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은 도쿄올림픽에서 가장 인상 깊게 본 스포츠 종목이 무엇인가요? 아마 여자배구를 이야기하는 분이 많을 텐데요. 많은 종목의 경기가 우리의 여름을 뜨겁게 했지만, 특히 여자배구팀은 투혼과 열정으로 4강까지 진출하며 감동을 주었어요. 하지만 사실 여자배구 선수들은 오랫동안 남성 선수들과 비교해 정당한 대우를 받지 못했습니다. 배구는 프로 스포츠 단체종목 중에 유일하게 남성팀과 여성팀이 한 리그에 있음에도 말이죠. 최근에도 남자배구 리그와 샐러리캡(한 팀 선수들의 연봉 총액이 일정한 정도를 넘지 못하게 만드는 제도) 차이가 있어서 논란이 되었습니다. 배구뿐만 아니라 다른 운동 분야에서도 여성 선수는 남성 선수와 동등한 대우를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요.
그런데 혹시 여성 선수와 남성 선수가 받는 상금이 동일한 종목도 있는 거 알고 계시나요? 볼링, 스케이팅, 마라톤, 사격, 배구, 스쿼시, 서핑 등이 그렇습니다. 한편 이들보다 이전에 남성과 여성이 동일한 상금을 받게 된 종목이 있는데, 바로 테니스입니다. 세계 4대 테니스 대회라고 불리는 호주 오픈, 영국 윔블던, 프랑스 오픈, US오픈은 남성 선수와 여성 선수의 우승 상금이 동일한데요. 이것이 가능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시다면 빌리 진 킹 선수의 이야기를 들어보는 건 어떠세요? 영화 〈빌리 진 킹: 세기의 대결〉을 통해 말이죠.
영화 〈빌리 진 킹 : 세기의 대결〉은 1973년을 배경으로 빌리 진 킹의 걸음을 뒤따릅니다. 빌리 진 킹은 여성 테니스 세계 랭킹 1위 선수였습니다. 하지만 킹은 좋은 성과를 거두었음에도 성별의 차이로 인해 끊임없이 남성 선수들과 비교당하고 알맞은 대우를 받지 못해요. 테니스대회의 1등 상금이 남성부가 여성부보다 8배 높았으니까요. 심지어 빌리 진 킹은 여자 선수들이 받아야 하는 상금 일부를 남자 선수들에게 지급하기로 했다는 통보를 들어요. 킹은 스포츠 경기 수익은 관객 수와 수익에 따라서 분배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요. 그래서 여성 테니스 리그가 충분히 흥행함에도 대우를 제대로 받지 못하는 것에 대해 분노해요.
킹은 대회의 주최자를 찾아가 화를 내지만 그는 남성과 여성의 생물학적 차이를 내세우며 상금에 문제는 없다고 주장해요. 이에 반발한 킹은 뜻이 맞는 동료 여성 선수들을 모아 세계여자테니스협회를 만듭니다. 협회를 알리기 위해서 직접 발로 뛰고 홍보하며 라디오 인터뷰에도 참여하고 자신들만의 대회를 만들어서 경기를 펼쳐요. 그들의 노력으로 점점 더 많은 사람이 여성 테니스 리그에 관심을 보입니다.
한편 그들의 여정을 지켜보던, 한때는 테니스 선수로 잘 나갔던, 55세의 바비 릭스가 빌리 진 킹에게 경기를 하고 싶다고 연락하는데요. 그는 여성 테니스 선수와 경쟁하면 언론이 자신을 주목하고 과거의 인기를 어느 정도 되찾을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해 경기를 계획했습니다. 빌리 진 킹은 처음에는 그의 제안을 거부하지만 결국에는 경기를 하기로 해요. 사실 바비 릭스와 빌리 진 킹은 성별과 나이가 달라서 선수로서 경쟁하기에는 동등한 조건이 아니에요. 그런데도 빌리 진 킹은 선수로서의 가치를 입증하기 위해서 릭스와 경기를 하게 되고 승리를 거두는데요. 이는 여성 인권 논쟁이 정말 뜨거웠던 당시, 운동계뿐만 아니라 사회에서 큰 이슈가 되어요.
영화에서 바비 릭스와 빌리 진 킹의 경기 준비과정을 보여주며 비교하는 맥락이 인상적인데요. 신체적 한계를 극복했다는 논리로 승자의 편을 드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의지’와 ‘열정’을 비교해요. 릭스는 이미 한 차례 여성 선수를 상대로 승리를 거둔 경험이 있는데요. 그래서 그는 또다시 여성 선수와 경기를 한다고 경기를 쉽게 생각합니다. 영화는 릭스가 훈련을 하지 않고 먹고 마시면서 노는 시퀀스를 보여주지만, 빌리 진 킹은 경기를 위해 열심히 준비하는 모습을 오랫동안 보여줍니다. 운동선수에게는 신체적 능력만큼 정신력도 중요한데요. 그래서 저는 빌리 진 킹이 바비 릭스에 거둔 승리를 납득할 수 있었어요. 결과는 실제로 테니스계를 뒤흔들었고 현재는 테니스 대회에서 남성 선수와 여성 선수의 상금이 동일합니다. 공을 인정받은 킹은 2009년 미국의 자유의 훈장을 받게 되어요.
