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비드 그레고리, 〈이소룡-들〉

너훈아, 주용필, 설운두. 한번쯤은 들어보았을 이 이미테이션 가수들의 이름은 조금 우스꽝스러운 인상을 준다. 왜 누군가는 아류를 자처하고, 왜 이미테이션은 문화산업의 이면에 상존했는가. 퍼블리시티권이라는 개념도, 지적재산권 개념도 모호하던 1970년대 홍콩에서는 세기의 액션 아이콘 이소룡의 갑작스런 부재를 이미테이션 배우들이 채웠다. 지금 그들은 어디에 있을까. 〈이소룡-들〉이 소위 ‘아류’들의 흔적을 추적해 나간다.

🥈 이 소룡을 보라! 🥈

아류(亞流) – 둘째가는 사람이나 사물. 혹은 독창성 없이 모방하는 것, 또는 그런 사람.

누군가는 쉽게 ‘가짜’라는 말을 붙이고 비웃었지만, 누군가에게는 모방이 생계를 위한 선택이었다. 아류라고 불리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겠지만, 50년 전 홍콩 영화계는 ‘아류’들의 경쟁의 장이었다. 〈이소룡-들〉은 단 네 편의 작품만을 남기고 전설로 남은 액션 스타 이소룡이 1973년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난 후 우후죽순 생겨났던 이소룡-들의 이야기다. 이소룡을 너무 사랑한 나머지 1992년 〈복수혈전〉이라는 영화까지 연출한 바 있는 코미디언 이경규가 직접 수입/배급에 참여하며 주목받았으나, 국내에서는 아쉽게도 1,500여 명의 관객을 동원하는 데 그쳤다.

샌프란시스코 태생이지만 홍콩에서 크게 활약하며 세계로 뻗어나간 이소룡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모두에게 충격을 안겼다. 준비되지 않은 이별이었다 해도 그야말로 미숙한 대응의 연속이었다. 언론은 그의 장례식과 슬퍼하는 가족의 모습을 그대로 내보냈고, 찍었지만 활용되지 못했던 클립부터 심지어는 장례식 장면까지, 영화에 쓰일 수 있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소재가 되었다. 그것으로 모자라 영화계는 그를 닮은 사람을 찾아 곳곳을 뒤졌고, 이소룡을 동경하고 무술을 좋아할 뿐이었던 이들은 이소룡을 대체하기 위해 카메라 앞에 섰다.

여소룡(Bruce Li, 黎小龍)과 또 다른 여소룡(Bruce Le, 呂小龍), 양소룡(Bruce Liang, 梁小龍), 거룡(Dragon Lee, 巨龍) 등의 이름으로 수많은 고인의 모방 배우가 탄생했다. 서구인들이 아시아인의 얼굴을 잘 구분하지 못해서, 그리고 지적재산권 논의가 지금처럼 활발하지 못해서 가능했던 일종의 영화사적 비극이었다. 6~70년대 성공작들을 카피한 싸구려 작품들을 칭하던 익스플로이테이션 영화(exploitation film)에서 파생된 브루스플로이테이션(Bruceploitation) 영화가 하나의 장르로 명명될 정도로, 이소룡이 구축한 캐릭터는 계속해서 복제되고 부당하게 이용되었다.

그러나 소위 ‘아류’들도 브루스플로이테이션 현상의 피해자이기는 마찬가지였다. 심각한 저임금과 살인적인 촬영 스케줄과 위험한 촬영현장까지, 무엇 하나 착취가 아닌 것이 없었다. 또 다른 ‘복제 이소룡’이 언제든 자신들을 대체할 수 있다는 불안감 속에서 소모품처럼 다루어졌고, 평생 아류라는 시선에 시달려야 했다. 작품 속 증지위 감독의 말처럼, 그들은 “시장의 요구가 아니었다면 자기 색깔을 살린 배역으로 훨씬 성공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소룡 사후 50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이소룡-들〉이 조명하고 있는 수많은 이소룡-들의 진짜 이름을 알아가는 영화의 탐색은 유의미하다. 쿵푸를 너무 사랑한 나머지 얼마 되지 않는 출연료조차 절반 만을 받고 일했고, 지금까지도 무료로 무술을 가르친다는 허쭝다오. 이소룡의 이름을 잇는 것이 석연치 않았지만 그를 향한 존경심만으로 언어와 문화 차이를 넘어 해외에서 일했던 문경석. 개개인의 이야기가 살아나는 순간, 그들 모두에게 이소룡을 향한 동경이 존재했음을 발견할 수 있다. 끊임없이 이용당했던 시대의 아이콘이 비로소 그를 기억하는 이들에게도, 그가 친숙하지 않은 세대에게도 퇴색되지 않은 모습으로 기억되는 순간이다.

이소룡-들이 남긴 영화사적 의의도 영화가 놓치지 않고 짚고 있는 부분이다. 제각기 다른 방식으로 해석한 이소룡의 캐릭터는 수많은 캐릭터로 재탄생했고, 때로는 인종과 성별을 넘어서기도 했다. 브루스플로이테이션을 재치 있게 비판한 홍금보의 〈비룡과강〉(1978)이나 아예 ‘아류’들을 전면에 내세운 〈브루스 리의 클론들〉(1977)은 당대의 현상 속에서 탄생한 기발한 작품들이다. 모방과 복제의 예술이기에 탄생할 수 있는, 어찌 보면 굉장히 영화적인 영화들이 아니겠는가.

“인생은 짧습니다. 생전에 이룰 수 있는 건 많지 않아요.

영화는 시대를 불문하고 살 수 있어요. 현재를 살든 미래로 가든 뭐든 가능해요. 참 재밌죠.”

누구에게도 즐겁지 않았던 모방과 착취가 무엇을 남겼는지 질문하기까지 꼬박 50년이 걸렸다. 사람이 사람을 모방하던 자리는 이제 AI 모방과 같은 다른 윤리적 딜레마들이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편하게 복제품으로 칭해왔던 그 이소룡-들만큼은 또 다른 ‘브루스’나 ‘드래곤’으로 살았던 시간을 뒤로 한 채 오직 그들만이 걸을 수 있는 길을 가고 있다. 영화가 끝나도 삶은 계속되니까.

241212_성하 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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