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연’이라는 주제를 받았을 때 이 영화를 떠올리게 된 건 부쩍 살아간다는 것에 대해 고민을 하게 되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장기화되는 팬데믹의 영향일까요, 아니면 계절의 영향일까요. 저를 포함해 주변의 많은 사람이 무기력을 느끼거나 삶의 무게를 온몸으로 끌어안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 영화는 제가 그런 삶의 무게 내지는 회의를 느낄 때 보고 힘을 얻었던 작품인데요, 그래서 이 영화를 저의 가까운 ‘인연’들, 그리고 어느덧 반년간 ‘인연’을 이어 오고 있는 독자 여러분과 나누어 보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사실 이번 편지는 말을 꺼내기부터 참 조심스러워서 한참을 미뤄 두었다는 얘기를 먼저 하고 싶어요. 감히 제가 뭐라고 삶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을까요. 특히나 다른 누군가의 삶에 대한 것이라면요. 그렇지만 이 영화에서 ‘삶’에 대해 전하는 메시지가 ‘힘들어도 버텨야 한다’나 ‘어쨌든 소중한 것이다’ 따위의 뻔한 것은 아니라는 점만은 분명히 해 두고 싶어요. 또 저의 글이 이 영화를 다 담기에 부족한 탓에 영화가 전하는 감정들을 온전히 받기 어려울 테니, 영화를 보고 글을 읽어주시길 바랄게요. 지금 딱히 내키지 않는다면, 나중에 문득 이 글이 떠오를 때 보고 와 주신다면 기쁠 것 같아요.
아이들을 찾기 위한 여정인데, 정작 영화는 이들을 찾는 것에는 큰 관심이 없어 보입니다. 영화의 내러티브는 어떤 정해진 구조를 취하기보다 그저 흘러가는 대로, 여정에서 감독이 만들어 가는 인연 하나하나를 보여주거든요. 길 위에는 남겨진 사람들이 있습니다. 감독은 그들에게 코케로 가기 위한 길을 묻고, 무거운 짐을 들고 가는 사람들을 도와주고, 마을에 도착해 물을 얻어먹기도 합니다. 그 과정에서 감독과 길 위의 사람들은 처음 만나는 서로에게 인정을 베풀기도 하고, 지진과 잃어버린 이들에 관해 이야기하기도 하지요.
감독이 만나는 사람들은 저마다의 사연을 가지고 있습니다. 직접적으로든 간접적으로든, 지진의 피해를 받지 않은 사람은 없죠. 자신이 다치지 않았다면 가족을 잃었고, 그도 아니면 집을 잃은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이들에게 반복적으로 들을 수 있는 말은 ‘산 사람은 살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삶을 꾸려가기 위해 먼 동네에 가서 물건을 사 오는 노인도, 감독의 아이에게 죽은 자신의 딸 이야기를 해 주면서도 노동을 이어가는 여성도, 지진의 비극에 휩쓸릴 틈도 없이 그렇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지진 발생 직전 결혼 예정이던 한 커플 역시 가족을 잃었지만, 지진을 얼마나 오래 애도해야 할지에 대해 저마다 다른 의견을 내는 것을 보고는 ‘언제 하든 문제라면 차라리 지금 하자’는 생각에 지진 발생 5일 후 결혼식을 감행했다고 하죠. (이 둘은 3부작의 마지막 편인 〈올리브 나무 사이로〉에서 중요한 역할을 차지하기도 한답니다)
이처럼 이들에겐 무언가를 하기 위해 적절하거나 그렇지 않은 시간은 없습니다. 떠나간 이들을 생각하며 눈물 흘리면서도 살아갈 삶이 있기에 살고, 해야 할 때가 되었기에 밀린 일들을 하며 지낼 뿐이죠. 저마다 가족을 잃은 사람들이 텐트촌에 모여 안테나를 연결해 축구 경기를 보기 위해 애쓰는 것은 다름 아니라 월드컵이 4년에 한 번 있는 중요한 행사이기 때문입니다.
“궁금한 게 하나 있어요.”
“뭔가요?”
“지진으로 많은 사람이 죽은 상황에서 왜 축구 경기를 보려고 하죠?”
“맞아요, 저도 여동생과 조카 셋을 잃었어요. 그렇지만 어쩝니까? 월드컵은 4년마다 열리고, 지진은…”
“40년이죠.”
“네, 40년이죠.”
“그리고 삶은 계속되죠.”
그러고 보면, 어쩌면 삶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완전한 애도나 (아마도 존재하지 않을) 근사한 명분이 아니라, 당장 눈앞에 놓인 축구 경기에서 누가 이기느냐일 수도 있겠어요.
삶과 세상에 대한 영화의 시선은 낡은 노란 고물차가 프레임을 벗어나는 영화의 마지막 순간에서도 잘 드러납니다. 이 차는 코케로 향하는 구불구불한 길을 지나며 마주치는 모든 사람에게 “이런 차로는 가기 어렵다”라는 말을 들은 바 있죠. 코케로 넘어가는 마지막 관문에서 차는 진흙탕에 빠지기도 하고, 거의 다 올라갔다가 다시 끌려 내려오기도 합니다. 저러다 차가 아예 고장 나 버리지는 않을지, 위험한 상황이 생기지는 않을지 걱정되는 순간, 차는 기어이 언덕 위로 올라가고야 맙니다. 저는 이처럼 차가 ‘기어이’ 올라가고야 마는 순간이 영화가 끝나고도 오래도록 마음에 남았어요. 이 차가 그러하듯, 어딘가 고장 났어도 기어이 언덕을 올라가 버리는 것이 영화 속 사람들의 삶과도 닮아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그리고 이건 단지 그들에게만 해당하는 이야기는 아니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