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포 선셋, 🌆 정확하지 않은 사랑의 실험 🌆

어스름한 새벽빛이 피어오르고 아침을 마주할 때까지 사로잡혀 있던 낭만을 기억한다. 무심코 흘려보내는 하루 중 스치던 기회를 붙잡아 지금의 우리가 된 것처럼, 다시 한번 그렇게 재회할 수 있지 않겠냐고 감히 기대했던 그 시간을. 거기서부터 다시 이 대화가 시작되는 것이다.

아직도 마음이 남아있다고 생각했을 때, 여지가 있다고 판단했을 때. 조금의 희망이라도 보인다고 착각했을 때. 그리고 그 착각이 제법 근사하다 느끼고 있을 때. 그것이 비록 어리석은 꿈일지라도. 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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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계기로부터 이건 사랑이라며 그 종잡을 수 없는 확신에 잠시 이르기까지, 도대체 둘 사이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 누구나 상상할 수 있지만 누구도 정답을 제시할 수 없는 난제에 대해 리처드 링클레이터 감독은 18년간 이어진 ‘비포(before) 3부작’으로 사랑에 대한 경우의 수를 내민다.

해가 떠오르고(sunrise), 해가 지고(sunset), 자정을(midnight) 맞이하기 전까지의 시간을 오로지 두 사람의 연애담에 맞춰 전개한 이 시리즈는 몇 가지 낭만적인 가정 위에 설계되었다. 과거 필라델피아에서 겪었던 감독 본인의 경험을 각색했다는 첫 작품의 가정은 이것이다.

: 달리던 기차에서 발생한 우연한 만남, 이윽고 두 사람은 사랑하는 사이가 되는데(…)

이윽고. 감독은 ‘이윽고’를 그저 축약하지 않는 재능을 가졌다. 그가 사랑의 관계성을 이루는 과정에는 세심한 설명이 있다. 끊기지 않는 대화 속 미묘한 기류들, 서로를 향해 차례차례 집중되는 시선과 둘을 둘러싼 아름다운 ‘빈’의 향연까지. 〈비포 선라이즈〉는 분명 이 모든 것으로 사랑이 시작될 때의 설렘을 설명하는 좋은 영화다.

〈비포 선셋〉은 그로부터 9년 후, 전작의 두근거림이 차차 가실 때쯤 혹은 제시와 셀린의 행방이 가끔 궁금해질 즈음에 개봉했다. 영화 속 그들 역시 우리와 함께 나이를 먹었고, 앞선 인연을 상기시키려는 듯 의미심장한 가정을 마련해왔다.

: ‘6개월 후 저녁 6시 9번 승강장에서’의 약속은 지켜지지 않고, 2003년 두 사람은 파리에서 재회하는데(…)

의미심장하다는 것은, 명백하게 존재하고 있는 저 공백기 때문이다. 낭만만이 깃든 가정이 아니다. 감독은 우리에게 ‘현실성’을 따지게 한다. 그동안 쌓인 변수들을 두고 과연 어떻게 서로를 대하고 마주할 것인가. 소중한 하루를 한 켠에 새겨두고 수 년이 지연된 만남에서 서로가 어떤 태도를 취할 것인가. 영화는 일련의 콜라주로 두 사람이 향할 곳들을 비추며, 종결인지 연결일지 모를 두 번째 산책의 시작을 알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