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은·임지선, 〈성적표의 김민영〉
점점 더 많은 것을 매만질 수 없고, 살기가 영 팍팍하다는 걸 깨달아 가더라도. 더 이상 꿈이 아름답지만은 않으며, 자꾸만 현실 앞에 작아져 가는 나를 발견하게 될지라도. 우리에겐 김주아가 있다. 당돌하고 정스러운 태도, 솔직한 말들, 상상의 날개, 단단한 심지. 그와 한 몸인 것처럼 움직이는 이 자질들은 여전히, 어떤 향수와 작은 희망을 불러일으킨다.
🏫 보통 밖의 김주아 🎨
얼마 전 한 뉴스에서 청년 고용률이 46.5%라며 심각하게 얘기하는 걸 들었다. 15세에서 29세 인구 중 일을 하는 사람보다, 일을 안 하는 사람이 절반 조금 넘게 많다는 건데. 그걸 곱씹으면서 생각했다. 무슨 마음으로들 살아가고 있을까. 늦었다고? 아니면 조급하다고? 간절하다고? 절망하고 있을까? 혹시 이미 포기했을까? 내 길을 찾아가는 중이라고 스스로를 달래는 사람도 있을까.
그동안 지켜본 많은 군상의 모습들이 지나가는 가운데, 〈성적표의 김민영〉(2022) 속 한 장면에서 왜 멈췄는지 아직도 정확히 설명할 수 없다. 다만, 이건 대한민국에 사는 수험생이자 대학생, 취준생, 취포생, 방황하고 불안해하며 지금을 살고 있을 모든 이들의 이야기라는 나름의 정리가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유약해 보이는 여린 잎과 어느 틈에 울창해졌을 나무들이 이루는 초록빛의 녹음.
그 가운데 웅크린 채 무언가를 캐고 있는 이의 뒷모습.
그렇게 잠적하고 약초의 박사가 됐을 나이에 누가 찾아올까? 기억 한구석에서 떠오를 수 있을까? 나를 나답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우리를 이루는 것은 무엇일까? 가장 원초적인 질문은 가장 현실적인 문제로 이어지고, 가장 현실적인 문제는 지나온 영화 속 눈여겨봤던 어떤 배우의 역할을 상기시킨다. 닮고 싶었던 건지 동경했던 건지 모를, 정의하기 힘든 심경에서부터다.
제목에는 ‘김민영’이 들어가지만 영화 속 시선의 주체가 되는 건 그의 친구 ‘유정희’다. 김민영, 유정희, 최수산나. 이 셋은 고등학교 시절 삼행시 클럽으로 똘똘 뭉쳐있던 친구들이다. 사뭇 진지하게 서로를 위해 운을 띄우고, 경청하며, 하나의 시를 읊은 후에 찾아오는 정적 등은 그들이 그 순간에 얼마나 진심으로 임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그러나 영원할 것 같던 이러한 몰입은, 아니 낭만은 곧 흩어진다.
20살, 숫자 10으로 시작하던 그 마지막 숫자로부터 고작 한 살 더 먹었을 뿐인데, 청소년이 아닌 성인의 삶은 이전과는 많이 다르다. 장장 6년간(길게는 12년간) 대한민국에 사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겪었을, 겪지 않았다면 적어도 한 번쯤 시달렸을 입시가 지나고 나니, 엇비슷해 보이던 삶이 뿔뿔이 갈라진 것이다. 누구는 해외로, 누구는 다른 지역으로, 대학에 다니거나 일을 찾아 나선다. 대동단결 되던 기숙사 생활을 끝마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세상은 벌써 독립을 준비시킨다.
이 숨 막히는 시기를 자신의 속도로 유유히 통과하고 있는 이가 바로 정희다. 그는 시계가 없어 울먹이는 낯선 수험생에게 조용히 자신의 손목시계를 건네고, 모두가 한 문제라도 더 빨리 정확하게 풀려고 골몰하고 있을 수능 시간에 잠자코 창밖의 풍경을 바라보는 사람이다. 모두가 새롭게 주어진 세상에 빠르게 적응하고 자신을 바꿔나가는 와중에, ‘테니스의 왕자’를 찾으러 홀연히 동네 테니스장 아르바이트를 지원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고, 삼행시 모임을 이어가고 싶어 하고, 「김민영이 쏘아 올린 작은 공」을 기억하고 있는 정희는 그렇게 한결같은 모습으로 여전히 청주에 머문다. 백 텀블링으로 장기 자랑을 논하고, 방에 아이스링크를 만들자 제안하고, 비 오는 날 자전거를 타고 내달리며 수영장에 온 것 같은 상쾌한 기분을 만끽하던 그곳에서 말이다.
몇 번 해도 안되는 고무 동력기를 날려보기도 하고, 칠이 벗겨진 탁자를 사인펜으로 다시 메꾸기도 하고. 손수 그린 테니스인으로 알바 홍보를 준비하거나, 일찍부터 트리를 꾸며 크리스마스를 기념하고. 친구들과 제주도로 아주아주 짧은 휴가를 떠난 사이, 그 찰나의 벅참을 옛날 시트콤에서 빌려오기도 하고. 정희는 영화 내내 우리 사이에 있었을 여전한 동심을 대변한다.
그렇다고 마냥 어린 사람은 아니다. 자취방에 놀러 오겠냐는 물음에 바리바리 짐을 싸고 한걸음에 달려왔건만, 자기보다 성적 고치기에 더 관심이 많은 친구가 괘씸할 만도 할 텐데. 거기에 ‘4차원’이라는 말을 듣고 싶냐 거나, ‘현실적’인 조언이랍시고 정희를 한심하게 생각하는 듯한 말투는 지나가는 내가 들어도 참 별로던데. 이를 인내하던 정희는 마침내 현실적인 상황을 지적하며 한마디 한다.
