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 아워스, 🕓 마주할 때 비로소 선명해지는 삶을 기억하며 🕓

“디 아워스, 🕓 마주할 때 비로소 선명해지는 삶을 기억하며 🕓”의 2개의 댓글

1. 

   싱글벙글 동치미

   2021년 06월 15일 / 3:42 오후

   여담에게,

   이번 답장을 보내기로 마음먹은 것은 경계를 ‘실밥’으로 표현한 것이 마음에 콕 들어왔기 때문이에요. 저에게 경계란, 언제나 버지니아가 선택을 마주할 때와 같은 묵직한 무게감을 주었거든요. 저는 소소한 갈림길 앞에서도 그 정도의 긴장감을 느꼈던 것 같아요. 여담에게 이 글을 보내는 것조차도 저에겐 버거운 결정이었으니까요. 그러다 문득, 모든 순간을 벼랑 끝에 내몰린 것처럼 생각할 필요는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평범한 일상에서 마주하는 경계는 은근히 신경 쓰이는 작은 실밥 정도로 생각하기로 했어요. 그러다 보니, 보다 가벼워진 마음으로 오늘을 마주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의 하루에 용기를 준 것에 대한 고마움과 경계에 대한 저의 생각을 나누고자 노트북을 켜게 되었네요.

   아이러니하게도 저는 이런 일상의 불편한 실밥들을 한없이 즐기는 경향이 있습니다. 오히려 봉합된 것을 뜯어내고 실밥의 배열을 관찰하며 활기를 얻는 편이에요. 이렇게 삶을 마주 보려는 버릇은 생명력을 주기도 하지만 때로는 저를 끝도 없이 불안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경계를 주시하며 살다 보면 어느 날은 뿌듯하다가도 어느 날은 지쳐서 현실에 안주하고 싶은 순간도 생기죠. 그래서 사회가 요구하는 모습을 뒤로하고, 살고 싶은 스스로를 위해 불안정한 발걸음을 옮기는 댈러웨이 부인들에게 동질감을 느낀 것 같아요. 어쩌면 불안함의 크기는 내가 지금을 오롯이 살아 내고 싶은 간절함의 크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요.

   며칠 전 사주를 보러 갔었습니다. 선명한 무언가를 기대한 것은 아니었지만, 저는 저에 대한 실마리를 찾은 것 같았어요. 관이 없는 팔자라서 남자도, 돈도, 규율도 없는, 다시 말해 그런 것들에 얽매이지 않는 삶이라고 하더군요. 물이 넘실대지만 그 물을 가둬줄 토양도, 나무도 없어서 억제하는 힘이 약하다고요. 주어진 대로 산다면 직업이 여러 개일 수도, 이직이 잦을 수도 있으니 간호사를 그만두고 싶어도 참으라고 하셨어요. 딱히 특출나게 멋진 재능은 없지만 잔재주가 많은 것은 오히려 진로 결정에 방해가 된다는 뉘앙스였죠. 과거로 치자면 소박맞기 딱 좋은 팔자입니다만, 저는 저의 탄생에 주어진 그 여덟 글자가 정말 마음에 들었어요. 저는 글자 그대로 물 흘러가듯 자유로운 삶을 살고 싶었거든요. 소설을 쓰고, 여행을 하며 사진을 찍고, 좋은 사람들과 다양한 이야기를 하다 떠나고 싶었어요. 그러나 번듯한 직업이 있어야 한다는 사회적 요구를 무시할 수는 없었기에 버지니아가 리치먼드 생활을 선택했듯 저도 간호사가 되었습니다. 키티를 외면하던 로라의 마음으로 간호학과를 다니던 저는 어쩌다 보니 간호사라는 자아도 받아들이게 되었네요. 그러나 이번 사주 풀이를 통해서 그저 간호사로 남는다면 런던행 기차표를 마음에 품은 버지니아의 모습으로 살 게 될 것이라는 점을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저도 알고 있던 결말에 조금 더 확신을 갖게 된 거죠.

   그래서 저는 오늘도 얄밉게 거슬리는 실밥들을 느끼며 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 일단 떨리고 설레는 마음으로 정말 오랜만에 누군가 읽게 될 글- 바로 이 메일-을 쓰고 있어요. 보내기 버튼을 누른 뒤에는 숨을 들이쉬며 간호 공부를 하고 내쉬며 그림을 그릴 생각이에요. 중요한 것은 제가 오늘도 불안함과 설렘을 동시에 안고 삶을 사랑하려고 노력한다는 것이죠. 마치 버지니아, 로라, 그리고 클라리사가 용기를 내어 본인들의 목소리로 다음 장을 이어갔듯이요.

   “I like people to be unhappy because I like them to have souls”

   “나는 사람들이 불행해지는 것이 좋다. 그건 그들이 영혼을 갖는다는 의미이기에”

   – Virginia Woolf –

   답글
   1. 

      여담 예은

      2021년 06월 17일 / 3:43 오후

      싱글벙글 동치미님에게

      답장을 잘 받았어요.

      사실, 받았다는 말로도 부족할 것 같네요. 몇 번이나 반복해서 읽어봤습니다.

      ‘실밥’에 대한 저의 생각이 이렇게 다시 그 나름의 생(生)-활력을 지닌 채 돌아오니, 다시 한번 돌아볼 수밖에 없더군요. 동치미님이 살아가는 힘을 한 번 머릿속으로 그려보았는데 거기에는 어떤 단단함과 동시에 자유로움이 교차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실밥’의 거슬림 때문에 이를 뜯어내지 않고는 못 배기는 편이거든요. 고쳐야 할 것들은 고치고, 버려야 할 것들은 버리고, 그 흔적을 정리해 가면서 유익을 찾아가곤 해요. 그런데 이것들의 배열을 관찰하며 활기를 얻는 동치미님은 아마, 저보다 한 수위의 유연함으로 삶을 살아가시는 것 같습니다.

      ‘물처럼 흐르는 삶’이란 지구 위에 발을 딛고 살아가는 우리가 택할 수 있는 가장 부드러운 움직임이라 생각해요. 그 마음가짐 속 맴돌고 있는 설렘과 평안, 가끔씩 뿜어져 나올 용기를 기대하며 하나의 큰 대양(大洋)을 이루시기를 바라봅니다.

      앞으로 하실 간호 공부도, 그리실 그림들도 모두 응원해요.

      나의 클라리사, 나의 로라, 그리고 나의 버지니아를 기대하며

      각자의 위치에서 다음 장을 향해 계속될 삶을 이어 나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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