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공에의 질주, 🛻 지상으로 내려온 소년 🚲

영화 허공에의 질주 스틸

시드니 루멧, 〈허공에의 질주〉

포프 가족의 집에는 두 세계가 공존한다. 확장하는 한 세계와, 수렴하는 다른 세계. 두 세계가 교차하는 순간은 필연적으로 찾아온다. 〈허공에의 질주〉는 교차로 위에 서서 지나온 세월을 충분히 반추하며 다가올 미래를 환대한다. 한 시대의 끝과 새로운 시대의 시작을 선언하듯 서로에게 힘찬 손인사를 건네는 이들은 작별의 순간이 무색하게 언제까지나 서로의 집일 것이다.

🛻 지상으로 내려온 소년 🚲

허공에의 질주, 🛻 지상으로 내려온 소년 🚲

1970년, 반전운동가였던 연인은 월남전에서 대량살상무기로 쓰이던 네이팜탄 생산공장을 폭파하려다 경비원에게 중상을 입힌 과거가 있다. 두 아들을 낳고 첫째가 대학에 갈 나이가 되기까지도 FBI의 수배를 피해 다니는 가족은 그야말로 이곳 저곳 거처를 옮기며 신변을 숨겨야 하는 처지다. 이 가족에게 집은 어디든 될 수 있으나, 어디든 될 수 없다.

 

조여오는 수사망에 또다시 꾸려온 삶을 급히 뒤로 하고 새로운 집을 찾아 나서는 것으로 시작하는 영화는 포프 가족의 위태롭고 긴박한 삶을 암시한다. 아직 세계가 채 형성되지 않은 형제는 부모의 신념이나 그리움과는 다른 세계를 감각한다. 전학의 반복과 또래 친구들이라는 세계 속에서 이들이 감내해야 하는 것은 끊임없는 만남과 이별의 고통이다. 이름뿐 아니라 머리색까지 바꿔야 하는 현실 속에서도 형제가 원망이나 혼란의 내색 없이 밝고 묵묵한 것은 네 식구를 단단히 둘러싸고 있는 결속 덕분이다. 삶은 뿌리내리지 못할지언정 단단히 자리잡은 신념이 이들만의 집을 형성한다. 이들에게 돌아갈 곳은 단 한 곳, 가족의 곁이다.

영화 허공에의 질주 스틸

위장과 날조에 도가 튼 이들이지만 차마 숨겨지지 않는 것은 큰아이 ‘대니’의 음악적인 재능이다. 청소년기의 잠재된 천부성을 놓칠 리 없는 고등학교 선생님 ‘필립스’는 대니의 피아노 실력을 일찍이 알아보고 자신의 집에서 피아노를 연습할 것을 권유한다. 그곳에서 마주하는 것은 피아노뿐만이 아니다. 필립스의 딸 ‘로나’에게 강렬한 첫인상을 남기고, 음악계 주요 인사들에게 눈도장을 찍으며 대니는 점차 가족의 가시권 바깥으로 영역을 넓힌다.

 

흔들리는 청춘의 초상이 유약하면서도 빛나는 눈을 가진 리버 피닉스의 연기를 통해 생생히 빚어진다. 가족이 우선이 되는 삶을 살아온 대니는 언제든 발을 뺄 준비를 한 채, 어디에도 쉽게 마음을 내주지 않는다. 하지만 방어기제를 내려놓지 않으면서도, 피아노에 재능이 있다는 선생님의 말에 기분 좋은 내색을 감출 재간이 없다. 좋아하는 아이 곁을 자꾸 서성이게 되는 일도 제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세상에 이해받고 싶고, 누군가 자신을 알아봐 주길 바라며, 점점 더 선명해지고 싶을 나이. 소리가 나지 않는 피아노 연습 판자를 지나 마침내 실제 피아노 앞에 앉아 비창의 선율을 연주하는 대니의 뒷모습은 이미 도약할 준비를 마쳤다.

영화 허공에의 질주 스틸

대니가 자신도 모르게 지상에 발을 붙이려는 사이, 부모이자 윗세대 과격파인 ‘아서’와 ‘애니’는 과거의 망령에 시달린다. 쫓던 가치는 빛이 바랜지 오래, 쫓기는 신세만이 선연하다. 관성처럼 도망자 신세를 전전하다 보니 이제 발각에 대한 두려움보다 두고 온 것들이 자꾸만 눈에 밟힌다. 아서는 정보원으로부터 어머니가 한 달 전 죽었다는 소식을 전해 듣는다. 그 순간마저 경계를 늦출 수 없어 애써 태연한 척하지만 차로 돌아가 이내 주저앉는다.

