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니 핑크, 🔮 오롯이 나를 사랑하는 법 🔮

파니를 향한 (타인의 혹은 본인의) 사랑의 부재와 그의 존재론적 의문은 ‘죽음’에 대한 집착으로 이어진다. 영화 곳곳에서 독특하게 등장하는 죽음에 대한 요소들은 ‘사랑의 결여는 곧 죽음’이라는 파니의 가치관을 드러낸다. 그는 스스로 죽음을 택한다는 명목으로 결성된 모임에서 잘 죽는 방법을 배우고, 자신의 취향이 한껏 묻어난 유리 덮개의 검은색 관을 제작한다. 파니의 집 한가운데를 차지한 관은 일종의 안식처 겸 피난처가 되며, 이후 장례식에서도 그가 직접 흙 속에 묻힐 때 함께하며 사랑이 부재한 그의 삶이 얼마나 죽음과 익숙한 관계인지를 보여준다.

그런 파니의 인생에 오르페오라는 수상한 인물이 등장한다. 그는 의문의 행성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심령술사로 파니의 운명의 남자를 점쳐주기도, 파니와 공모해 운명의 남자와 파니를 연결해주려고도 하는 일종의 큐피드이다. 엘리베이터와 아파트 옥상 혹은 오르페오의 방에서 펼쳐지는 모종의 주문과 종교적 의식은 그의 수상한 기운을 한층 높인다. 그중에서도 파니와 오르페오의 공작은 사람들의 어처구니없는 웃음을 자아낸다. 로타르를 유혹하기 위해 그의 사진을 두고 “내게로 오라!”를 끊임없이 외친다든지, 그 사진을 찢고 수프와 함께 마심으로써 그를 잊고자 하는 의식을 치른다든지 말이다.

운명의 상대를 맹목적으로 쫓던 주술사와 의뢰인의 관계는 배신과 상실의 경험을 통해 서로 이해하고 아끼는 일시적 동반자의 관계로 변모한다. 두려웠던 서른 살 온종일 꼬이기만 하던 그날, 파니 앞에는 해골 분장을 한 채 케이크를 들고 등장한 오르페오가 있다. 그는 자신의 숨이 찰 때까지 파니와 함께 춤춘다. 그들의 몸짓에 ‘사랑의 결여가 곧 죽음’이라는 공식은 비틀어진다. 이제 파니는 죽음을 상징하는 오르페오와 함께 사랑의 의미를 새롭게 정의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