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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기르면 풀려난다”

〈비바리움〉 속 기괴한 주택단지 ‘욘더’의 아이디어는 로칸 피네건의 단편 영화 〈여우들〉(2011)에서 시작되었다. 2000년대 중반까지 급성장하다 2008년 경제 붕괴를 겪은 아일랜드에는 절반쯤 짓다가 버려진 유령 주택단지가 생겨났다. 〈여우들〉은 이렇게 고립된 주택에 사는(갇힌) 부부가 어느 날 야생 여우들을 만나며 겪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사진작가인 아내 엘렌은 여우들의 사진을 찍다가 이내 여우가 되어 다시 자연으로 돌아가는 ‘탈출’을 감행한다. 피네건은 여우들을 자연에 빗대 이해할 수 없는 거대한 자연의 힘과, 야생에 등 돌리고 살아가는 현대인의 연옥과도 같은 삶을 제시했다. 첫 장편 영화 〈위드아웃 네임Without Name〉(2011)에서는 고대 삼림지역에 파견된 토지 측량사를 따라 숲을 헤매며 나무와 버섯, 그리고 어둡게 침잠하는 짙은 초록의 이미지를 통해 실체 없는 두려움으로 안내하기도 했다. 따라서 〈비바리움〉 역시 인간과 자연에 관한 이야기로 독해해보는 것은 그럴듯한 시도일 것이다.

감독의 전작들을 함께 놓고 보면 〈비바리움〉의 모호한 이미지들이 조금씩 와닿기 시작한다. 아일랜드의 실제 유령 단지에서 촬영해 적어도 ‘집 같은’ 인상을 주었던 〈여우들〉의 주택은 〈비바리움〉에서 플라스틱 세트장이 되어 더욱 인위적이고 기묘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숲을 뒤덮은 이끼로 다가온 〈위드아웃 네임〉의 녹색은 〈비바리움〉에서 파스텔톤의 부자연스러운 민트색이 되어 관객의 심기를 지속적으로 건드린다. 불운한 자들의 무덤이 된 아일랜드의 유령 단지처럼, 자연이 소거된 ‘9번 집’은 톰과 제마의 무덤이 되었다.

앞선 두 작품이 자연의 모호함 혹은 장엄함으로 공포감을 자아냈다면, 〈비바리움〉은 반대로 자연이 소거된 환경에서 오는 불쾌한 두려움을 공포의 근간으로 삼는다. 피네건은 “인류는 자연으로부터 점점 더 멀어지고 있는 것 같다”라며 “자연이 완전히 제거된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 살아남을 수는 있을지”를 생각해 보게 되었다고 밝혔다. 톰과 제마가 욘더의 연옥에 갇히는 순간, 그들에겐 일말의 자연도 주어지지 않게 된다. 하늘엔 모양이 전부 같은 구름뿐이고, 그마저도 바람이 불지 않아 움직이지 않는다. 딸기를 비롯한 모든 음식에선 아무 맛도 나지 않고, 주변엔 어떤 소리나 냄새도 없다. 정원에 있는 화분엔 조목이 꽂혀 있으며, 땅마저도 자연의 흙이 아닌 점토와 같은 특이한 물질로 이루어져 있다. 아마 영화의 초반 톰과 제마가 따라갔던 태양빛도 진짜 태양이 아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