 

과거를 뒤돌아보기란 끝없이 달려야 하는 이들에게 사치인 것일까. 아서는 충분한 애도를 할 새도 없이 아버지의 자리로 돌아간다. 신념을 위해 삶을 저버린다는 것은 이런 것이다. 단지 평생을 도망다녀야 한다는 것 이상으로, 자신의 존재 자체가 부정당하고 개인의 기반을 이룬 모든 것을 외면해야 하는 것이 형벌보다 더한 죗값으로 다가온다. 아서를 설명할 수 있는 것은 이제 운전면허 번호나 군번과 같은, 신분을 식별하는 몇 개의 숫자뿐이다.

영화 허공에의 질주 스틸
영화 허공에의 질주 스틸

한편 애니는 한 곳에 정착할 수 없는 처지가 두 아들의 발목을 잡는 일이라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 어느덧 대니는 대학입시를 고려해야 할 정도로 컸고, 언제까지고 시간을 유보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운명의 장난인지 대니는 애니의 재능을 물려 받아 한때 애니의 꿈이었던 피아노에 대한 갈망을 키워가는 중이다.

 

필립스 선생님의 제안으로 가족 몰래 오디션을 통해 줄리어드 음대 합격을 거머쥔 대니가 장학생의 자격을 갖추기 위해 필요한 것은 이제 과거의 학교 기록뿐이다. 감추기 급급했던 본명 탓에 경유한 수십개의 낯선 이름들이 기어코 대니를 좌절시킨다. 설렘과 성취, 좌절과 체념을 동시에 경험했을 큰 아이 대니의 비밀을 알게 된 애니는 그 순간 그가 찾아가야 할 곳을 직감한다.

 

집은 드나듦이 자유롭다는 점에서 의미를 갖는다. 단순히 들어가는 것뿐만 아니라 문 밖을 나서는 행위까지 긍정하는 ‘집’은, 울타리를 제공하면서도 완전히 닫히지 않은, 열려 있는 공간이다. 두 세대를 아우르는 포프 가족은 저마다의 불완전한 집을 짊어진 채 살아간다. 아서와 애니의 경우 나고 자란 집을 나섰으나 다시 돌아가지 못하고, 대니와 해리는 돌아와야 할 자리는 분명하나 그 밖으로 나가지 못한다. 반쪽짜리 집은 부재한 나머지에 대한 결핍을 부각한다. 아서와 애니가 자꾸만 뒤를 돌아보고, 대니가 미래를 그리게 되는 이유다.

영화 허공에의 질주 스틸

같은 공간 속에서 서로 다른 방향을 바라보는 포프 가족의 동상이몽은 당시 미국의 사회와도 닮아 있다. 애니가 대니만했던 시절, 전쟁이라는 폭력의 시절을 지나오며 집보다 더 큰 신념이 마음속에 자랐다. 불합리한 세상의 질서 위에 지어진 집의 물성은 이들에게 족쇄였으리라. 그렇게 중요한 것을 지켜내기 위해 더 많은 것을 버리기를 선택하며, 집을 떠났다.

 

1970년대의 격렬했던 반전 운동이 지나고, 1980년대 레이건 시대가 도래하면서 미국 사회는 점차 보수화된다. 보수주의와 개인주의가 강조되는 시대적 흐름 속에서, 한때 투쟁의 연료가 되었던 신념은 갈 곳을 잃고 과거의 잔해로 남아 유령처럼 떠돌게 되었다. 그러나 아서와 애니의 존재가 증명하듯 어떤 정의는 결코 사라지지 않으며, 성찰 없는 성장은 공허하다. 그렇기에 베트남 전쟁이라는 치욕스러운 패배의 기억을 고의적으로 외면한 많은 미국 영화들과 달리,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가는 포프 부부를 소환해 미국의 치부를 정면으로 직시하는 영화의 태도가 인상적이다. 경제 성장과 기술 혁신의 80년대 미국은, 사회적 격변을 겪은 70년대 미국 위에 지어졌다. 대니의 꿈 이전에 아서와 애니의 신념이 있었듯.