영화의 원제는 〈Battles of the Sexes(성별 간의 대결)〉인데요. 영화는 테니스를 통해 치열하게 펼쳐진 성별 간 경쟁을 그려요. 남성 선수와 여성 선수 개인의 경쟁뿐만 아니라 남성의 신체적 우월성을 강하게 주장하는 테니스 연맹의 사람들을 포함한 남성우월주의자들과 여성 선수들의 대립도 보여주죠. 영화는 한쪽 성별을 지지하는 것이 아니라 중립적으로 그들의 경쟁을 중계하는데요. 여성과 남성 운동선수가 모두 실력에 따라 대우를 공정하게 받기를 바라는 마음이 녹아있어요.
영화는 빌리 진 킹의 심리와 사랑에 대해서도 이야기합니다. 킹은 결혼한 상태였지만 미용사 마릴린 바넷과 사랑을 나눠요. 그녀의 사적인 이야기는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리고 킹은 영향을 받아요. 하지만 시간이 흐른 뒤 그녀는 자신의 감정을 테니스에 집중하려고 노력해요. 저는 영화가 킹의 사생활을 보여주는 방식이 빌리 진 킹을 선수 즉 공인으로서만이 아니라 평범한 사람으로서 이해하도록 하는 것 같아 좋았습니다.
영화는 성별이 여성인 테니스 선수를 중심으로 다루는 영화로서 스포츠를 주제로 하지만 페미니즘적인 시각에서도 볼만한 가치가 있는 작품입니다. 영화는 여성 인권, 사랑 등 가볍지만은 않은 주제를 다루고 있어서 진지하지만, 톤이 밝아서 편하게 즐기기에 좋습니다. 하지만 스포츠 영화로서 가치가 높은 영화라고 물어보신다면 사실 잘 모르겠습니다. 정작 영화에서 그들의 테니스 경기를 그리는 방식은 아쉽거든요. 예를 들어 영화는 빌리 진 킹과 바비 릭스의 경기장면을 정적으로, 느리게 보여주는데요. 남성중심적인 해설과 말이죠. 사실 저는 이 장면 때문에 영화에 완전히 몰입하기 어려웠습니다. 더불어 사람 빌리 진 킹에 집중하다 보니 테니스계의 역사를 바꾼 빌리 진 킹이 걸어온 선수의 노력과 업적을 보여주는 데는 한계가 있지 않았나 하는 아쉬움도 있고요. 하지만 빌리 진 킹이라는 인물을 소개하고 여성 스포츠의 힘을 보여준 것만으로도 영화는 가치가 있습니다.
〈빌리 진 킹: 세기의 대결〉이 보여주듯 빌리 진 킹과 여성 테니스 선수들의 노력으로 테니스계에는 변화의 바람이 불었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많은 스포츠는 남성 선수와 여성 선수에 대한 대우가 현저히 다릅니다. 빌리 진 킹이 주장했듯 선수들의 대우는 사람들의 관심과도 직결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저는 어렸을 때부터 야구와 축구를 보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야구와 축구는 남성 선수들이 주목받는 대표적인 스포츠이죠. 저는 남성들이 하는 스포츠에 익숙해져 있어 사실 여성 프로리그는 친숙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영화를 보면서 여성 운동 선수들과 그들이 처한 현실에 대해 더욱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테니스나 골프, 배구 등의 스포츠는 남성 선수와 여성 선수 모두가 인정받고 많은 사랑을 받지만, 야구와 축구라는 프로스포츠에서 여성이 왜 부재하는지, 왜 여성 선수들이 존재함에도 여성 리그가 프로로 인정받지 못하고 사람들이 관심을 두지 않는지를 말이죠.
남성 운동선수와 여성 운동선수는 신체적인 부분에서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운동에 쏟는 끈기와 열정, 사랑은 성별에 따라 배분되는 것은 아닙니다. 경기에서 이기기 위해서, 조금 더 좋은 기록을 내기 위해서 마음을 다하며 땀을 흘리는 선수들은 모두가 인정받을 가치가 있습니다. 더불어 운동은 어떤 것에도 구애받지 않고 모두가 즐길 수 있어야 합니다. 도쿄올림픽을 통해서 여성 선수와 비인기 종목의 선수들이 주목을 많이 받은 만큼, 이러한 흐름이 계속 가기를, 선수가 운동 외적인 조건이 아닌 노력으로 판단 받는 사회가 오길 희망합니다. 그리고 여성 운동에 대한 관심이 이어질 수 있도록 이 영화처럼 좋은 의미를 담은 여성 스포츠 영화가 계속해서 등장해주길 바라봅니다.
끝으로,
저는 〈빌리 진 킹: 세기의 대결〉을 보면서 이번 22회 전주국제영화제의 상영작이었던 〈서핑하는 여자들〉이라는 영화가 떠올랐는데요. 이 영화와 비슷하게 1980년대 여성 서핑 선수들이 어떻게 남성 중심적이었던 서핑계에서 남성 선수들과 동일한 상금을 받게 되었는지 선수들의 인터뷰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다큐멘터리 영화입니다. 저에게는 여성 스포츠의 가치를 한 번 더 일깨워준 영화라, 극장에서 상영하게 된다면 꼭 보시길 추천해 드리고 싶네요.
211007_정민 보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