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월애, 📮 시공간을 뛰어넘어서라도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으신가요? 📮

📮 시공간을 뛰어넘어서라도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으신가요? 📮

이현승, 시월애

바람이 쌩쌩 불고 나무가 흰옷을 입은 겨울은 크리스마스와 새해가 있어 설렘과 행복이 찾아오는 계절입니다. 하지만 매서운 추위 때문에 괜스레 울적해지기도 합니다. 저는 겨울이 되면 인생에서 흘려보낸 사람들이 그리워지는데요. 사람들은 누구나 태어나면 타인을 만나고 시간이 흘러 헤어지게 됩니다. 그러면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 만나는 수많은 사람 중 어떠한 존재를 인연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요? 겨울을 담고 있는 영화 〈시월애〉는 두 인물의 이야기를 통해 그 질문에 대해 고민하게 합니다.

은주와 성현은 바다 옆에 위치한 ‘일 마레’라는 집에서 각각 1999년과 1997년의 추운 겨울을 보내요. 그러던 어느 날, 성현에게 자신에게 도착한 연유를 알기 어려운 편지가 도착합니다. 사실 편지를 보낸 이는 1999년에 일 마레에 살던 은주였습니다. 은주는 헤어진 남자친구를 기다리며 편지를 썼고 그 편지가 성현에게 도착한 것이었죠. 일 마레라는 한 공간에서 각각 다른 해를 보내는 은주와 성현은 처음부터 인연으로 보입니다. 현실에서도 특정한 누군가를 만나는 것은 셀 수 없는 불가능을 이겨낸 것인데, 시공간의 장벽을 뛰어넘어서 이야기를 나누었기 때문입니다.

보통 인생을 살면서 인연이 되는 사람을 만나도 처음에는 인연이라고 인지하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서로 소통하고 공감하며, 닮아가고 동행한다면 인연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떠한 계기로 타인을 만나든, 서로를 위해 노력한다면 인연이 될 수 있을거예요. 영화는 우편함을 중심으로 은주와 성현이 좌우로 위치한 시퀀스를 통해 시공간을 초월해 연결된 그들을 직관적으로 보여주어요. 마치 두 사람이 인연임을 확증하는 것처럼 말이죠. 사실 그들은 처음에는 각자 다른 시간대에 존재한다는 것에 의구심을 보이고, 소중한 인연이 될 것임을 예측하지 못해요. 하지만 강아지 콜라가 똑같이 집에 있고, 1998년의 날씨에 대해 은주가 예측한 것이 사실이 되면서 다른 시간대를 산다는 것을 알게 되죠. 실제로 만나지는 못하지만, 우편함 속 편지와 선물을 통해 소통하며 점차 서로의 ‘곁’으로 다가갑니다.

“우울할 땐 요리를 하세요.”

그들은 편지로 취미를 공유하며 가까워져요. 마치 타인과 함께 즐거운 일을 하다 보면 좋은 감정이 생겨나듯이, 그들은 서로를 더 이해하게 되고 친밀해집니다. 은주는 성현에게 맥주를 마시고 놀이공원 안으로 달려가 바이킹을 탈 것을 제안합니다. 그래서 성현은 바이킹을 타면서 즐거운 하루를 보내죠. 성현 역시 산책하고 와인바에 들어가 와인을 마시는 자신의 취미를 따라 해볼 것을 은주에게 제안합니다. 은주는 성현의 취미를 따라 하며 그가 그녀에게 선물로 남겨둔 와인을 받아요. 다른 연도에서 각자의 궤도를 돌던 둘은 취미를 공유한 동지가 됩니다. 그들은 이렇게 인연을 쌓아가요.

은주와 성현은 서로의 과거와 미래에 존재하기에 만나지는 못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줄 수 있는 선물을 교환하기도 합니다. 한 방향을 향해 바쁘게 삶을 살며 잊은 추억을 찾아주고, 잃어버린 소망을 이루도록 도와주고, 모르고 지나친 진실을 알려주면서 도움을 주어요. 성현은 은주가 잃어버린, 과거 그녀의 친구가 성우의 꿈을 응원하며 선물한 녹음기를 찾아 귀마개와 함께 선물합니다. 은주는 성현의 부탁으로, 그와의 연락이 끊긴 아버지에 대해 성현이 궁금해하는 사실을 알려주려고 노력해요. 그리고 성현은 은주의 부탁으로 은주가 예전에 헤어진 남자친구와 다시 이어질 수 있도록 노력합니다. 하지만 그들이 서로에게 제공한 도움은 긍정적인 결과만을 가져다주지는 않습니다. 돌이킬 수 없는 큰 사건의 원인이 되기 때문이죠.

“내가 그렇게 낯설어요?”

