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디 버드, 🗽 친애하는 나의 부끄러운 시절에게 🗽

🗽 친애하는 나의 부끄러운 시절에게 🗽

그레타 거윅, 레이디 버드

고등학교만 졸업하면 모든 것이 바뀔 줄 알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나는 여전히 방황했고, 사람들의 시선이 신경 쓰였고, 찰나의 감정들에 구차하게 얽매였다. 사람들을 만났고, 내 의지든 아니든 떠나보내기도 했다. 새로운 시작은 기대만큼 멋지지만은 않았다.

 

지난날 나를 깊이 파고들었던 감정과 생각들도 지나오고 나면 유치한 한때의 것으로 바래 버려 누구에게도 들키고 싶지 않아진다. 그래서 그 감정들을 다시 꺼내어 펼쳐 놓는 이 영화를 처음 보았을 때 ‘어떻게 이렇게 하지?’라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고, 나만 그런 게 아니라는 안도감이 뒤를 이었다. 우습게도 기억하고 싶지 않은 나—와 또 다른 ‘레이디 버드’들—의 치기를 생생하게 옮겨 놓은 이 영화가 그 과거들을 어떤 식으로든 정리하도록 도와주었다. 자신의 ‘레이디 버드’를 돌아보기 주저하는 당신에게 오늘 이 영화를 건네고 싶은 이유다.

 

 

“It’s given to me by me.”

“좋아, 크리스틴?”

“레이디 버드예요.”

“그게 학생 이름인가?”

“네.”

“인용부호는 왜 붙였지?”

“제가 저한테 지어준 이름이거든요.”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진 삶이 아닌, 스스로 개척해가는 삶. 레이디 버드가 꿈꾸는 삶의 모양은 그런 것이다. 그래서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조건들, 이를테면 부여받은 이름인 ‘크리스틴’이나 고리타분한 가톨릭 학교, 새크라멘토의 낙후된 동네 같은 것들을 떨쳐내고 새로운 시작을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다. 무엇을 하든 가족과 주변 사람들의 시선이 따라오는 이곳을 벗어나 자유로운 예술의 도시 뉴욕에 가기만 하면 꿈꾸던 멋진 삶이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그러나 새 출발을 준비하는 레이디 버드는 끊임없이 흔들린다. 학비를 이유로 동부의 학교 진학을 반대하는 엄마의 지지는 기대조차 할 수 없고, 평생 사랑할 것처럼 설레게 했던 사람과의 이별에 괴로워하다가도 다른 멋진 상대와의 대화 한 번에 다시 설렌다. 잘 나가는 제나의 허영심을 욕하다가도 친구가 될 기회가 생기자 금세 단짝 줄리를 무시해버리기도 한다. 새로운 친구들에게 걸맞은 사람이 되려면 아르바이트를 하는 이유나 자기의 진짜 집이 어디인지 같은 것들은 숨겨야 한다고 생각한다. 자신이 무시하던 그 아이의 허영을 닮은, 조금은 고집 센 소녀. 새롭게 세워진 레이디 버드는 크리스틴을 구성하는 것들과 단절해야만 존재할 수 있다.

 

 

“What if this is the best version?”

흔들리고 있는 레이디 버드의 아빠가 정서적 유대를 제공한다면, 다소 현실적인 엄마 매리언은 레이디 버드가 벗어나고 싶은 새크라멘토의 면면들을 빼닮았다. 딸의 새로운 시작에 대한 지지는커녕 3달러짜리 잡지 한 권을 사 달라는 말에도 돈 걱정을 늘어놓는 그는 좋은 책에 함께 눈물 흘리다가도 얼마 못 가 험악한 말다툼을 벌일 수 있는 사람이다.

 

영화는 이해받고 싶어 하는 레이디 버드의 심정을 보여주면서도, 새 출발에만 몰두해 그가 놓치는 엄마의 마음을 슬며시 드러낸다. 이를테면 추수감사절에 대니가 집에 데리러 왔을 때 레이디 버드를 보고 “우리 할머니가 좋아하시겠다”고 말하자 굳어지는 엄마의 표정 같은 것은 지금의 레이디 버드에게 중요한 것이 아니다. 그 표정의 의미를 딸도 나중에는 이해할 것임을 알고 있기에, 매리언은 조용히 그 상황을 지켜볼 뿐이다. 대신 영화만큼은 그 표정에 충분한 시간을 할애한다. 클로즈업에서 드러나는 미세한 표정 변화는 사실 그가 이미 딸이 앞으로 지나게 될 모든 감정의 부침들을 알고 있거나 지나왔기 때문임을 보여준다.

