다.

〈분노의 도로〉에서 우리는 퓨리오사가 구하고자 하는 이 다섯 신부들을 알게 된다. 방사능으로 돌이킬 수 없이 오염되어버린 세계에서 이 다섯 명의 신부들은 오염된 땅의 영향을 받지 않은 채 건강하고 아름답게 자라난 매우 드문 여성들이었고 그 때문에 임모탄의 신부 노릇을 하게 된 비참한 이들이다. 과분한 권력을 쥔 독재자들이 으레 그렇듯 가진 것을 피붙이에게 물려주어야만 하겠다는 강한 자기보전적 욕망에 지배당한 워로드에게 속절없이 운명을 저당잡혀 버린 신부들, 이 중 두 사람은 이미 임모탄의 아이를 임신해 있고, 어떤 이는 중세시대의 유물이라 생각되었던 정조대를 차고 있는 끔찍한 모습이다.

이들의 첫 등장은 마치 명품 향수의 광고라도 찍는 것처럼 아름다운 사막 위에서 귀하디귀한 아쿠아콜라로 목욕을 하는 장면이다. 부서지는 햇살과 흩날리는 물방울 속에 느닷없이 나타난 흰옷의 신부들을 마주친 맥스의 아연함과 놀람이 어느 정도였을지 상상해보면 재미있다. 우리는 그들이 마치 광고의 모델처럼 처연하고 수동적인 미인으로서 보호받는 역할을 수행할 것이라 생각하지만 〈분노의 도로〉는 그런 고정관념을 완전히 파괴한다. 그들은 난데없이 나타난 적(맥스)과 어글리한 난타전을 맞닥뜨렸을 때에 멀리 떨어져서 이 싸움이 지나가기만을 바라지 않는다. 그들은 오히려 화면 가운데에 존재하며 적극적으로 싸우고, 상대적으로 부족한 전투력을 보완하기 위해 함께 힘을 합쳐 적을 제압하려 노력한다.

 

〈분노의 도로〉를 감상하며 우리는 이 신부들을 진정으로 ‘알게’ 된다. 스플렌디드, 케이퍼블, 대그, 토스트, 치도라는 이름을 가진 이 다섯 명의 신부들은 비록 퓨리오사에게 구해지는 대상이기는 하지만, 철저히 물화되어 본연의 목적을 빼앗겼던 자신의 인생을 구원하고자 하는 강한 욕망을 가진 인물들로 그려진다. 그들은 각자 다른 성격과 관심사를 가졌고 위험에 맞닥뜨려 지혜와 용기가 필요할 때 취하는 액션들도 각기 다르다. 임모탄의 총애를 한 몸에 받는 스플렌디드는 강하고 용기 있어 임신 중인 자신의 몸을 미끼 삼아 동료를 구하는 데 주저함이 없다. 워보이 눅스와 친구가 되는 붉은 머리의 신부 케이퍼블은 처음에 적이었던 눅스를 동료로 만들뿐만 아니라 그가 진정한 발할라에 이르도록 돕는다. 녹색의 땅에서 건져낸 씨앗을 지킴으로써 부발리니의 유지를 잇는 대그, 금세 능숙하게 총을 다루게 된 짧은 머리의 토스트, 그리고 어린이의 마음으로 강제로 살던 곳을 떠났으나 마침내 성장하여 독립적인 마음을 갖게 된 치도의 성장도 눈부시다. 그들은 단지 억압을 피해 달아나야 하는 상황에 처한 피해자가 아니라 자주적인 삶의 개척을 위해 새로운 선택을 하고 본인의 선택에 대해 능동적으로 책임을 지는 삶의 주체이다.

