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선, 🪵 경계 그 어딘가, 경계 그 너머 🪵

알리 아바시, 〈경계선〉

독특하고 환상적인 세계를 그리는 욘 아이비데 린드크비스트의 원작 소설이, 건조하고 과감한 연출이 돋보이는 알리 아바시 감독과 만나 완성된 영화 〈경계선〉은 관객에게 참으로 기묘하고 신기한 경험을 선사한다. 영화는 티나와 보레의 상호작용을 통해 인간 세상의 ‘경계’를 마구 흩뜨린다. 아름다움, 성별, 본능, 윤리란 무엇인지. 이를 어떻게 구분 짓는지. 나아가 이를 규명하는 ‘인간’은 누구인지. 이 어지럽고도 강렬한 경계 넘기에 함께해 보자.

🪵 경계 그 어딘가, 경계 그 너머 🪵

* 책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스포일러가 다수 포함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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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하면 별들을 포기하면 우주를 얻게 되니까”라고 헤더는 말했다.

“그런데 물고기를 포기하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

_룰루 밀러,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하늘에 떠 있는 별들의 중심이 사실은 지구가 아니었음을 밝혀낸 코페르니쿠스. 그 당시의 혼란처럼 “물고기를 어떻게 포기할 수 있나”로 시작된 물음이 “물고기를 포기할 수 있구나”로 끝맺은 순간을 기억한다. 비늘로 덮인 채 물속을 헤엄쳐 ‘물고기’가 되어버린 생명체들을. 물고기를 포기한다는 건 어떠한 믿음과 사회 체계를 뒤흔드는 행위이다.

이 책은 인간 중심의 시각으로 만들어진 범주 안에 수많은 생명체를 몰아넣고 구분 짓는 행위를 비판한다. 그 예로 폐어가 연어보다 소와 진화적 공통점이 많다는 점을 꼽는다. 실상 폐어와 소는 호흡할 수 있는 ‘폐’와 같은 기관과 후두개가 있지만, 연어는 없다. 폐어의 심장 구조 역시 소와 더 비슷하다. 이러한 반증을 토대로 보면 폐어는 ‘물에 산다’는 단순하고 강력한 이유로 연어와 함께 ‘어류’로 명명된 셈이다. 이처럼 인간에 의해 만들어진 분류법은 특정 존재를 함께 묶거나 배제하며, 결국 진리로 굳어져 버리곤 한다.

〈경계선〉 역시 우리가 당연하다고 여겼던 믿음을 한 꺼풀 벗겨낸다. 주인공 티나의 세상은 보편적인 인간의 삶과는 사뭇 다르다. 그는 타인뿐만 아니라 스스로조차 자신을 괴물로 치부하는 박색한 외형을 지녔다. 동거인 롤랜드를 비롯한 주변 사람과는 잘 어울리지 않는다. 여우와 교감하는 게 더 익숙하며, 숲속에 파묻히거나 수면 아래로 잠길 때 자유를 느끼는 존재. 분만을 시작한 이웃을 태워 병원으로 향하고 있음에도 기꺼이 순록이 먼저 지나갈 수 있도록 차를 세우는 인물. 그게 바로 티나다. 무엇보다 그는 다른 이들의 감정이 코끝에서 느껴지는 기이한 특성 덕분에 스웨덴에 있는 한 항구에서 출입국 세관 직원으로 근무한다. 아동포르노가 한가득 담긴 메모리 카드도 단번에 찾아냈을 정도로 그의 비범한 능력은 수상한 사람을 색출하기에는 안성맞춤이다.

어느 날 티나에게 보레라는 인물이 찾아온다. 출입국에서 만난 그는 수상한 냄새를 한껏 풍기며 묘한 긴장감을 자아낸다. 가방을 뒤져 수상한 물건이 있나 살펴봤던 첫 만남. 옷 수색까지 해보았지만 애벌레 부화 장치 빼고는 딱히 이상한 점을 찾아볼 수 없었던 두 번째 만남. 다만 남성인지 여성인지 모를 형태와 꼬리뼈 위 흉터 자국이라는 공통점을 발견한 티나는 그에게 왠지 모를 반가움과 설렘을 느낀다. 아마 그날은 남몰래 맡았던 보레의 옷 냄새로 기억되었으리라.

“예전처럼 살기 싫어요.”

“정말이에요?”

“난 잃을 게 없어요.”

“잘 생각해야 해요. 우리가 사는 방식은 쉽지 않아요. 힘든 삶이에요.”

“그래도 아름답겠죠.”

“무척 아름다워요.”

