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욱, 헤어질 결심
손을 뻗어 흘러들어오는 물을 맞는다. 부드럽게 바스라지는 모래를 손안에 굴려 본다. 모래처럼 사랑은 다 잡히지 않고 미끄러지지만, 그마저 가장 가까이에서 감각하겠다는 듯이.
서래는 보이는 것을 믿는다. 결혼했던 남자는 출입국 공무원 출신에, 마음을 갖고 싶은 남자는 경찰. 규율 권력을 내재화해야 하는 이들을 가장 가까이에 둔다는 사실은 일견 그의 디아스포라 정체성과 거리가 있어 보인다. 그러나 서래는 두 사람 모두 바로 옆에서 자신을 보호해줄 수 있는 ‘품위 있는’, 아니 적어도 그래 보이는 사람들이기에 곁을 내어준다. 이주여성의 이야기를 들으려는 사람이 없는 사회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듣고 울어준 사람과, 피의자 신분임에도 친절하게 대해주는 형사.
한국 사회에서 서래의 말은 들리지 않는다. 남편이 손 한 번 쓰면 중국에 돌아가야 할 처지이고, ‘부족한’ 한국어를 사용하는 중국인으로서 언어의 간극이 있기 때문이다. 서래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이들은 섣불리 행동과 표정 등을 바탕으로 그를 정의한다. 영화의 첫 90분 동안 서래에 관한 정보는 주로 응급실 의사, 간병업체 실장, 수완 등 여러 인물의 진술을 통해 제시되는데, 이들의 시선에는 서래에 대한 각자의 해석이 담겨 있다. 이를테면 ‘가정폭력을 당한 중국인 아내’, 또는 ‘피의자인 젊은 중국인 아내’에게 웃음은 어울리지 않는다.
수완: 남편이 죽었는데 안 놀랐대. 참 놀라운 부인이네.
의사: 경찰에 신고하자고, 이러고도 웃음이 나오냐고 했더니 또 웃으려고 하더라고요, 참······.
사전을 찾고, 동시대의 것이 아닌 드라마 속 언어를 배워 말하는 서래의 언어도 한국어 화자에게는 낯설다. 이 간극을 메우기 위해 그의 말에는 언제나 시차가 존재한다. 한국어를 사용할 땐 자신이 가진 한정된 체계로 이해하고 말해야 하며, 중국어를 사용할 땐 자신의 말이 잘 번역되었는지 계속해서 살펴야 한다. 듣는 이는 그것이 번역되기까지 기다리거나, 귀에 선 서래의 한국어를 듣고 그 의미를 파악해야 한다. 그래서 서래의 언어 사용은 화자에게도, 청자에게도 긴장 상태를 요한다.
언제나 해석되고 번역되어야 하는 존재로 살아가는 사회에서 서래는 기다림이 더 익숙했다. 말의 의미가 온전히 자신에게 닿을 때까지, 또는 어떤 행동을 할 적기가 찾아올 때까지. ‘드디어’도 ‘결국’도 아닌 ‘마침내’를 사용할 때, 이는 서래가 ‘마침내’의 순간이 오기까지 참을성 있게, 필요하다면 행동을 동원하여 기다리는 사람임을 드러낸다. 두 남편을 죽음에 이르게 할 때도, 해준의 미결 사건으로 남고자 했을 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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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몰의 순간, 온몸으로 파도를 맞으며 바다 한복판에 서 있다. 견디기 힘든 물살에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 같은 휘청거림은 해준이 서래를 감각하는 모양이기도 하다.
서래의 말마따나 해준은 ‘현대인치고 품위 있는’ 형사다. 18개의 주머니에 필요한 것들을 차곡차곡 넣어 다니고, 끼니 한 번 대충 해결하는 것을 싫어하며, 무엇이든 필요한 곳에 착착 정리해 둔다. 일에 깊이 몰입하는 태도와 진압 중 일순간 총을 쏴 버리는 강단 등은 최연소 경감이라는 자리를 가능하게 했다. 그렇다고 형사로서 가진 권력을 남용하지도 않는다. 평소 총을 지니지 않고, 가혹행위를 싫어하며, 피의자에게 무례하지 않다. 이지구를 무력으로 진압하는 순간을 서래에게 보인 것을 부끄러워하기도 한다.
자신이 가진 힘을 의식하는 공권력의 집행자. 그래서 해준 본인에게도 품위는 아주 중요하다. 현장을 뛰어다니며 잔혹한 범죄를 목도하고 필요할 경우 직접 폭력을 사용해야 하는 그이기에, 품위를 유지한다는 것은 그런 것들로부터 자신을 지키는, 생존이 걸린 문제이기도 하다.