이처럼 워로드 임모탄의 폭압 아래 노예가 된 민족을 구하는 엑소더스(Exodus) 서사 〈분노의 도로〉에서 이들을 이끄는 선지자는 퓨리오사이다. 퓨리오사를 연기하는 샤를리즈 테론의 강인한 눈빛과 카리스마, 아름다운 근육에 사람을 홀리는 매력이 있다는 것을 부정하기는 어렵지만, 퓨리오사의 희망의 순간에 함께 벅차오르고 절망의 순간에 함께 눈물을 흘리게 되는 것이 오로지 배우의 연기력 덕택이라고는 결코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는 〈분노의 도로〉를 보며 퓨리오사는 어떤 이유로 왼팔을 잃은 것인지, 여성으로서 살아남기가 퍽 쉽지 않아 보이는 야만의 도시 시타델에서 어떻게 워보이 부대를 이끌고 워릭을 모는 임페라토르(사령관) 자리까지 올라가게 되었는지를 궁금해하게 된다. 또 어째서 신부들을 시타델에서 구해내서 고향인 녹색의 땅으로 돌아가고자 했는지 알고 싶어지지만, 은근히 독선적인 영화 〈분노의 도로〉는 퓨리오사의 과거와 심리에 대해서 거의 알려주는 바가 없다. 우리는 오로지 짐작만 할 수 있을 뿐으로, 그가 어릴 적부터 시타델에서 자라났으며 그 과정에서 고난을 많이 겪어 한쪽 팔을 잃게 되었고, 독재자 임모탄 조에게 모종의 복수심을 가지게 되어 그에게 엿을 먹이고 안타까운 피해자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오랜 시간 스스로를 갈고닦았으며, 마침내 신부들을 납치해서 떠나는 데 성공했으리라고 거칠게 추측하게 된다. 이렇게까지 과거를 상상하는 데 어려움이 있는 이유는 그가 그다지 수다스러운 주인공이 아니기도 하고 영화가 관심있어하는 내용과도 크게 관련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2024년 9년 만에 새로 개봉한 〈분노의 도로〉의 후속작 〈퓨리오사: 매드 맥스 사가〉(이하 퓨리오사)에 대한 팬들의 기대가 매우 컸을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멋지고 과묵하지만 안쓰러운 주인공 퓨리오사의 더욱 안타까운 어린 시절을 그리는 프리퀄 〈퓨리오사〉는 그가 고향인 녹색의 땅에서 납치되어 그곳을 떠나게 되는 아주 어린 시절부터 시타델에 당도해 고통을 겪으며 성장하고 복수하고 염원하던 녹색의 땅을 향해 다시 떠나는 〈분노의 도로〉 직전까지의 삶을 다룬다. 전속력으로 달리는 고속도로 위 트럭에 매달린 액션의 권위자 조지 밀러 감독의 영화답게 〈퓨리오사〉는 기대에 찬 관객을 실망시키지 않는 속시원한 액션과 손에 땀을 쥐는 스토리를 보여준다.

뿐만 아니라 〈퓨리오사〉는 퓨리오사의 어린 시절에 관한 상당히 자세한 내러티브를 제공한다. 영화는 시타델의 늙은 사관이 내레이션을 통해 옛이야기를 들려주는 형식을 빌려 퓨리오사가 어떻게 녹색의 땅에서 납치당해 시타델로 오게 되었으며 어머니와 부발리니의 숙적 디멘투스(크리스 헴스워스 분)를 어떻게 만나게 되었는지 보여준다. 디멘투스에게 빼앗긴 인생을 되찾기 위하여 그는 왼팔에 고향으로 향하는 길을 알려주는 별자리를 새겨놓고, 시타델을 탈출하여 그곳으로 향하는 날을 손꼽아 기다리며 하루하루 생존을 위해 투쟁한다. 임모탄의 신부가 될 뻔한 위기를 넘긴 퓨리오사는 삶에 대한 강력한 의지와 강인한 생존력을 바탕으로 남자인 척을 해가며 시타델의 기술자가 되는 데 성공한다. 그 과정에서 스승이자 친구인 잭을 만나 탈출하고, 디멘투스에 의해 팔을 잃고, 본의 아니게 임모탄 대 디멘투스의 40일의 전쟁에서 혁혁한 공을 세워 임페라토르가 되는 길을 마련한다는 것이 〈퓨리오사〉의 전체적인 스토리라인이다.