 

이런 영화의 시선은 이후 레이디 버드가 강하게만 보였던 엄마의 따스함을 이해하는 실마리가 된다. 자신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지 못하고 새롭게 사귄 카일에게 잘 보이는 데에만 몰두하다 그에게 모종의 배신감을 느낀 후 상심했을 때, 표정만 보고 딸의 마음을 눈치챈 매리언은 레이디 버드와 함께 기분전환을 한다. 이때 엄마는 딸의 기분을 가장 잘 알아주는 친구다.

가장 가까우면서도 가장 어려운 존재. 엄마에게도, 레이디 버드에게도 서로는 그런 의미이다. 이들은 상대를 누구보다 잘 알면서도 가끔 엄마가, 또는 딸이 멀게만 느껴져 다가서길 주저한다.

 

그런 엄마에게 레이디 버드는 ‘호감’을 갈구한다. 함께 프롬 드레스를 고르러 갔을 때, 자신의 모습에 이런저런 지적을 하는 엄마에게 레이디 버드는 문득 이렇게 말한다.

“난 그냥 엄마가 날 좋아해 주면 좋겠어.”

“널 사랑하는 거 알잖아.”

“근데 좋아하냐고.”

“난 네가 언제나 가능한 최고의 모습이길 바라.”

“이게 내 최고의 모습이면?”

까딱하면 새크라멘토를 벗어나지 못하겠다는 생각에, 사랑은 전부 실패했고, 나의 실수로 가장 아끼던 친구도 잃었고 가족들마저 자신을 이해해주지 않는 것 같은 상황. 모든 것이 망가졌고 무엇도 보장되지 않은 그 상황이 나라는 사람의 최선일지라도 나를 받쳐 줄 누군가가 있을까. 레이디 버드의 이 물음에서 계속될 방황 앞에 막막해하는 한 간절한 마음이 보인다.

 

그리고 어쩌면 매일 웃거나 다투면서도 서로가 서로에게 무엇을 원하는지 한 번도 질문해 보지 않았을 터이기에, 매리언은 이 질문에 쉽사리 말을 잇지 못한다. 어떤 말을 해 주려고 굳게 닫혀버린 탈의실 문을 두드리려다가도, 이미 상처받은 딸의 마음 앞에 망설이게 된다.

 

호감과 인정을 바라는 레이디 버드의 태도가 오히려 엄마에게 상처를 주기도 한다. 말도 없이 동부 대학에 지원해서 합격까지 기다리고 있음을 알게 되었을 때, 울면서 제발 아무 말이라도 해 달라고 말하는 딸을 외면하는 엄마의 마음은 무엇이었을까. 자신의 말을 듣지 않았다는 배신감보다도, 도움이 필요할 때 딸의 옆에 있지 못했기에 딸이 조금 더 멀어졌다는 자책감이 들지는 않았을까. 분명 엄마의 인정을 가장 바랐을 레이디 버드인데, 그런 마음에서 나온 행동은 의도치 않은 상처를 준다. 몇 걸음이면 서로의 마음에 다가갈 수 있지만, 닫혀 있는 문을 두드려 여는 일이 쉽지 않아 조용히 그 앞만 지키는 이들이다.

 

 

“It’s me, Christine.”

레이디 버드는 자신만 방황을 경험하는 것이 아님을 확인하면서 서서히 ‘크리스틴’을 받아들인다. 이를테면 늘 자신을 이해해주고 지지해 주던 아빠의 실업과 오랫동안 이어져 온 우울을 알게 되었을 때, 자신의 치기 어린 행동이 나쁜 영향을 주었을 수 있다는 생각은 그를 괴롭게 한다. 새로운 직장을 구하는 아빠와 오빠가 동시에 같은 자리에 면접을 볼 때, 아마 젊다는 이유로 뽑힐 확률이 더 높은 오빠를 격려하는 아빠의 어깨에 놓인 짐이 무거워 보이기도 한다. 이전엔 보지 못했거나 외면했던 모습들이 보이기 시작하면서, 아빠의 무조건적인 지지와 사랑이 쉽게 이뤄진 것이 아님을 느낀다.

