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시대, 🌆 다시 사랑할 수 있다 🌆

샤오밍이 치치에게, “난 안정적인 직업이라 불평을 안 해.”

샤오밍도 마찬가지다. 공무원인 그는 권위적인 남성 위계 집단에서 유망한 젊은이로 환영받지만, 결국 부속품에 불과하다. 횡령과 불륜이라는 윤리적 문제를 일으킨 아버지에 대한 콤플렉스가 강한 그는 아버지와 같은 공무원 생활을 이어가면서 점차 조직 생활의 현실을 깨달아간다. 이때 샤오밍 곁을 지키던 동료가 회사에서 내쫓기며 그를 “위선자”라고 부르는데, 그 순간부터 샤오밍은 회의를 느끼던 집단과 결탁해 가장 혐오하던 부류에 속하게 된다. 양심을 중요하게 여기나, 그가 서 있는 세상은 소시민인 그의 믿음이나 신념을 지켜주는 곳이 아니다. 치치와 샤오밍 모두 살아가기 위해서 타인을 속이고 그러기 위해선 내 진심부터 속여야 했다. 인생은 연극이고 연극은 속임수로 만들어진다.

나 안아…🐶

에드워드 양은 필연적으로 허구인 영화를 통해 허상이 된 도시인의 삶과 20세기 말 타이베이를 비판한다. 연기로 점철된 속임수가 난무하는 도시. 물질주의와 충족되지 않는 결핍으로 인해 ‘사랑하다’는 없고 ‘사랑받고 싶다’만 가득한 분절된 도시. 황홀한 인공 빛이 도시의 겉면을 밝힐 동안, 빛이 닿지 않은 인간의 깊숙한 장기들은 본래 기능을 잃고 퇴화한다. 인구가 많으니 그만큼 사랑의 수도 가장 많아야 할 도시에서 사랑의 소외가 빠르게 진행된다는 사실이 바로 도시의 비극일 것이다. 그는 그만 이 연극을, 거짓말을 끝내라고 한다. 홀로 선 이들은 ‘도시’에 섰다. 그러면 다음 질문이다. 이들은 누구인가?

샤오밍이 검은 정장 대신 밝은 셔츠를 입고 병원에서 아버지를 보게 해달라고 고함을 치며 등장한다. 아버지가 쓰러져 다시 만날 수 없을지도 모르는데, 원칙은 원칙이라며 절대 들여보내 주지 않는 직원들에게 샤오밍은 이게 바로 관료주의라며 행패를 부린다. 한때 공무원이었던 그가 갑작스레 변하게 된 이유는 안정적이고 정상적이라 자부했던 직장을 그만두었기 때문이다. 중요한 가치를 지키기 위해서는 그 세상을 벗어나면 된다. 벗어나면 그 세상도 무척 작고 하찮은 구조였단 걸 깨닫게 된다. 어쩌면 벗어났기에 다시 사랑할 수도 있었다.

몰리와 화해하며 퇴장했던 치치도 계속 입던 검은 원피스 대신 붉은 원피스를 입고 다시 등장한다. 소설가와의 만남 이후로 자신이 놓쳤던 것을 깨우친(“가라고 하면 가야 하나요?”) 그는 병실을 찾는다. 회색빛이던 그들이 처음으로 색깔을 되찾은 마지막 엘리베이터 장면에서 둘은 이별을 마무리한다. 마음이 홀가분하다던 치치가 작은 뒷모습으로 멀어져 가고 샤오밍 역시 뒤를 돌아 카메라와 정확히 정면으로 마주한다. “솔직하게 직면”하라는 속삭임이 거짓말을 멈춘다. 사랑이 끝나는 지점에서 치치는 벼락같이 뒤돌아 닫혔던 문을 다시 연 샤오밍 앞에 선다. 타인을 껴안기 위해선 첫 번째, 누군가의 앞에 도착해야 하고 두 번째, 진심을 내보여야 한다.

“낭만의 시대는 오래전에 끝났고 비극의 시대도 끝났고 이제부터는…”

다음 시대는 제목처럼 독립의 시대였을까? 잘 모르겠다. 그래도 마지막 대답은 들리는 것 같다. 우리가 서 있는 곳은 도시고 우리는 ‘홀로 설 수 없는 이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