해준은 서래의 언어에서 정확성을 발견할 수 있다. 서래의 한마디 한마디를 뜯어보며 그 적확함에 감탄하고, 자신 역시 그러한 방식으로 말하기 위해 서래의 언어를 배우고, 언어 습관을 따라 한다. 기도수가 마시는 위스키를 마시고, 손마디를 꺾는 임호신의 습관을 따라 하는 등 수사 관련자에게 몰입하는 태도로 인해 그는 수사와 동시에 피어오른 감정을 구분하지 못한다. 함께 우산을 쓰고 비를 맞을 때 젖어드는 어깨의 모양처럼, 해준은 자신도 모르는 새에 청록으로 물든다. 늘 똑바로 보고자 했던 그는 자신과 닮은 듯 다른 서래를 직시하려 하지만, 정작 자신의 마음은 제대로 보지 못한다.
사랑에 잠식된 해준은 서래를 위해 품위쯤은 내려놓을 수 있다. 그런 그의 사랑의 방점은 상대에게 찍힌다. 그토록 중시했던 자신의 품위가 서래로 인해 완전히 무너지고 깨어졌음을 시인하지만, 그로 인한 고통은 온전히 혼자만의 것으로 남기고자 한다. 덮쳐오는 파도를 고스란히 맞는 것이 그의 방식인 것이다. 그래서 휴대폰을 깊은 바다에 빠뜨리라는 말은 “붕괴 이전으로 돌아”갈 생각은 없다는 깊은 감정의 고백이자 ‘헤어질 결심’의 실행이다.
해준: 난 자부심 있는 경찰이었어요. 그런데 여자에 미쳐서 수사를 망쳤죠. 나는요… 완전히 붕괴되었어요.
(···) 저 폰은 바다에 버려요, 깊은 데 빠뜨려서 아무도 못 찾게 해요.
한편, 자신의 말을 살펴 듣는 해준 앞에서 서래는 시차를 의식하지 않거나, 시차를 견딜 수 없다는 듯이 말한다. 송광사에서 해준의 녹음을 들을 때 서래가 눈물을 보인 것은 그의 음성이 자신을 궁금해하고 살피는 마음, 그 틈을 비집고 나오는 감정을 숨기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제 이포에 온 서래는 부산에서 해준이 그랬던 것처럼 그를 관찰하며 녹음한다. 이때 발화는 한 번 녹음되면 숨길 수 없기에 즉각적이고 직접적으로 마음을 드러내는 방식이다.
호미산에서 재회한 순간 번역 애플리케이션을 사용하는 방식에서도 서래의 마음이 묻어난다. 떨어져 있는 동안 해준의 마음이 어땠는지 물을 때, 서래는 이전까지 두세 문장을 한꺼번에 번역하던 것과는 달리 한 문장씩 바로바로 번역해 해준에게 전한다. 조금이라도 자신의 마음이 빨리 전달될 수 있도록. 그래서 사랑을 말할 때도 서래의 방점은 ‘자신’에 있다. 같은 장면에서 서래는 상대를 위하는 마음을 표하면서도 “미결 사건이 되고 싶”다는 진심을 뒤에 드러낸다. 이때 두 문장 간의 어긋남은 자신의 ‘헤어질 결심’이 실패로 돌아갔다는 고백이자, 헤어짐이 영원히 불가능했으면 좋겠다는 절망적인 사랑의 토로가 된다.
서래: 이걸로 재수사해요. ‘붕괴’ 이전으로 돌아가요.
(···) 난 해준 씨의 미결 사건이 되고 싶어서 이포에 갔나 봐요.
그토록 너를 꿈꾸었기에 너는 현실성을 잃는다.
로베르 데스노스, 「너무나도 자주 나는 너를 꿈꾸었다」
비슷한 그들이지만 서로를 감각하는 방식은 이다지도 다르다. 그래서 둘 사이에는 미끄러짐이 생긴다. 사랑도 헤어질 결심도, 모두 미끄러지며 일어난다. 해준은 ‘말씀은 싫다’고 할 때부터 서래를 알아보고 이끌렸지만, 서래는 누구도 자기 말을 들어주지 않던 이곳에서 그 품위 있는 사람이 자신으로 인해 붕괴됨을 보고서야 그의 마음을 확신한다. 서래는 확신의 순간 그것을 사랑이라 부를 수 있었지만, 해준은 더는 볼 수 없게 되어서야 비로소 마음을 표현할 언어를 손에 쥔다.