 

엄마가 자신이 어떤 상태에 있든 자신을 좋아해 주겠다는 생각도 하게 된다. 어렵게 뉴욕에 도착한 직후, 크리스틴은 여러 번 고쳐 쓰다가 결국 부치지 못한 엄마의 편지들을 발견한다. “레이디 버드에게. 난 너를 알지도 못한 채 사랑했어. 네가 그저 어떤 관념에 불과했을 때부터.” 그 보내지 못한 편지들, 종이 뭉치의 무수한 구김은 ‘엄마도 엄마가 처음’이라는 것을, 그래서 자신을 대할 때 무수한 시행착오를 겪고 있음을 말해 주는 듯하다.

뉴욕에 온 크리스틴은 이제 온전한 자유가 주어진다고 해서 자신이 그리 멋있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안다. 그곳에서도 그는 여전히 새크라멘토를 모르는 사람에게 샌프란시스코에서 왔다고 얼버무리고, 기숙사는 새크라멘토의 방과 다를 바 없이 좁으며, 지적이거나 예술적일 것으로 기대했던 사람들과의 만남에서도 끝에 남는 것은 미미하다.

 

이처럼 크리스틴의 방황은 레이디 버드가 된다거나 뉴욕에 간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어떤 모습을 하든, 몇 살이 되든 그는 언제나 방황할 것이다. 그러니 이 방황을 멈추고자 ‘크리스틴’으로 대표되는 과거의 것들을 깔끔하게 끊어낼 필요도 없을뿐더러, 그것은 가능하지도 않다. 시작은 그런 식으로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과거의 내가 차곡차곡 적립되어 현재의 ‘나’를 이루고 있음을 인지할 때, 지나간 시절을 똑바로 응시하고 또 다른 나를 정립할 수 있게 된다. 뉴욕까지 가서야 자신이 그렇게 벗어나고 싶어 했던 새크라멘토, 그리고 자신을 이해해주지 않는 것만 같았던 가족이나 친구들과의 관계가 사실 뗄 수 없는 자신의 일부가 되었음을 알게 되며 크리스틴을 받아들인 레이디 버드처럼 말이다.

 

이제 크리스틴은 비로소 레이디 버드가 충분히 누리지 않았던 새크라멘토의 어떤 찬란한 순간을 기억해 낸다.

“엄마, 엄마도 새크라멘토를 처음 운전할 때 감상에 젖었어? 난 그랬어. 그 얘길 하고 싶었는데 그땐 우리 사이가 안 좋았지. 평생 지나다니던 그 길들, 가게들, 그 모든 것들…….”

수녀님의 말대로, 버릇처럼 새크라멘토를 벗어나겠다고 말하던 레이디 버드는 사실 누구보다 새크라멘토를 사랑하고 있었다.
내 지난 모든 찌질함의 순간들을 생각할 때 어떤 찬란함이 마음에 남는 것은 내가 이미 그 지점을 지나왔기 때문이다. 실컷 꿈꾸고 겁 없이 부딪쳐 보던 시절. 사소한 일에 연연하던 작은 마음들. 그때의 내가 이제는 돌아오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조금은 섣부른) 걱정은 그 시절들만이 간직하고 있는 어떤 반짝임을 상기시킨다. 〈레이디 버드〉는 커 버린 내가 쉽게 잊고 지나쳐 버린 과거의 순간들을 지극히 평범하지만 실컷 울고 웃었던 우리 모두의 한 시절로, 그러나 결코 가볍지 않게 기록한다. 각자의 시기를 지나온 또 다른 ‘크리스틴’들을 위해.
220331_성하 보냄.

“레이디 버드, 🗽 친애하는 나의 부끄러운 시절에게 🗽”의 4개의 댓글

  1. 여담에게, 안녕하세요 😊

    저는 이번 6호부터 여담을 알게 되어 구독을 시작한 독자입니다. 제게 너무 필요했던 문장이 있어서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은 마음에 답장을 보내게 됐어요!

