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을린 사랑, ❤️‍🔥 비극을 사랑하는 당신에게 ❤️‍🔥

❤️‍🔥 비극을 사랑하는 당신에게 ❤️‍🔥

드니 빌뇌브, 그을린 사랑

 

 

“그들에게 편지가 모두 전달되면

침묵이 깨지고 약속이 지켜지면

비석을 세우고 내 이름을 새겨도 된다.

햇빛 아래에.”

가족과 함께 수영을 즐기고 있던 나왈은 알 수 없는 영문으로 의식을 잃은 채 발견된다. 머지않아 병원에서 죽음을 맞이한 나왈은 시몽과 잔에게 유언 몇 장을 남긴다. 유언에는 그동안 존재조차 몰랐던 오빠와 오래전 죽은 줄 알았던 아버지를 찾아 편지를 전해주라는 내용이 들어있다. “영혼이 평온”해지려면 해답을 찾아야 한다는 교수의 조언에 따라, 이론 수학자인 잔은 “해결 불가능한 문제”를 풀기 위해 나왈의 고향인 레바논으로 향한다. 탁한 눈동자로 정면을 응시하는 엄마의 사진을 품에 넣고.

 

영화는 나왈의 발자취를 뒤따라 결말에 봉착하는 시몽과 잔의 시선을 교차한다. 캐나다에서 자란 잔은 기독교 극우파 세력과 이슬람 세력이 “마치 덧셈처럼 엄한 논리에 따라 끊임없이 서로에게 앙갚음”을 하던 1970년대 레바논을 이해하지 못하지만 계속해서 전진한다. 엄마의 과거와 마주하는 고통을 겪으면서도 멈추지 못하는 이유는 공통의 아픔을 겪어보지 못한 행운에서 오는 무지와 순진함이다. 도망도 아픔을 알아야 할 수 있다.

 

잔은 다레쉬를 지나 남부 지역의 데롬 마을로 이동하기도, 과거 교도관이었던 학교 관리인을 지나 노쇠한 산파와 마주하기도 한다. 어쩐지 위험해 보이는 검은 양복을 입은 남자들에게 끌려가 안대를 쓰고 “왈랏 샴세딘”과 대면한 시몽도 있다. 아버지와 오빠에게 편지를 전해주기까지 계속 이동해야 하는 일련의 과정은, 다음 목적지를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주기에 맞춰 다시 하늘로 올라가는 철새를 연상케 한다. 잔은 어느 순간 시몽을 간절히 부른다. “네가 필요해.” 결말에 다다르는 과정이 너무도 험난해서 결국 울음이 터진다면 혼자 감당하지 않아도 된다. 철새는 홀로 날지 않으니까. 가야 하는 방향도, 경로도, 거리도 구름에 싸인 듯 온통 흐릿하지만 둘은 서로에게 기댄 채 나아간다.

 

중심에 가까워질수록 드러나는 내막은 충격적이다. 오래전 빼앗긴 아들, 오른쪽 뒤꿈치에 수직으로 박힌 점 3개, 눈앞에서 펼쳐진 참극, 암살, 감옥의 기억, 새 생명의 탄생과 1+1=1. 이 중 관객이 체험할 수 있는 극한의 충격은 버스에서의 무자비한 학살이다. 나왈을 비롯한 몇 명의 몸뚱이를 싣고 달리던 버스는 길을 가로막은 이스라엘 군인들 앞에 정차하고 순식간에 총탄이 날아온다. 어느 한쪽 편을 들지 않고 “평화를 지지”하던 나왈은 살아남기 위해 주머니 속 숨겨두었던 십자가 목걸이를 꺼내며 외친다. “나는 기독교인이에요!”

그 선택의 결말은 끔찍하게도 불길에 휩싸여 시커먼 연기로 하늘을 뒤덮는 버스 한 대와 끝내 엄마에게 가 닿지 못하고 쓰러진 어린 시체다. 무용한 부르짖음 끝에는 홀로 살아남은 나왈을 지켜보는 카메라가 있다. 카메라는 나왈과 함께 지옥의 고비를 넘어 생존한 관객의 시선이다. 목숨을 위협하며 툭툭 떨어지는 기름부터 주저앉은 다리에 느껴지는 모래알까지, 1분 남짓한 시간 동안 경험한 부조리의 리얼리즘은 화면이 전환되고도 숨 막히게 살아있다.

 

실제 레바논 내전에서 기폭제가 되었던 1975년 4월의 버스 습격을 재구성한 이 장면은, 역사 속에서도 영화 내에서도 중요한 지점으로 작용한다. 당시 레바논 남부에 침투해 있던 이스라엘 군대가 팔레스타인 난민들이 탄 버스를 덮쳤고, 이슬람 세력이 팔레스타인 주민을 지원하며 반격을 감행한다. 남부에는 이스라엘이, 북부에는 시리아가 위치해 지리적으로 불운했던 레바논은 십자가 목걸이를 숨겼다가도 재차 꺼내야 하는 나왈을 통해 드러난다.

 

종교에 의해 남편을 잃고 아들을 두 번이나 뺏긴 그는 “더 이상 잃을 것이 없어요. 민족주의자들에 대한 증오뿐이죠.”라고 말한다. 그는 피해자나 생존자가 아닌, 처형인이 되고자 이슬람 무장 단체에 합류한다. 민족주의자 수장 암살에 성공한 나왈은 크파르 리얏의 72번 수감자가 되고 감옥에 들어간 직후 맨발로 머리를 깎인다. 이 장면은 기시감이 든다. 영화 첫 장면에 가죽 부츠를 신은 남성에게 머리를 밀리는 맨발의 보육원 소년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슬픔과 분노가 일렁이는 소년의 눈 저변에는 오래 묵혀 둔 듯한 체념이 깔려 있다.