해준이 ‘눈을 뜨’지 못하는 것은 그가 서래를 서사화해야 하는 입장이기 때문이다. 상대를 볼 때 직접 주어지는 감각들에 의존하는 서래와는 달리, 해준은 수사를 명목으로 정당화된 응시를 통해 모인 정황들로 범행의 동기를 짜 맞추어야 한다. 쌍안경으로 서래의 집을 들여다볼 때 그는 한정된 감각을 보완하고자 안에서 일어나는 일과 서래가 하는 말들을 상상해 본다. 그 순간 극대화되는 것은 서래의 음성이 아니라 해준 자신의 숨소리다. 똑바로 보려고 할수록 상상하게 되고, 그럴수록 상상하는 자신만 남는다. ‘피의자 송서래’와 ‘서래 씨’ 사이에서 서래는 흐릿해지고 멀어진다.
그렇게 해준의 상상을 바탕으로 서래에 대한 하나의 상이 맺히게 된다. 머릿속에 재구성된 서래 속에는 해준이 투영한 스스로의 모습이 있다. 물을 좋아하고 지혜로우며 꼿꼿한 사람. “서래 씨가 나하고 같은 종족이란 거, 진작 알았어요. 남편 사진 보겠다고 했을 때. ‘말씀’은 싫다고. 나도 언제나 똑바로 보려고 노력해요.” 렌즈를 통해 본 서래의 모습은 해준을 지배한다. 서래가 거기에서 벗어나는 순간 그는 “똑바로 보려고 노력”한다는 말이 무색하게 서래를 의심하기 시작한다.
처음 서래를 의심하던 수완에게 “젊고 예쁘고 외국인이어서 피의자가 되어야 하냐”고 나무라던 해준은 사건의 전말을 알게 되면서 자신의 규정에서 미끄러지는 서래를 견디지 못한다. 그래서 환상은 이포에서 새로운 사건이 발생하자마자 뒤집혀 버린다. 그는 다시 만난 서래의 혐의를 확신하고, 서래를 잘 안다는 듯 행동한다. 이제 부산에서 해준이 수완을 나무랐듯 연수가 의심에 둘러싸인 해준에게 같은 질문을 한다. “부인이 범인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왜죠? (…) 부인이 별로 놀라거나 슬퍼하는 것 같지 않아서?” 이 말에 흠칫하면서도 그는 “어떻게 해서 저 여자가 범인인지” 밝히는 데 혈안이 되어 있다.
하지만 범행 동기를 짜 맞추려 할수록 해준의 환상은 무력화되는데, 이는 해준을 볼 때 실재에 의존하는 서래가 있기 때문이다. 해준이 ‘언제나 똑바로 보려고 노력한다’고 떠들 때 조용히 미소지을 뿐이었던 그는 사실 해준보다 더 ‘똑바로’ 보는 사람이다. 어떤 렌즈를 통하지 않고, 어떤 모습을 투사하지 않으며, 직접 본 모습과 들은 말들에 집중한다. 이전까지 응시를 전유하던 해준은 서래의 말간 시선 앞에서 역으로 응시의 대상이 된다. 그리고 그가 떠난 자리에서 기다림과 새김질을 통해 말의 안쪽까지 골고루 감각할 수 있게 된 서래가 상황을 장악한다.
‘붕괴’된 자신을 토로한 직후 휴대폰을 버리라고 말할 때, 해준은 자신이 ‘내가 그토록 중시하는 품위까지 버리게 하는 상대가 바로 당신’이라고 무겁게 고백하고 있다는 사실까지는 생각하지 못했다. 13개월 동안 같은 말을 반복해서 들으며 서래는 두 문장의 모순 속에서 사랑을 발견한다. 그리고 표면의 의미를 넘어선 해준의 말을 바탕으로 그의 ‘헤어질 결심’을 수행함으로써 기어이 자신이 받은 마음을 더 크게 돌려준다. 깊은 바다에 빠뜨려서, 아무도 못 찾게 하는 것. 휴대폰은 해준에게 도로 건네 그가 원한다면 ‘품위’를 되찾을 수 있게 하고, 스스로 물로 향함으로써 두 사람만이 알고 있는 사랑을 바다 깊은 곳에 묻는다. 그렇게 사건도, 사랑도 아무도 찾을 수 없도록 수면 아래로 잠겨버린다.
