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타카, 🧬 눈을 가린 희망을 의심하는 법 🧬

이 영화를 포함해 너무도 많은 미디어는 인간을 특별한 존재로 여기며 정의로운 인간 사회의 가능성을 믿는다. 하지만 우리는 생각보다 특별하지도 않고, 그렇게 사랑받을 자격도 없으며, 알고 보면 꽤나 잔인한 존재들이다. 이 세계는 빈센트와 같은 존재를 위해 설계되지도 않았고 그들을 받아들이고자 하는 의지가 전혀 없는데, 빈센트는 왜 지구에 이런 미련을 남기고 떠나야만 하는가?

〈가타카〉의 치명적인 허점이, 영화를 보는 내내 어딘가 찝찝했던 기분이 폭발하는 대목이다. 조금 못되게 말하자면, 이 영화는 무책임하다. 빈센트 개인의 아름다운 도전에만 주목해 그 노력에 감동하고 열정을 사랑하며 잠재력에 박수 친다. 우열과 구분 짓기, 우생학의 모순을 말하면서도 그 저변에 깔린 핵심인 시스템의 오류는 지적하지 않는다. 그가 타이탄에 다녀오고 나서도 제롬은 집 안 냉장고에 영원히 남아 있을 것이며 결국 빈센트는 제롬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다. 그는 시스템의 허점을 파고들었지만 거기에 타협하고 살아가는 인물이다. 진정 그래도 괜찮은가?

영화의 시간적 배경은 가까운 미래THE NOT-TOO-DISTANT FUTURE이다. 영화 속 선명한 차별과 신분제는 역사로 기록된 인간 사회를 보는 것 같기도 하다. 유전 형질로 모든 것이 결정되는 상상은 언젠가 다가올 미래의 디스토피아일지도 모른다. 〈가타카〉가 개봉한 1997년의 가까운 미래는 언제인가? 지나온 과거인가? 다가올 미래인가? 혹은 눈앞의 현재인가?

〈가타카〉는 피상적으로 추격 SF 영화의 형태를 띠기에 현실과는 동떨어진 이야기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렇게 대부분의 관객은 맘 놓고 빈센트에 이입하고 그를 응원했을 것이다. 하지만 영화 속 세계는 우리 사회와 아주 닮아 있다. 혹은 유전정보로 서열을 쌓는 〈가타카〉의 세계관이 우리의 지구보다 낫다는 우스운 생각까지도 해 본다. 적어도 그 세계의 서열엔 (납득할 순 없지만) 나름의 객관적인 근거가 있다. 오늘날의 사회는 교묘하게 사람들의 눈을 가려 그 서열이 보이지 않게 한다.

선진국의 깨끗한 병원에서 태어난 아이와, 전쟁 중에 태어난 아이는 분명히 다른 삶을 살아갈 것이다. 우리나라 안에서만 보아도 그렇다. 서울이냐, 지방이냐. 서울 안에서도 강남이냐, 강북이냐. 더 좁게 보면 아파트 내에서도 자가냐, 임대냐에 따라 아이가 살아갈 미래는 태어나는 순간 어느 정도 결정된다. 당신이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는 모르겠으나, 당신은 이 사회가 그렇게 평등하지 않다는 걸 아주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 글을 안전한 공간에서 편하게 읽을 수 있다면, 당신도 어느 부분에서는 빈센트가 아닌 제롬이다. 우리는 너무나도 쉽게 약자의 편에 서는 척 공감하고 이입할 수 있지만 내가 강자라는 건 절대 인식하지 못한다.

〈가타카〉에 부재한 진지한 고민과 성찰은 우리의 몫이다. 영화의 가장 유명한 대사인 “I never saved anything for the swim back 난 되돌아갈 힘을 남겨두지 않아서 널 이기는 거야” 는 오늘의 편지에 일부러 싣지 않았다. 빈센트는 꼭 마지막 힘까지 짜야만 하는가? 그는 언제까지 빌린 사다리, 위장자로서의 삶을 그냥 받아들이고 숨어 살아가야만 하는가. 우리는 인연과 운명이라는 말로 손쉽게 ‘주변 환경의 덕’을 ‘나의 노력’으로 바꿔 살아간다. 그리고 그런 인식이 신념이 되어 굳어지면, 고장 난 시스템 또한 그 자리에 멈춰 서 버린다. 빈센트가 제롬이 아닌 빈센트로서 살아가기 위해, 각자의 인연을 끊임없이 의심하고 확인하는 우리가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