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가린, 🚀 SOS, 달의 이웃에 대한 구조를 요청한다 🏗️

파니 리에타르·제레미 투루일, 〈가가린〉

⟨가가린⟩은 ‘가가린’ 주택단지에 대한 각인이다. 영화는 실제 가가린이 세워지고 무너지는 과정을 기록한 영상과, 우주를 동경하던 소년이 자신의 터전인 가가린을 지키고자 한다는 상상력을 함께 담아낸다. 사실과 허구 사이의 어딘가에 놓인 주인공 유리는 끝내 자신만의 아지트를 건설하고 꿈을 향한 마지막 발사를 준비한다.

🚀 SOS, 달의 이웃에 대한 구조를 요청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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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 일련번호 1641D 가가린 주택단지, 달의 이웃에 대한 구조(SOS)를 요청한다.

영원한 건 없다. 유통기한이 적힌 식료품처럼, 한철 피고 지는 꽃처럼. 한때는 막강했던 세력도 끝내 쇠락하는 것처럼. 그리고 여느 인간의 삶이 유한한 것처럼.

그래도 우리는 종종 영원이라는 환상을 붙잡는다. 연인, 친구, 선망하는 대상에게 가장 강렬하고 고귀한 애정을 약속할 때.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어떤 상태나 믿음을 지속해야 삶을 영위할 수 있을 때. “포기하지 마. 가가린은 영원해.” 달의 이웃에게 영원은 우주비행사 유리 가가린에 대한 존경이자, 가가린 주택단지와 자신의 생존을 위한 보호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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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1년 4월 12일 인류 최초의 유인 우주비행선 보스토크 1호가 발사됐다. 비행선은 108분이라는 시간 동안 지구 궤도를 돌고 지구로 돌아왔다. 그야말로 놀랍고도 성공적인 비행. “지구는 푸른빛이었다.”라는 말을 남긴 소련의 우주비행사 유리 가가린(Yurii Gagarin)은 그렇게 지구를 떠나 우주에 간 최초의 인간으로 역사에 기록되었다.

그리고 파리 외곽의 도시 이브리쉬르센(Ivry-sur-Seine)에 그의 이름을 딴 가가린 공공주택단지(Cité Gagarine)가 세워졌다. 5~60년대 당시 프랑스는 급격한 도시화로 인해 주거 문제가 심각해지던 상황이었고, 이에 프랑스 공산당을 중심으로 대도시 외곽에 공공임대주택을 건설하는 작업이 진행되었다. 영화 오프닝에 등장하는 4:3 비율의 흑백 장면은 유리 가가린이 직접 가가린 주택단지의 준공식에 방문한 영상이다. 열띤 환호를 받던 유리 가가린과 만세를 외치던 단지 주민들, 갓 지어진 듯한 네모난 고층 건물들과 그 사이를 가로지르던 청년들의 모습이 스쳐 지나간다.

세월은 미래와 희망의 상징인 가가린 주택단지도 변하게 한다. 벽 틈새로 가루가 떨어지고 조명은 거의 제 기능을 하지 못한다. 비상대피시설조차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다. 낙후된 건물 안을 저소득층과 이민자 계층만이 가득 채울 뿐이다. 그곳에서 누군가는 다른 곳으로 떠나기를 소망하고, 다른 누군가는 집을 잃을지도 모른다고 불안해하며, 어떤 이는 건물을 지키고자 고군분투한다.

“너는 뭐 하고 싶은데? 꿈이 뭐야? 죽을 때까지 여기 살 거야?”

영화 초반 세 친구가 옥상에 누워 있다. 디아나가 유리에게 묻는다. “죽을 때까지 여기 살 거야?” 유리는 묵묵부답으로 하늘만 바라볼 뿐이다. 답변은 이내 영화 엔딩까지 유보된다. 우주인이 되고 싶었던 유리는 환상인지 현실인지 모를 죽음의 공간에서 그 꿈을 이룬다.

유리에게 가가린 주택단지는 남다른 의미의 ‘집’이다. 먹고 자며 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물리적인 형태의 주거이자, 유일무이한 가족인 어머니와의 추억이 깃든 마음의 안식처다. 게다가 우상인 유리 가가린의 이름이 새겨진 자랑스러운 곳이기까지 하다. 물론 이제는 어머니와 연락도 제대로 되지 않고, 가가린에 대한 사람들의 경의도 흐려졌지만 말이다. 당장 눈앞에 닥친 일은 철거 위기에 놓인 나의 가가린을 지키는 것이다.

그래서 유리는 가가린에 있는 모든 것을 관찰하고 수리한다. “A동-8층, B동-할로겐등 8개.” 건물 각각의 동들을 점검하고 필요한 부품을 꼼꼼하게 확인한다. 옥상에 있는 아지트로 가 공구를 챙긴 후 블랙홀로 향한다. 어머니가 남긴 금목걸이까지 팔아 얻은 골재로 또다시 고장 난 곳을 손본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달에 착륙한 우주비행사처럼 이곳저곳을 탐사하던 가가린의 그 소년을 응원할 수밖에 없다.

“우리는 달의 이웃이야.”