    우선, 레이디버드가 새크라멘토와 제 주위의 것들로부터의 독립을 원하고 자유를 갈망했던 것처럼 저도 고등학교 내내 살던 지방을 떠나 서울로의 상경을 꿈꿨던 것 같아요. 부모님, 친구들과의 관계에서 불행했던 기억이 없음에도 늘 제 고향은 떠나고 싶었어요. 서울의 대학에 들어가면 단조로웠던 입시 생활보다 훨씬 멋지게 변모한 삶이 있을 거라고 상상했기 때문에 마냥 이런 좁은 고향은 지긋지긋하고 벗어나고 싶다고 느꼈던 것 같아요. 사실 고향은 모든 학창시절의 추억이 있는 공간임에도요!

    멋지게 변한 삶은 뭐고, 이전의 제 삶은 어디가 그렇게 단조로웠는지도 잘 모르지만 어쨌든 마냥 서울은 크고 기회가 많은 도시라고 생각하면서 서울을 동경했고 대학교에서의 저는! 고등학교 때의 저보다 무조건! 더 많이 행복할 거라고 믿었어요.

    그런데 서울에 간다고 제 모든 행복이 보장되고 저에게 새 친구가 저절로 생기거나 제가 하고싶은 것들이 다 저에게 오는 건 아니더라구요. 물론 아닐 걸 알았지만,, 역시 새로운 시작은 레이디버드가 꿈꾸는 것처럼 저에게도 쉽게 오지 않더라구요.

    이번 레터의 내용처럼 정말 새로운 시작은 과거의 것들과 훨씬 달라지거나, 과거의 것들을 모두 떠나보내고 시작되는 게 아니라는 걸 깨달은 대학에서의 첫 한 달이었어요. 중고등학교를 거치며 내가 쌓아온 나에 대한 이해, 사람을 대하는 나의 태도를 끊임없이 생각해보고 그 속에서 나를 알아가야만 이 곳에서 새 친구를 만났을 때 흔들리지 않고 편한 만남을 가질 수 있고 새로운 도전을 할 수 있으며 그 속에서 행복을 느낄 수 있더라구요! 은연 중에 알게 된 이러한 새로운 배움을 여담 레터에서 글로써 찾을 수 있게 되어 정말 기뻤어요. ‘과거의 내가 차곡차곡 적립되어 현재의 ‘나’를 이루고 있다’는 레터의 한 구절처럼 새로운 대학생활 앞에서 나는 어떤 ‘나’로 이 많은 것들을 마주해야할지 다시 생각해보게 만들고 틈틈이 저를 도와줬던 것 같아요! 그리고 아직 한 달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서울에 살면서, 뉴욕을 살아가는 크리스틴의 기분으로 제 고향을 새크라멘토처럼 다시 좋아할 수 있었고 제 입시도 후련하게 털어낼 수 있었고 말처럼 쉽지는 않겠지만 지금까지 쌓아온 저를 저의 일부로 생각하고 연장선을 그리듯이 살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정말 감사합니다 💖

    꺅 그리고 메일 답장을 무작정 써내려가보면서 친애하는 저의 부끄러운 시절은 뭘까 생각해봤는데 우선 20살이라는 이 시기는 지금 뭘 해도 나중에 돌이켜보았을 때 부끄러운 시절이 될 거라고 생각해서… 부디 나중에 친애는 할 수 있도록 잘 살아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또 부끄러운 제 시절은.. 바로 ‘ey(제 이름 이니셜)good(굿)zzang(짱)이라는 멋도 모르고 초등학교 때 컴퓨터 수업을 듣기 위해 만들었던 제법 당차지만..중학교때부터 슬슬 부끄러워지기 시작한 제 메일주소’입니다. 살면서 아직 이메일에 굿,짱을 넣은 사람을 제 주변에서 본 적이 없다는 걸 깨닫고나서부터 제 메일 주소가 되게 부끄러워졌어요. 그래도 크리스틴이 자신에게 붙인 ‘레이디버드’라는 이름처럼 저한테도 제가 처음으로 지어준 이름이 이 메일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부끄럽지만 메일 얘기를 덧붙여봅니다,,

    너무 tmi 남발이지만 앞으로도 여담 감사히 잘 읽겠다는 마음을 꼭 전하고 싶었어요! 대학교 와서 좋은 점은 영화와 드라마를 볼 시간이 많다는 거더라구요! 좋은 영화, 여담의 글과 함께 더 좋아할게요! 좋은 하루 보내세요!

    1. 은영님, 안녕하세요🙂 여담의 성하입니다.

