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어, 🕯 치유(治癒); 치료하여 병을 낫게 함 🕯

마미야의 첫 등장은 기묘하다. 그는 극을 이끌어가는 중요한 인물 중 하나이다. 이 경우 클로즈업 샷으로 그를 강조하며 시작할 수도 있지만, 마미야는 익스트림 롱샷으로 저 멀리서 등장한다. 오히려 금방 퇴장하는 교사의 얼굴과 표정이 화면에 더 잘 드러난다. 카메라 역시 마미야를 향하지 않는다. 마미야가 프레임 밖으로 사라져도 사라지게끔 그냥 둘 뿐이다. 그렇게 해변에 앉아있던 교사를 따라 움직이던 카메라의 주도권은 다시 프레임 속에 등장한 마미야에게로 옮겨간다. 앞으로 교사에게 일어날 일을 보여주듯, 카메라와 교사 모두 마미야의 침범을 저항 없이 받아들인다.

마미야는 만나는 사람들에게 계속해서 이곳이 어디인지, 자신이 누구인지, 당신은 누구인지 묻는다. 아무것도 기억해내지 못하는 듯한 사람에게 친절한, 혹은 친절해야 하는 사람들은 답해줄 수밖에 없다. 그러다 보면 마미야가 켜는 불빛에, 마미야가 떨어뜨리는 물방울에, 마미야가 만들어내는 소음에 속절없이 넘어간다. 그렇게 그를 만난 사람들은 살인을 저지른다.

그러나 이런 마미야의 행동들은 불명확하다. 그가 자행하는 ‘최면술’의 과정들에는 정확한 순서나 정해진 패턴이 없다. 한 가지 규칙적인 것을 꼽자면 상대의 이름을 물어본다는 것이지만, 이 역시 명확한 절차는 아니다. 어느 순간 상대와 그 주변 인물의 정보를 줄줄 읊는 마미야를 보면 이 영화가 세상에 존재할 수 없는 환상을 그려내는 영화였는지 헷갈리게 된다. 우리는 끝까지 마미야가 이 모든 것들을 어떻게 알아냈는지 알 수 없다. 관객은 모르는 숨겨진 대화 속에서 찾아낸 것일지, 아니면 정말로 마미야가 특별한 능력이라도 가진 것일지.

마미야라는 사람 역시 불명확하다. 과연 그는 기억 상실에 시달리고 있는 것일까? 그가 저신 의학을 공부하는 의대생이었다는 사실은 이를 더욱 불명확하게 만든다. 이는 그가 정신 질환을 앓는 사람들의 증상 역시 낱낱이 알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마미야의 정체를 알고 보면 앞선 그의 행동들이 사람들을 끌어들이기 위한 의도로 보인다. 자신의 이야기는 숨기고, 상대의 이야기는 최대한 끌어내는 방식으로 말이다. 

불명확

이런 불명확함은 마미야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이 영화를 이루는 모든 요소가 불투명하다. 이런 불확실성은 영화를 대하는 감독의 태도에서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은 인터뷰에서 “결말이나 비밀, 실체를 설명하는 과정에서 흥미를 떨어뜨리는 할리우드 장르 영화와는 달리, 생략과 모순이 많은 영화는 완벽하지 않기에 다 이해할 수 없어도 괜찮다고 생각하게 된다.”고 이야기한 바 있다. 

이런 구로사와 기요시의 말처럼 생략과 모순이 많은 〈큐어〉에서 관객이 상상할 수 있는 여지는 넓어진다. 그리고 영화를 곱씹게 하는 그 불명확함은 공포라는 장르의 특성을 극대화한다. 예를 들어 우리는 살인에 휘말린 사람들이 왜 살인을 저질렀는지, 그리고 왜 특정한 사람을 택했는지 알지 못한다. 창부를 살해한 회사원, 아내를 살해한 교사, 동료를 살해한 경찰관, 공중화장실에서 남자를 살해한 여성 의사, 실험용 원숭이를 살해한 마미야, 자기 자신을 살해한 사쿠마, 그리고 아내의 죽음을 사주한 타카베까지. 이들 모두가 통상적인 살인범의 특징을 벗어나는 평범한 사람이라는 점과 살해에 이르는 과정이 너무나도 일상적이라는 점을 깨닫게 될 때 관객은 이유 모를 서늘함을 느끼게 된다. (이 영화에서 가장 불안해 보이는 세탁소의 남자가 아무일도 일으키지 않는다는 점도 아이러니하다.)

그러나 차근히 쌓여가는 생략과 모순을 통해 이들이 무의식 속에 고통받아왔음을 추측할 수 있다. 동료를 살해한 경찰관은 취조 중 “동료가 죽이고 싶을 만큼 미웠다.”라고 답한다. 최면이 그 사람의 가치관까지 바꾸지는 못한다고 했던 사쿠마의 말을 빌려보았을 때, 마미야의 최면이 경찰관의 행동의 기폭제가 되었을지언정 동료와의 불만 자체를 만들어낸 것은 아님을 알 수 있다. 반면 의사의 동기는 더 투명하다. 의사의 진찰 장면에서 일어난 희롱과 그런 의사의 고통을 대변하는 듯한 마미야의 말, 그리고 이전의 의사의 경험을 언급하며 살해 방법에 대한 지시까지. 학부 시절 실습으로 쾌감을 얻기도 했던, ‘해부’의 방식을 띄고 있기 때문에 의사의 살인은 더 잔인하다.

이처럼 〈큐어〉의 살인은 모두 일상 속의 고통을 반영하고 있다. 앞서 언급한 세탁소의 남자 역시 불만을 중얼거리는 모습이 불안해 보이지만, 세탁소 주인을 대하는 태도는 친절하다. 이를 통해 그를 마미야에게 홀린 평범한 사람들과 대조되는 모습을 보여주는 인물이 아니라, 도쿄 사람들의 속마음을 대변하는 인물로도 해석할 수 있다. 이 남자가 마미야를 만났더라면 경찰관이나 의사와 같은 결말에 이르렀을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다.

치유(Cure)

최면술사, 혹은 ‘전도사’라고 불리는 마미야 같은 사람들은 고통을 ‘치유’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 치유의 방식은 살인이다. 무의식 중에 고통받아왔던 것들을 무의식중에 없앰으로써 벗어나는 것이다. 무언가에 홀려 본인을 괴롭히는 것들을 없앴을 땐, 후련함을 느끼기도 했었을 것이다. 그러나 고통을 제거한 사람들은 더한 괴로움에 빠진다. 자신이 무슨 짓을 했는지 깨닫는 순간 나을 수 없는 상처가 된다. 과연 이때의 치유는, 정말 ‘치유’일까? 환상적인 줄 알았던 치유는 환장할 것 같은 고통이 된다.

치유의 과정을 보고 있자면 우리 사회의 곪은 지점들이 생각난다. 고통받는 사람들, 그들을 돕겠다는 명목하에 이용하려는 사람들. 언제 시작되었는지 모를, 어쩌면 생명의 탄생부터 함께했을 이 고통의 굴레는 인간 사회를 떠날 생각이 없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