옐라, 🐦‍⬛ 몰락의 백일몽 🐦‍⬛

유령. 살아있다고도, 죽었다고도 볼 수 없는 애매한 상태, 혹은 정처 없이 어딘가를 떠도는 비가시적인 존재. 크리스티안 페촐트의 ‘유령 3부작’은 각각 독일 사회에서 이렇게 유령이 된 이들을 포착한다. 〈내가 속한 나라〉는 68혁명의 잘못된 유산인 적군파였던 도피자를, 〈유령〉은 각자 다른 사정으로 도시를 떠도는 세 여성을 다룬다. 그러고 보면 이어지는 역사 3부작에서도 페촐트의 주인공들은 항상 어딘가를 표류하고 있었다. 한 나라를 가른 경계를 슬그머니 넘나드는 이들, 사회에 돌아오지 못하고 표류하는 끔찍한 비극의 생존자, 죽은 이의 신분을 뒤집어쓰고 국경을 넘으려는 남자.

〈옐라〉 역시 통일 후 독일에 감도는 음산한 기운이 곳곳에 스민 작품이다. 영화는 동명의 주인공이 하노버에서 일자리를 얻고 돌아오는 기차에서 시작된다. 구 동독 지역의 소도시 비텐베르게에 살던 옐라는 파산한 남편과의 실패한 결혼생활을 정리하고 하노버에서 새로운 출발을 준비하려 한다. 전 남편 벤은 자신의 경제적 실패를 상징하는 옐라와의 파경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그를 스토킹하는데, 옐라가 자신이 원하는 바를 들어 줄 생각이 없어 보이자 동반자살을 시도한다.

그러나 놀랍게도 물 밖으로 기어나온 옐라는 꿋꿋이 하노버행 기차에 오른다. 엘베강의 물을 그대로 뒤집어쓴 채로, 추위에 떨며. 그렇게 힘들게 도달해야 했던 이유는 하노버의 첫 풍경에서 드러나는데, 바로 여유롭고 (그래서) 단란한 가정에 대한 열망이다. 그러나 자신의 쓸모를 증명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그곳에서 옐라에게 허락된 것은 어디서나 볼 수 있는 기능적인 디자인에 적막한 호텔의 쓸쓸함 정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