그러고 보면 서래는 헤어짐을 ‘결단’하지 않았다. ‘헤어질 결심’은 오로지 심정적이다. ‘사귐이나 맺은 정을 끊고 갈라서’기 위해 다시 결심을 해야 할 때, 그것은 ‘끊고 갈라섬’이라는 행위 자체는 일단 유보하고 있다. 해준을 걱정하면서도 그와 아직 헤어지고 싶지는 않은 마음은 연을 끊고 갈라지는 대신 자신을 이 세계에서 소거시킴으로써 영원히 해준의 마음에 남겠다는 결단이 되었다.
이제 이야기는 서래가 원하는 방식으로 흘러간다. 해준은 구소산과 이포의 두 사건의 진실을 알고 있는 유일한 사람이 된다. 그에게 남은 것은 해안도로에서의 마지막 통화 중 제대로 듣지도 녹음되지도 못한 서래의 이해할 수 없던 말들, 이전까지 알던 서래의 모습, 그리고 둘이 나눈 대화들뿐이다. 마지막 순간에도 서래는 당신을 사랑한다고 솔직하게 이야기했지만, 그것을 듣지 못한 해준에겐 정황증거들로 재구성해낸 서래만이 존재할 수 있다.
그 서래는 해준에게 명령한다. “벽에 내 사진 붙여놓고, 잠도 못 자고 오로지 내 생각만 해요.” 호미산 시퀀스에는 없던 이 대사는 호미산에서의 서래의 모습을 하고 나타난다. 서래가 이 말을 직접 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이 대사가 해준이 사랑을 깨달은 순간 나타났다는 사실은 장면 자체가 해준에 의해 구성된 것일 가능성을 내포한다. 결국 서래에 대한 환상을 완성시키는 것은 해준의 상상이다. 해준은 그 서래를 안고 평생 서래를 찾으며 안개 속을 헤맬 것이다. 그의 ‘붕괴’는 그렇게 완성된다.
220818_성하 보냄.
서로가 아주 비슷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해준과 서래의 나와 너를 지각하는 방식의 차이에서 생겨난 틈 속에서 생겨난 왜곡과 거기에서 벗어났을 때의 다소 극단적인 반응들, 해준이 가졌던 환상이 이번 환상이라는 키워드와 잘 어울린다는 감상 전달드립니다ㅎㅎ
그리고 깨알 제 최애장면(너는 내게 물처럼 밀려오라 ver.박해일)이 활용되어서 잠깐 웃었는데 글 읽으면서 제가 이 장면을 좋아하는 이유에 대해서 좀 더 구체적으로 생각할 수 있었어요 늘 범인에 대해서 증거와 알리바이를 바탕으로 객관적으로 생각하고 판단하는 경찰의 ‘품위’를 지키려고 노력했던 해준, 그래서인지 사랑을 말하면서도 그게 사랑이라고 자각하지 못한, 어쩌면 자기 감정에 솔직하지 못한 채 의무와 해야 하는 일들에 단단히 고정되어 있던 해준의 축이 흔들리는 순간이라서였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마침내 자기 감정에 솔직해지고 쓰고 있던 모든 가면을 벗고 어린아이처럼 떼를 쓰고 순간 늙어버린 것 같은 진심을 내비친 해준이 그런 모든 마음을 담아 기꺼이 찬 바닷물 속으로 들어가서 휘청거리고 넘어지는 게 자기 모든 걸 내던진 모습이라 좋아했나봐요 흑흑…
영화를 정말 사랑하고 아끼는 사람인데 영화를 보고 난 뒤 내가 느낀 점들과 해석한 것을 텍스트로 정리하는 게 너무 어렵게 느껴져요 그래서 여담님이 제가 느낀 점들을 완벽하게 정리해서 글을 써주신 걸 읽는데 정말 쾌감이 느껴지는..? 말이 이상한가요 헤헤 무튼 좋은 해석과 글 감사합니다! 저도 글을 잘 쓰고 싶어요!
“13개월 동안 같은 말을 반복해서 들으며 서래는 두 문장의 모순 속에서 사랑을 발견한다.” 이 문장이 참 좋았어요.
글을 읽으면서 다시 한 번 영화의 감동을 느낄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박찬욱 영화가 가진 힘은 ‘사랑’이란 단어 없이 사랑한다는 감정을 영상, 대사, 배우의 연기로 잘 녹여내는 것 같아요. 그게 영화가 가진 매력이라고 생각하고요ㅎㅎ 제가 생각해보지 못한 것 까지 캐치해서 작성해 주시는 글을 정말 잘 읽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