그러나 유리의 노력이 무색하게도 가가린 주택단지에 철거 명령이 내려진다. “전면 철거를 위한 6개월 내 주민 철수 권고.” 저마다 새로운 집을 찾아 떠나는 이웃들을 유리는 묵묵하게 지켜볼 수밖에 없다. 화해하지 못한 채 떠나버린 우삼부터 데리러 가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않은 어머니까지, 이제 그의 곁에는 아무도 없다. 유리에게는 가가린뿐이다. 그래서 소년은 그곳에 남아 가가린의 최후이자 유일의 이웃이 되기로 결심한다.

텅 빈 건물의 벽을 부숴 각각의 집을 승강구처럼 도킹한다. 계속되는 추위에 생존 장치의 하나로 온실을 설치한다. 검은 천에 난 구멍 틈으로 들어오는 햇살이 별자리 모양을 만드니 우주와 다를 게 없다. 달리가 가져온 LP판을 켜고 튀르키예 회전 춤을 추니 마치 자전하는 행성이 된 것 같다. 무너지기 직전의 건물임이 무색하게도 가가린은 유리만의 아름다운 비행선이 된다. 그곳은 현실보다는 가볍되 생을 이어갈 정도의 중력을 지닌 특별한 공간이다.

“잘 가, 가가린.”

이윽고 찾아온 철거 당일 뿔뿔이 흩어졌던 가가린의 이웃들이 그곳을 다시 찾아온다. 트럼펫을 부는 할아버지와 꽃을 든 사람들, 저마다 다른 기억과 감정을 지닌 이들이 자신의 소중한 터전을 잘 떠나보내고자 하는 마음으로 모였다. “RIP GAG.” 이웃들이 휴대전화 플래시를 터뜨리며 함께 카운트다운을 센다. 5, 4, 3, 2, 1.

그 찰나에 또 다른 빛이 터져 나온다. 짧게 세 번, 길게 세 번, 또다시 짧게 세 번. 모스부호를 형상화한 빛이 건물 한 층을 가로질러 번쩍인다. 처절하지만 아름다운 구조 신호다. 언젠가 유리가 만든 안경을 쓰고 개기일식을 관람하던 그때처럼 이웃들은 고개를 들고 이를 하염없이 바라본다.

그 순간 한 소년의 꿈도 발사된다. 건물 폭발의 여파인지 상상일지 모를 무중력의 세계로 넘어간 소년은 너무나도 익숙한 그 공간을 유영한다. 아래에서 위로 복도 끝 저편으로 떠다니다 끝내 창문 밖 지구를 발견해 낸다. 참으로 푸른빛이다. 헬멧을 쓰고 옥상 문을 크게 발로 찬다. 잡아당기는 힘은 이제 존재하지 않기에 가가린도 소년도 저 밤하늘 멀리 사라져 버린다.

영화 곳곳 유리가 붉은빛으로 휩싸인 장면이나 박살 난 아지트에서 홀로 추위를 견디던 모습은 결국 죽음으로나마 그가 염원하던 꿈에 도달한 것으로 보인다. 물리적·사회적 지지체계가 되어준 집이라는 공간을 잃은 그에게 허락된 유일한 세계에서, 존경하던 유리 가가린처럼, 가가린 주택단지라는 우주비행선을 타고서 말이다. 강렬하고 고귀하다. 현실이라고 믿고 싶어진다. “잘 가, 가가린.” 이는 끝내 철거된 가가린의 궤도를 따르는 유리의 생에 부여하는 감독 나름의 위로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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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가가린에서 자랐어요. 그래서 자랑스럽고요.”

“가가린은 아픈 손가락이에요.”

“이젠 사진만 남았어요. 다 무너지더라도 나중에 꼭 다시 지을 것 같아요.
그냥 건물인 건 아는데 얘기를 많이 하게 되니까 사람인 것처럼 ‘걔’라고 불러요.”

이제는 사라져 버린 가가린 주택단지와
가가린을 사랑한 나머지 그가 되어버린 유리.
기록과 창조로 잠시나마 이들을 붙잡으려는
영화의 진심을 기억하며.

230817_한님 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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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08월 24일 / 2:00 오후

‘달의 이웃’으로 남기를 선택한 유리를 충분한 시간을 들여 관찰하는 글의 시선이 좋았습니다. 함께 타워크레인 위에 올라갔을 때 유리가 디아나에게 우주 교외에 대해 설명하는 대목이 생각났거든요.

“우주에서 교외는 별 주변을 말해. 태양 주변처럼. 빛은 덜해도 그게 없으면 별도 없어.”

대도시의 주변에 위치해 빛은 덜해도, 대도시를 굴러가게 만드는 건 가가린과 같은 교외의 사람들이잖아요. 이웃이라는 단어가 그런 ‘교외’의 중요성을 알아봐주는 것 같았달까요?

또 제가 이 영화를 정말 좋아하면서도 볼 때마다 슬퍼지는 건 죽음을 앞둔 공간을 너무도 아름답게 기록했기 때문인데, 한님의 문장이 그런 슬픔을 머금은 아름다움을 잘 표현하고 있어 좋았어요.

“무너지기 직전의 건물임이 무색하게도 가가린은 유리만의 아름다운 비행선이 된다. 그곳은 현실보다는 가볍되 생을 이어갈 정도의 중력을 지닌 특별한 공간이다.”

읽으면서 이 노래 가사가 생각났어요: “아름다운 것들을 보면 슬퍼지는 이유는 잠시라도 가질 수 없다는 걸 알게 되었으니까”

오지은서영호-404 (https://youtu.be/GPitngSI5U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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