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 👽 영화는 언제나 그곳에 있다 👽

스티븐 스필버그, 〈E.T.〉

두려움과 매혹을 동시에 안겨 주는 미지의 존재 이티는 우리가 스필버그의 영화에서 목격하고자 하는 그 무엇이다. 이 낯선 존재에게 강렬한 이끌림을 느낀 소년 엘리엇은 주변에서 그의 말을 믿지 않고 우습게 여겨도 개의치 않으며, 이티를 두고 간 무리를 다시 지구에 불러오기 위해 갖은 노력을 시작한다.

👽 영화는 언제나 그곳에 있다 👽

스티븐 스필버그, 〈E.T.〉

영화를 사랑하는 이야기를 담은 영화에 속수무책으로 넘어가곤 한다. 자크 드미의 영화를 그렇게까지 좋아한 것도 아니지만, 아녜스 바르다가 사랑을 담아 만든 그의 어린 시절에 관한 영화 〈낭트의 자코〉는 너무 좋아해서 프랑스 여행 중 굳이 낭트에 방문했다(별 거 없었다). 영화를 너무 사랑하는 소년 사메이의 이야기를 담은 〈라스트 필름 쇼〉의 마지막 장면에서 감독이 보고 자란 수많은 감독의 이름이 열거되는 대목은 갑작스런 감상주의임이 분명했으나, 찡한 마음 앞에 비평적 시선은 큰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그래서 〈파벨만스〉에서 서툰 손으로 영화를 만드는 새미가 무작정 찾아간 유니버셜 스튜디오에서 무려 존 포드(!)를 만날 때, 극장에 앉아있던 나는 떠오르는 미소를 감출 수 없었다. 어렸을 적 집에 꽂혀 있던 위인전 중에서도 반복해 읽었던, 여전히 기억에 남는 몇 안 되는 이야기 중 하나였다. 영화가 좋아 어린 시절부터 혼자 작은 카메라로 엉성한 영화를 만들고, 영화가 좋은 나머지 유니버셜 스튜디오에 무단침입해 빈 사무실을 자신의 자리로 만들었다는 17세의 소년 스필버그.

그 어린 시절 “위인전”의 기억이 너무 강렬했던 나머지, 이후 본 스필버그의 영화들에서 늘 영화를 향한 사랑을 찾게 되었다. 절망적인 세계관, 붕괴하는 가족, 심지어는 큐브릭 영화와 같은 야심을 품은 작품에서마저 스필버그에게서만 느껴지는 어떤 것이 분명히 존재했다. 그의 인물들이 가진 불완전함, 혹은 그럼에도 느껴지는 인간을 향한 사랑이나 희망 같은 것들. 그 사랑을 잃지 않은 불완전한 우리에게 스필버그는 언제나 꿈결 같은 놀라움을 선사해 왔다. 그리고 그런 스필버그 영화의 정수를 담은 작품이 바로 〈E.T.〉라고 나를 포함한 많은 이들이 인정할 것이다.

사실 스필버그의 작품들을 늦게 접한 편인 나에게 스필버그 영화만이 갖는 어려움이 있었다. 소위 ‘고전 명작’의 칭호를 획득한 ‘할리우드 영화’를 관람할 때의 어려움. 내놓는 작품마다 진기한 볼거리와 아름다운 이야기로 줄줄이 흥행시킨 그이지만, 그의 영화를 보고 자란 시네필들과 함께 나이를 먹은 영화는 어쩔 수 없이 그 흔적을 담고 있다. 영화와 함께 나이를 먹었다면 시각적 충격으로 다가왔을 장면이었으련만. 스무 살이 다 되어 이 영화를 처음 보았던 나에겐 그다지 특별하게 느껴지지 않았었다.

그러나 〈파벨만스〉를 보고 나서 다시 본 〈E.T.〉는 조금 달랐다. 시간이 지난 지금 영화 속 외계생명체는 스필버그 영화의 상징과도 같은 존재가 되었다. 두려움과 매혹을 동시에 안겨 주는 미지의 존재는 우리가 스필버그의 영화에서 목격하고자 하는 그 무엇이다. 엘리엇은 이 낯선 존재에게 강렬한 이끌림을 느끼고, 계속해서 그를 알아가고 옆에 두고자 한다. 주변에서 그의 말을 믿지 않고 우습게 여겨도 개의치 않으며, 늘 그의 옆에 있겠노라 다짐하기도 한다.

엘리엇과 이티의 관계는 관객이 영화와 맺는 관계와도 유사하다. 관객은 매우 개인적인 이유로 영화와 사랑에 빠진다. 미지의 존재에게 매혹당한 첫 번째 경험이라서, 힘들 때 꼭 필요했던 위로를 건네서, 혹은 그저 재미있어서, 어떤 영화는 비평이 끼어들 자리를 내어주지 않는다. “꿈의 공장”으로 불릴지언정, 그 영화와 맺은 개인적인 관계는 필요할 때면 언제고 찾아와 나를 위로한다. 이처럼 영화 관람은 바로 옆에서 누군가와 함께 관람해도 전혀 다른 감상을 받은 채로 나올 수도 있는 개인적인 행위이다.

엘리엇은 앞서 살펴본 영화와 사랑에 빠진 소년들처럼 자신이 처음 마주한 이 미지의 존재와 사랑에 빠졌다. 어린 시절 부모님이 이혼한 뒤 허전함을 달래기 위해 외계인 친구를 상상하며 지냈다는 스필버그처럼, 부모님의 별거로 인해 느끼는 외로움을 달래주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설명할 수 없는 인력으로 영화에 빠져든 것처럼, 상상의 세계와 상상적 존재가 나를 이 세계에 붙들어 놓는 유일하고도 강력한 힘이 될 때가 있다.

“I’ll be right here.”

그러나 우리가 종종 일상에서 벗어나기 위해 영화를 찾듯, 상상적 존재는 언제까지나 나와 붙어 있을 수만은 없다. 갖은 노력 끝에 이티를 두고 간 무리를 다시 지구에 불러오는 데 성공했지만, 엘리엇은 어느새 정이 들어 버린 이티를 보내고 싶지 않아 한다. 그런 엘리엇에게 이티는 자신의 심장처럼 붉은 손끝을 갖다댄다.

그 순간 엘리엇이 본 것은 무엇이었을까. ‘난 언제나 여기 있을 거야’ 라는 말처럼, 이티라는 존재는 영화를 사랑하는 수많은 이의 마음 한 켠에 콕 박혀 영화와 사랑에 빠지게 했을 것이다. 그리고 〈파벨만스〉의 새미를 통해 스필버그가 어린 스필버그를, 혹은 엘리엇을 다시 스크린 위로 불러왔을 때, 스필버그는 그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그의 마음 한 켠에도 여전히 이티가 있음을 고백한 셈이다. 다시 꺼내본 〈E.T.〉의 이 장면이 내가 속수무책으로 이 영화와 사랑에 빠진 이유이기도 하다.

‘대중적인 감독’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지만, 어쩐지 섣불리 좋아한다고 말하긴 어려웠던 그의 영화들을 떠올린다. 다만 그가 영화를 사랑하고, 이야기를 사랑하며, 영화를 통해 사람들의 마음속에 어떤 자리를 만드는 것을 사랑하는 감독이라는 것을 이제는 알 것도 같다.

240509_성하 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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