      은영님의 여정에 이 영화와 글이 함께 할 수 있다는 사실과, 소중한 이야기를 나누어 주셨다는 사실이 감사해 몇 번이고 답장을 다시 읽었답니다. 비슷한 시기에 어딘가에서 비슷한 생각을 공유하는 분이 계셨다는 사실만으로도 힘이 될 때가 있는 것 같아요.

      우연의 일치일까요? 지난 주말 저는 중학생 때 만든 구글 계정을 정리하고, 아이디를 바꾸었어요. 여담 업무에도 늘 사용하던 계정인데, 그때의 관심사가 반영된 아이디가 어쩐지 부끄러웠거든요. 그런 걸 보면 여전히 저도 마음 한구석에선 저의 ‘레이디 버드’ 시절을 감추고 싶어 하고 있나 봐요. (메일 주소는 아니지만, 어렸을 적 저의 테일즈런너 닉네임이 ‘성하성빈짱’ 이었답니다 😅)

      사실 ‘친애하는 부끄러운’ 시절이라는 제목을 붙일 때 어떤 단어를 먼저 쓸지 꽤 고민했었어요. 결국 ‘친애하는’을 더 앞에 두었지만, 저 역시 지난날들을 떠올릴 때면 부끄러운 마음이 좀 더 큰 것 같아요. 그럼에도 ‘친애하는’을 앞에 세운 이유는, 그렇게 무언가에 열정적이고 어딘가 조금씩 과했던 시절들이 부끄러운 만큼 저의 가장 빛나는 순간들이기도 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제가 감히 말씀드릴 수 있다면, 어떤 시절 끝에 남을 부끄러움을 섣불리 걱정하기보다는 함께 ‘레이디 버드처럼’ 살아가 보자는 제안을 드리고 싶네요! 늘 잘 살 수는 없어도, 매 순간 마음을 다해, 그리고 즐겁게요. 나중에 돌이켰을 때는 그때의 부끄러운 나까지도 친애해 주도록 하고요. 글을 쓸 때는 레이디 버드에서 크리스틴이 되는 것이 한 번뿐인, 가장 큰 성장이라는 생각을 했었는데, 생각해 보면 어느 정도 ‘레이디 버드’의 시절을 지나왔다고 생각해온 저 역시 여전히 메일 주소가 부끄러워 새로 만들고, 사소한 감정들도 지나치지 못하는 사람이더라고요. 그런 제 모습을 보며, 어쩌면 ‘레이디 버드’의 시절은 언젠가 사라져 버릴 속성의 것이 아닌, 계속해서 우리와 함께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우리는 어느 시점에 크리스틴이 되어 버리는 것이 아니라, 레이디 버드가 크리스틴이 되듯 계속해서 부딪치고, 아주 조금씩 단단해져 가는 사람들이 아닐까요? 그리고 어쩌면 그게 더 재밌는 삶일 수도 있고요!

      오랜만의 답장에 들떠 제가 너무 관련 없는 이야기만 횡설수설 늘어놓은 것은 아닐까 걱정이 됩니다. 은영님의 대학 생활에 행복한 일들이 훨씬 많이 기다리고 있기를 진심으로 바라요. 답장에서 이미 그럴 준비를 마치셨다는 것이 묻어나니, 분명 멋진 연장선을 그리고 계시리라 믿습니다. 그 순간들에 여담이, 여담의 영화들이 좋은 친구가 되길 바라요.

      평안한 저녁 시간 보내세요 🌙🖤

      1. 저는 3월 한 달 간, 입학한 대학이 들어간 이메일을 새로 만들고 나서 이 메일로 교수님께 수강 증원 메일도,,ㅎㅎ 넣어보고 답도 받아보고 팀플도 하게 되었는데, 뭔가 새로운 곳의 구성원이 된 기분에 들뜨기도 하고 거창하지만 초중고를 지나 새 시작하는 기분도 들었어요 ㅎㅎ 새로운 이름 아래에서 스무살 잘 보내볼게요. 오늘도 좋은 하루 보내세요!

        1. ㅎㅎ 완전히 새로운 곳, 새로운 환경에서 시작하는 것은 몇 번 없을 새로운 시작이지요!

          새 이메일이 저에게만 영향을 주고 있었던 게 아니었네요 🙂

          답장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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