현재 인연이라고 생각하는 사람과 미래에 어떠한 관계가 될지 예측하기는 어렵습니다. 은주와 성현의 관계는 판타지를 기반으로 하기에, 현실에서는 겪을 수 없는 어려움을 맞이합니다. 바로 시간을 초월해서 소통하기에 서로를 아는 상태로 동일한 시간대에서 만나지 못한다는 점이에요. 성현은 과거의 은주를 마주하나 1998년의 은주는 그를 처음 만난 타인처럼 대합니다. 그들은 성현보다 은주가 사는 시점에 좀 더 가까운 미래에서 만나자고 약속하지만, 의도치 않게 그들은 만나지 못하죠. 성현은 그녀에게 사랑을 느낌에도 그녀의 얼굴을 보지 못하기에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전달하지 못해요. 하지만 시간이 하나의 방향으로 가는 현실에서는 우연히 지나가다가도 누군가를 만날 수 있죠. 은주와 성현은 만나지 못했지만, 운명의 장난처럼 2000년의 은주는 헤어진 남자친구를 스치듯 보게 되어요. 은주는 그에 대한 사랑이 남아있어 성현에게 헤어지지 않도록 도와달라는 편지를 보내죠. 이에 성현은 은주에 대한 사랑의 감정을 덮어두고 은주를 돕다가 큰 사고가 나서 죽게 됩니다. 영화 밖 현실에서는 일어날 수 없는 계기로 만난 두 사람은 의도하지 않은 업보처럼 실제로 만나지도 못하고 인연이 끝날 수 있다는 예고를 듣습니다.

하지만 은주와 성현을 묶고 있는 인연의 실은 거센 폭풍을 뛰어넘을 정도로 끈끈합니다. 은주는 성현의 죽음을 알게 되는 동시에 자신이 그를 사랑했음을 느끼게 됩니다. 그러면서 서로가 서로에게 인연이었음을 깨닫죠. 결말에서는 성현이 은주를 찾아가면서 둘은 만나게 되는데요. 그러나 이 엔딩은 상반된 두 가지의 의미로 해석할 수 있어요. 실제로 은주와 성현이 마주하게 된 것인지, 혹은 둘의 결합을 바라는 관객들을 위해 감독이 추가한 서비스 컷인지로 말이죠.

은주와 성현은 시공간을 초월해서 소통했기에 운명처럼 보이지만 편지 하나로 스치고 끝날 수 있는 관계였어요. 하지만 그들은 서로에게 다가가기 위해 노력했죠. 그들은 소통을 이어가고 취미를 공유하며 친밀해졌고, 잊을 수 없는 선물을 주며 가까워졌습니다. 그리고 다른 시간을 살기 때문에 발생하는 장애물을 넘어서 서로를 향해 움직였어요. 그렇기 때문에 결말을 어떻게 해석하든 간에 둘의 관계는 ‘인연’으로 보입니다. 그들은 분명히 서로의 인생에 큰 변화를 줄 만큼 가까운 존재였으니까요.

은주와 성현의 관계 변화처럼 인연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인 것 같지만, 어떠한 미래를 맞이하게 될지 알 수 없어 불확실하기도 합니다. 인연을 만나 행복하더라도 이 관계는 해피엔딩일 수도, 지지리 지긋지긋할 수도, 생각하면 눈물이 차오를 수도, 분노가 들끓을 수도 있죠. 그러나 ‘인연’이라고 생각했던 사람과의 관계가 끝났을지라도, 함께한 것이 주는 가치는 존재합니다. 지금은 생각하면 상처만 받는 관계일지라도, 타인과 인연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공감했을 때에는 서로에게 큰 영향을 받았을 거예요. 그리고 이는 사람이 성숙해지는 발단이 될 수 있어요. 상처를 받아서 타인을 만난 것을 후회하더라도, 상처는 앞으로의 인생을 잘 살아가는데 양분이 될 테니까요. 그래서 인연을 만나면 함께하는 ‘현재’에 집중해서 서로에게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고 너무 자신을 희생하지는 말고요.

인연은 언제, 어디서 만나게 될지 모르는 존재예요. 운명이 동한다면 그를 만나게 될 것이고 함께 노력함으로써 더 좋은 관계가 될 수 있습니다. 인연은 처음에는 인생에서 그냥 스쳐 갈 사람이었다고 느꼈을지라도, 셀 수 없는 가능성 중 특별한 하나가 되는 것이죠. 여러분은 인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혹, 인연을 만나셨나요?

〈시월애〉는 인연을 떠올리게 하는 영화이면서 동시에 겨울의 감성에 잘 어울리는 영화입니다. 겨울이 시간적 배경이며, 장소적 배경이 되는 일 마레가 바다 근처에 있거든요. 더불어 영화에 회색빛도 많이 사용되기 때문에 차가운 겨울의 분위기가 전달되어요. 반대로 은주와 성현의 시공간을 뛰어넘은 인연을 보면 온기를 느낄 수 있을 거예요. 추운 겨울, 따뜻한 커피를 마시면서 〈시월애〉를 보시는 건 어떠세요?

211202_정민 보냄.

〈

이전 여담 읽기

🧬 눈을 가린 희망을 의심하는 법 🧬

다음 여담 읽기

🚖 기어이, 삶은 계속된다 🚖

〉

댓글 달기 댓글 취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