 

이렇게 멋진 프리퀄 〈퓨리오사〉를 보고 어딘가 약간의 아쉬움이 남은 관객은 많지 않을지 모른다. 러닝타임 158분에 달하는 장대한 서사시 속에는 분명 퓨리오사의 기원과 그의 고통, 절망, 복수, 그리고 탈출에 이르는 삶의 궤적이 낱낱이 담겨 있지만 이 영화를 관람하고 나서도 그를 완전히 이해하게 되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우리가 〈분노의 도로〉에서 만났던 강인한 전사 퓨리오사의 모습과 〈퓨리오사〉에서 본 그의 모습은 사실상 크게 다르지 않고, 〈퓨리오사〉에서의 그는 순진한 어린아이의 마음이 고통을 겪으며 성숙해감을 보여주는 입체적인 인물상이라기보다는, 태어나면서부터 이미 완전히 성숙하여 정신적인 성장이 다 끝나버렸다는 설정을 가진 다소 평면적인 인물로까지 보인다. 퓨리오사가 러닝타임의 대부분에서 입을 꾹 닫아야 하는 상황이라 표정과 행동으로만 인물을 표현해야 하기 때문에 어느정도 한계가 있었던 걸까. 더욱이 〈퓨리오사〉에는 〈분노의 도로〉에서 그토록 의연하게 그려졌던 약자들과의 연대가 부재하기 때문에 퓨리오사라는 인물에 공감하고 이입할 여지가 더 적은 게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퓨리오사〉가 우리를 전율하게 하는 이유가 있다. 영화는 막바지에 이르러 퓨리오사와 디멘투스의 마지막 결투 이후 그가 디멘투스에게 어떤 복수의 심판을 내렸는지에 대해서, 그 다양하고도 처절한 모습들을 짧은 몽타주로 보여준다. 곰인형이 가증스럽게 매달려있던 고간에 총을 쏘았다거나, 퓨리오사의 어머니처럼 나무에 매달아 죽였다거나, 잭에게 했던 것처럼 자동차에 매달아 놓고 죽을 때까지 끌려다니게 했다거나 하는 통쾌한 소문들이 세상을 떠돌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 모든 복수의 시나리오들은 그저 퓨리오사를 동정하고 그의 삶의 질곡을 안타깝게 여기는 사람들이 생각해냈을 법한 흔해빠진 이야기들이고 퓨리오사는 그보다 더 멀고 높은 대의를 꿈꾸는 인물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퓨리오사가 러닝타임 내내 머리카락 속에 숨기고 옷자락 안에 지니며 소중히 간직하던 복숭아 씨앗, 언젠가 녹색의 땅에 도착하면 그 곳에 심기 위해 지켜왔던 씨앗의 행방을 아는 것이 퓨리오사와 시타델의 늙은 사관, 그리고 관객인 우리들 뿐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조금 놀라고 또 감탄한다. 퓨리오사는 그 복숭아 씨앗을 시타델의 숨겨진 공간, 아무도 모르는 비밀의 방에 심고 그가 평생을 바쳐 완수한 복수를 자양분 삼아 탐스럽게 길러낸다. 마침내 열매를 맺었을 때 퓨리오사는 이 복숭아를 임모탄의 아내들에게 건네 탈출을 감행함으로써, 〈퓨리오사〉에서 〈분노의 도로〉로 이어지는 긴 혁명의 메시지를 선포하게 된다.

 

위계를 전복하는 위대한 이야기의 시작이 작은 씨앗의 모양을 하고 프리퀄에 숨겨져 있다는 것, 우리는 이 근사한 비밀을 주머니에 간직한 채 영화관을 나오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다소간의 아쉬움을 남기긴 했지만 〈퓨리오사〉는 훌륭한 액션 영화이고, “21세기 최고의 영화” 〈분노의 도로〉의 흥미로운 후속작임에는 틀림없다. 시리즈의 6편 격이 되는 〈매드 맥스: 더 웨이스트랜드〉(가제)가 프로덕션을 기다리고 있다고 하는데, 부디 조지 밀러 감독님이 건강하게 장수하셔서 또 멋진 영화를 만들어 주시길 바라는 마음이다. 

240808_혜원 보냄.
(객원 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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