 

타인의 강제에 모(母)와 모(毛)를 잃는 비극. 그중에도 최악의 비극은 나를 둘러싼 환경에 ‘나’를 약탈당한 것이다. 냉담한 미치광이가 우글거리는 불모의 사막지대에서 삶을 착취당하고, 가능성을 말살당하고, 그렇게 자기도 모르는 새에 목을 옥죄는 손의 주인은 신이 아니라 자신이 되었다. 그와 달리 나왈은 모욕당하기 직전의 상황 속에서 노래를 부른다. 다른 수감자의 비명을 억누르고 남성의 방식으로부터 ‘나’를 잃지 않기 위해서. 그렇게 굴복시켜야 하는 정치범 대신 ‘노래하는 여인’으로 13년을 살아남는다.

또 다른 충격은 얽히고설킨 탯줄이다. 마르완이 오래전 빼앗긴 아이의 행적은 이렇다. 남부 기독교도 땅의 보육원에서 자란 아이는 시대적 급류에 휩쓸려 회교도 잔당을 따라가고 저격수로 성장했다. 이후 어머니를 찾겠다는 결심으로 다레쉬의 가장 무서운 전쟁광이 되었으며 훈련과 개조를 통해 크파르 리얏의 고문 기술자가 되었다. 그리고 “5월의 아이” 니하드는 아부 타렉이 된다. 결말부, 그는 자신을 찾아온 시몽과 잔에게 편지 두 통을 받는다. “아이들 아버지”이자 동시에 “내 아들”일 수 있을까? 한 가지 확실한 점은 스스로 깨닫지 못한 자는 결코 자신을 용서할 수 없다는 것이다.

“1 + 1은 2야. 1이 될 수는 없어.

잔, 1 + 1 = 1이 될 수 있을까?”

〈그을린 사랑 Incendies〉(2011)는 오이디푸스 신화를 기반으로 한 동명의 연극에 뿌리내리고 있다. 고대 비극의 전형으로 알려진 이 신화는 최고 지성으로 추앙받던 오이디푸스가 실은 부친을 살해하고 친모와 동침했음을 깨닫고 스스로 눈을 찌르는 내용을 담고 있다. 오이디푸스가 완전한 악인보다는 오만과 무지에 따른 과오를 저지른 인물로 이해되는 것처럼, 니하드 또한 죄인 이전에 전쟁에 순응할 수밖에 없었던 피해자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진실을 향해 계속 물음을 던지다 종국에는 눈을 멀게 함으로써 자신의 죄를 직시하고 책임진 오이디푸스와 달리, 니하드에게 그럴 능력 따위는 없다. 이 능력은 오이디푸스의 어머니인 이오카스테에게 즉 현대의 오이디푸스의 어머니인 나왈에게 전승되고, 남겨진 오이디푸스는 무능력한 민족주의자로 전락했다.

 

기원전 400년경, 수동적이고 환상적으로 그려졌던 이오카스테는 2000년이라는 세월을 지나 나왈이라는 주체적 여성으로 다시 태어났다. 그녀는 진실 앞에서 정신을 잃을지언정 도망치지 않는 강인함과 원수에게 총구를 겨누는 복수의 의지, 아이를 낳고 사랑하는 헌신의 의지를 갖췄다. 그리고 여전히 전쟁의 공포가 잔재하는 현실로부터 개인을 구원하기 위해 마지막 관용을 베풀어 편지 두 장을 보낸다.

“언젠가 너를 꼭 찾을 거야. 엄마가 약속할게. 우리 아가.”

“어떤 일이 있어도 널 사랑할 거야. 네가 태어났을 때 해준 약속이란다.”

어쩌면 이 영화의 예언은 “언젠가 너를 꼭 찾을 거야”일지 모른다. “어떤 일이 있어도 널 사랑할 거야”는 예언에 대한 나왈의 대답이다. 결국 찾아낸 아들을, 결국 사랑하고 마는 것. 불가하지만 해내는 것.

 

철새가 하늘을 향해 도약할 때 새는 의지로서 날고 있을까, 운명으로서 떠도는 것일까? 테이레시아스의 예언을 피할 수 없었던 것처럼, 니하드에게 닥친 운명 또한 피할 수 없다. 그 알량하고 졸렬한 운명은 사랑하는 사람들을 찢어 놓고, 살인자로 만들고, “순교자” 같은 허황한 꿈에 들뜨게 한다. 보고 있어도 아무것도 보지 못하게끔.

 

그 꿈 때문에 영원히 계절의 땅에 정착할 수 없게 된 철새가 있다. 자유와 유리된 채 하늘에서 내려올 수 없는, 탄생과 죽음까지 평생을 떠돌아야 하는 철새의 영혼. ‘1+1=1’이라는 난제에 쌍둥이는 ‘함께’라는 해답을 내놓고, 나왈은 이승과 반대의 땅에 정착했다. 그러나 니하드에게 해답이나 정착할 수 있는 땅이란 없다. 그래서 ‘영혼도 평온치 못하다’. 그는 항상 보육원의 소년이자, 아부 타렉이자, 비석 앞에 선 무력한 사내 혹은 하늘을 떠돌아다니는 눈먼 철새다.

230223_수연 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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