내 현실도 있는 거잖아. 나한텐 그래도 소중한데, 그렇게 말하니까.
학점 네가 한만큼 나온 건데, 하루 종일 노트북만 보고.
근데 난 내가 왜 이런 기분 느껴야 하는지 잘 모르겠어. 같이 약속 잡고 온 건데.
내가 너한테 미안해해야 돼? 내가 투명 인간이야? 내가 투명해?
그냥 방문마다 통과하고 그럴까?
그러고 훌훌 털어버린다. 미안한 마음에 자신이 가져온 보드게임에 순순히 참여하는 절친과 함께하면서.
생각해 보면, 04년생 김주아는 유독 그런 역할을 많이 맡아왔다. 어디에선가 있었을 법한 사람. 어디엔가 있었으면 하는 사람.
〈보희와 녹양〉(2019)에서는 소심하고 예민한 친구인 보희의 단짝을 맡아 대담하고 적극적으로 상황을 이끌어간다. 전반적인 이야기가 보희와 그 아버지의 행방 찾기로 전개되는 가운데, 녹양은 그 과정의 시발점이자 그 시간을 카메라로 담아내는 감독이다. 그는 자신과 비슷한 부모의 상실을 앓고 있는 주인공에게 꽤 든든한 버팀목이자 용기가 되어준다.
그런가 하면, 〈지금 우리 학교는〉(2022)에서 윤이삭은 주인공의 베프로서 혹자의 말마따나, 학창 시절 한 명쯤은 있었을 법한 ‘밝고 명랑한’ 아이다. 그는 갑자기 펼쳐진 재난 상황 속 사건을 진술하고 위협에 물러서지 않으며, 친구들과 함께 이 사태를 헤쳐 나가려 한다. 이야기의 작은 매개체이자 온조를 돌봐주는 사람으로서, 이삭은 끝까지 그 역할을 다한다.
마치 자기의 마지막을 알았던 것처럼, 좀비가 되기 전 온조의 마음과 청산의 마음을 확인시켜 주는 인물도 그다. 이삭이 창밖으로 떨어질 때, 그 손을 붙잡고 놓지 못하던 온조의 모습이 미어지게 느껴지는 것은 그런 햇살 같은 존재감 때문이다.
한편, 자신대로 행동하는 것이 더 이상 자유롭지 못하고, 나다움이 이상적으로 그려지는 장면에서 벗어나 다소 잔인한 현실에 부딪히는 인물이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2023) 속 병희다. 그는 하고 싶은 대로 하지 못해 자신을 해하는 것으로 그 분노와 답답함을 표현한다.
원하는 곳에서 공부하는 것도, 원하는 대학에 가는 것도, 가장 행복했던 곳에서 파일럿으로 일을 하는 것도 불가능하다고 주변인들이 말할 때 기시감이 몰려온다. 현실적인 제약. 단 몇 점 차이로 ‘정상인’도, 특수학교에 다닐 자격도 아닌, 경계인으로 살아야 하는 그에게 이 세상은 가혹하다.
그런 병희가 마지막 화에서 공항에서 일하는 안내 직원으로 등장했을 때, 여전히 따갑지만 흉을 내지는 못할 조금은 무딘 고무줄을 손목에 감고 나왔을 때. 타협일지 최선일지 모를 그 결정에 씁쓸함이 들었지만 잠자코 응원하고 싶어졌던 건, 계속해서 반복되는 실패와 절망 속 다시 시도하는 간절함이 익숙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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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나이와 크게 다르지 않은 나이의 역할들을 김주아가 그렇게 연기하는 동안, 10대 (한국인) 여성의 어떤 페르소나가 보인다. 누군가의 조력자, 해맑지만 어른스러운 아이, 녹록지 않은 사회생활에 무너져 내려버린 사춘기 소녀, 혹은 육체적이고 정신적인 강압으로 고통받는 인물. 다만 그 가운데 드러나는 호기로움과 스스럼없음, 무던함과 일단 해보겠다는 의지들은 그만의 길을 만든다.
그리고 그것을 소화해 내며 포착되는 이 여배우의 유쾌함과 진지함은 왠지 모를 용기와 위안을 건넨다.
갓 지은 햇반을 동글동글 굴려 샛노란 카스텔라 가루를 골고루 묻혀서 하나씩 쌓아 올렸을 경단 탑. 그 옆에 한 글자씩 눌러서 적었을 김민영의 성적표에 유정희는 이렇게 적었다.
(…)
한국인의 삶: F.
네가 한국인에 대해서 얘기했던 게 생각나.
남의 눈치를 보고 안정된 삶을 쫓는 사람들.
바쁜 일상, 좁은 땅, 인맥, 가식과 형식. 알 수 없는 불안, 기다림, 두려움, 막연한 기대.
네가 나에 대해 얘기했던 게 맞을 수도 있어. 오지 않을 미래에 대한 기다림?
음 그래도, 앞으로 뭘 하던 그때 우리 같았으면 좋겠어.
아무도 한심하다고 더 절실하다고는 말할 수 없다고 생각해.
그래서 말인데, 넌 한국인이 아니라 혼혈이었으면 해. 그런 의미에서 F를 줄게.
깊은 숲속 익명의 ‘나’를 알아보고 다시 불러줄 상대는 당신의 정수精髓를 기억하는 사람일 테니, 우리 서로가 그런 사람이 되어주자. 메마르지 말자. 그 마음을 잃지 말자. 사뭇 한 세기가 끝나가는 느낌이 드는 이 시점에 돌아본 김주아는 그렇게 말하는 듯했다. 그 한마디들을 나는 참 좋아한다.
240912_예은 보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