보네가 건넨 애벌레를 씹어본다. 어린 시절 벼락을 맞아 생긴 흉터도 손가락으로 문질러본다. 인간에 의해 잘린 꼬리 녀석도 가여워 해본다. 사실은 티나와 보레 모두 인간이 아닌 트롤이었음이 밝혀지며, 영화는 이성理性적 규범에서 벗어난 그들이 자연 속에서 만끽하는 자유를 참으로 시원하고 달콤하게 묘사한다. 맨몸으로 숲 한복판을 함께 내달린다든지, 물장구를 치며 실컷 소리를 질러본다든지, 그르렁거리다 끝내 키스한다든지. 비가 한껏 몰아치는 그날부터 시작된 보레와의 거센 부닥침, 비슷한 존재와 함께하는 귀중한 경험들은 티나에게 자신의 정체성을 긍정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리라.

“참 아름다운 곳이네요.”

“동화에 나오는 곳처럼.”

“맞아요.”

“잘 생각해야 해요. 우리가 사는 방식은 쉽지 않아요. 힘든 삶이에요.”

“요정들이 와서 춤추는 걸 상상했어요.”

“정말 그랬을 거예요. 아마도요.”

그 굉장한 부닥침. 소위 ‘남성성’이라고 불리는 외형을 지닌 보레와 ‘여성성’을 띤 티나가 정반대된 위치에 서게 되는 설정은 가위 충격적이다. 티나는 일종의 남성 성기를 지닌 채 애를 낳지 못하는 신체 구조지만, 보레는 수정되지 않은 난자 ‘히시트’를 낳을 수 있다. 요정이 춤추는 듯한 곳에서 서로를 원하던 그날은 사회적 성을 넘어 우리의 생물학적 성차에 대한 구분을 무너뜨린다. 이 역시 트롤이라는 상상력에 기대 만들어진 장면에 불과할지라도, 여전히 다수에 의해 지워진 존재를 드러내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아직 안 늦었어요. 우리에겐 사명이 있어요.

종족을 이어갈 수 있어요. 당신이랑 내가. 우린 다시 많아지겠죠.”

“난 못 해요. 악마가 되어야 할 이유를 모르겠어요.”

“인간이 되려고요?”

“누구도 해치기 싫어요. 이렇게 생각하면 인간인가요?”

영화의 또 다른 반전은 티나가 그토록 쫓았던 인신매매범이 바로 보레였다는 점이다. 그는 부모를 실험체로 쓰던 인간에게 자신의 고통을 되갚아 주고자 그의 히시트와 인간 아기를 뒤바꾼다. 그리고 인간의 아이를 팔아넘김으로써 비로소 “인간이 인간을 해치는 행위”를 도왔다는 궤변을 늘어놓는다. 트롤이 인간의 아이를 훔쳐 자신의 아이와 뒤바꾸는 설정은 북유럽 신화에서 자주 찾아볼 수 있지만, 이것이 현실의 범죄 사건과 맞물려질 때 영화 속 인물에 대한 평가는 더욱 분쟁적인 성격을 띠게 된다. 자신과 종족을 위해 복수를 꿈꾸며 누군가를 해치는 보레, 그를 향해 분노를 짖어내는 티나, 그리고 이 상황을 지켜보는 인간들. 영화 안팎으로 무엇 하나 뚜렷하지 않다. 트롤도 인간도 어떤 도덕이나 윤리로 규명할 수 없다는 듯이, ‘인간다움’이라는 구분 짓기 자체의 무용함을 꼬집는 듯이. 그렇게 영화는 그 판단을 관객의 몫으로 남긴다.

레바라는 이름을 지니고 살아갈 티나 앞에 새 생명을 부여하며 내리는 막. 으레 그랬듯 아이의 꼬리를 잘라내 인간답게 길러낼 것인지, 핀란드에서 보레와 함께 새 출발을 할지, 티나의 선택을 확신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인간과 트롤의 경계 어딘가, 그 너머를 향해 두 존재의 미래를 그리고 싶다. 활짝 열린 자동차 안으로 들어가던 여우처럼, 인간의 옷을 입었음에도 부단히 땅을 밟아가던 맨발처럼, 그저 바라보던 곤충을 잡아 아이에게 먹이던 행위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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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란은 참 무섭고 어지럽다. 불편하고 거북하기까지 하다. 평온하고 안정적인 삶에 필연적으로 균열을 내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환영받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이 영화도 그렇다. 하지만 어떤 존재는 그 균열로 싹을 틔워내고, 숨을 쉬고, 좋은 열매를 맺을 기회를 얻는다. 그래서 궁극적으로 사회가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혼란이 수반된다.

그 불안과 혼돈의 끝이 유토피아일지 디스토피아일지는 장담할 수 없다. 그러나 당신의 ‘물고기’를 포기하면 보이지 않던 세계가 열릴 것은 분명하다. 오래된 전통, 당연해진 믿음, 통용되는 상식이 비틀어진 순간. 별을 포기하고 우주를 얻은 헤더처럼. 자신의 정체성을 마주하고 경계선에 우뚝 선 티나처럼.

230511_한님 보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