영화 허공에의 질주 스틸

“가서 세상을 변화시켜. 우린 노력했어”

다만 과거의 향수에만 매몰되어 있지는 않는다. 영화의 주역이 아서와 애니가 아닌 대니인 이유를 주목할만하다. 화면에 수놓아진 대니의 꿈과 사랑은 지나칠 정도로 아름답고 화창하니 응원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보이지 않는 균열 속에서 질주를 멈추지 않는 포프 가족은 과도기의 당시 미국 사회를 상징한다. 부모 세대인 아서와 애니에게서 과거의 가치를, 대니와 해리에게서 나아가야 할 미래를 엿본다. 과거와 미래를 껴안은 이들은 잠시 공존할 순 있을지언정 점차 작별의 순간을 향해 나아간다.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똘똘 뭉칠 방법을 강구하는 것이 아니라 지혜롭게 서로를 떠나보내는 연습이다.

신념을 위해 저버린 과거의 삶에 다시 손을 내밀기로 선택하는 애니의 결단은 오로지 대니만을 위한 것이다. 집과 집 사이를 건너 지금의 자리에 온 애니이기에 아들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안다. 꿈을 향해 나아가기 위해 필요한 물질적 기반, 한때 족쇄처럼 느껴졌던 땅에 뿌리내린 집의 물성이 지금의 대니에겐 필요하다. 아들의 반쪽짜리 집을 채워주기 위해 애니는 처음으로 방향을 튼다. 위험을 무릅쓰고 찾아간 식당에서 애니를 기다리고 있는 이는 어느새 연로한 애니의 부친이다. 대니의 나이만큼 서로를 보지 못한 세월이 쌓여 만남의 순간은 퍽 어색하다. 서로의 안부를 묻기도 전에 대니를 거둬달라는 본론부터 내뱉는 딸이 영 원망스러우면서도 자신과 같은 이별의 고통을 겪어야 할 딸이 안쓰럽다. 아버지의 수락을 받아내고 그 역시 집이 그리웠노라 고백하며 등을 보이는 딸을 놓칠새라 남겨진 자리에서 아빠는 뿌얘진 시야로 다급히 애니의 뒷모습을 눈에 담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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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에겐 우리가 필요해, 그래야 힘을 내셔”

조직으로서의 가족의 결속을 강조해온 아버지는 마지막 순간에 대니에게 자전거를 트럭에서 내리라 말한다. 그리곤 자전거에 그대로 다시 올라타 너의 갈 길을 가라는 말로 작별인사를 대신한다. ‘네 덕분에 힘이 나’라는 명제의 주어가 ‘나’라는 점에서 자신 쪽으로 향하던 무게중심을 상대를 향해 기울일 때 아서는 진정으로 대니를 위한 길이 무엇인지 깨달았을 것이다. 그렇게 대니는 집을 떠났다.

 

그럼에도 엄마의 생일날 가족들과 함께 라디오에서 흘러 나오는 선율에 맞춰 춤을 추는 순간, 각자의 하루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함께한 저녁식사 자리에서 나눈 농담들이 생생하다. 그 순간들은 언제고 대니를 살릴 것이다. 집을 떠올리면 가장 먼저 스쳐지나갈 장면이 될 것이다.

영화 허공에의 질주 스틸

영화를 처음 보고 쓴 메모장에는 이렇게 적었다.

소년은 넘쳐 흐르고 있었다.

삶의 흔적을 흘리고 회수하기를 반복하던 가족은 마지막으로 소년을 놓아주었다.

오롯이 홀로 서게 된 소년은 처음으로 갈림길의 존재를 깨달았다.

회수당하지 않고 회수하지 않아도 되는 인생의 출발선에 서 있었다.

지상으로 내려온 소년은

그렇게 허공 속으로 사라져가는 삶의 뒷모습을 바라만 보고 있는 것이었다.

250320_상희 보냄.

시드니 루멧 허공에의 질주 영화 리뷰 비평 후기

“허공에의 질주, 🛻 지상으로 내려온 소년 🚲”에 대한 2개의 생각

  1. 오래전부터 너무도 사랑해 마지않는 영화였고 그에 못지않게 참 오랫동안 좋아했던 배우인지라 메일창을 열자마자 바로 읽어 보았습니다.
    영화가 세상에 나오고 40년이나 가까이 되는 시간이 흘렀는데도 어째서 아직도 대니는 그 모습 그대로 어디선가 살아가고 있을 것만 같은 생각이 자꾸만 드는지…
    이제는 볼 수 없는 얼굴이기에 더 애틋하고 문득문득 생각나는 영화예요.
    감사합니다.

  2. 정말 좋아하는 영화의 정말 좋아하는 부분들을 정확하게 표현해 주셨네요. 제가 생각해 낼 수 없는 멋진 문장들로요. ㅎㅎ
    이 영화가 주었던 감동을 다시 한 번 느끼게 되었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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