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로리다 프로젝트, 🌈 쓰러졌지만 계속 자라나는 것들에 대하여 🌈

🌈 쓰러졌지만 계속 자라나는 것들에 대하여 🌈
션 베이커, 플로리다 프로젝트

‘힐링 영화’라는 홍보 문구가 야속하게 느껴질 정도로, 영화의 내용은 그 따뜻한 문구나 색감과는 대비된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관통하는 주체는 아이들이다. 아이들은 남의 차에 아무렇게나 침을 뱉고, 아이스크림 가게 앞에서 구걸하고, 택시를 타고 오는 이들의 짐을 옮겨주고 팁을 요구하고, 동네 여기저기를 겁도 없이 돌아다니며 이것저것 부수기 시작하고, 결국 불장난을 하다가 심각한 화재를 일으키기도 한다.

 

카메라의 시선은 이런 아이들의 모습에 초점을 맞춤으로써 영화에 등장하는 다른 많은 복잡한 문제들에 대해서는 섣불리 재단하지 않는다. 디즈니월드 관광객들을 유치하기 위한 “플로리다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지어진 숙박업소들이 어떻게 저소득층의 생활 터전이 되었는지, 무니의 엄마 핼리는 어떻게 미혼모가 되었는지 등에 대해 밝히기보다, 그 공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특히 아이들의 시선으로 모든 일을 바라본다.

 

6살 무니의 시선을 체험하는 관객은 무니가 겪지 말아야 할 수많은 일을 발견하게 된다. 주변 어른들은 아이 앞에서 거침없이 욕설을 하고, 무니는 집에서 성매매가 이뤄지는 동안 욕실에 있다가 성구매자 남성을 마주치게 되거나, 불법 판매와 무전취식에 가담하기도 한다. 이 모든 것을 경험하는 말 없는 무니의 무해해 보이는 얼굴에서 관객은 아이가 어떤 영향을 받고 있는지 고스란히 느끼게 되고, 이는 영화의 비극성을 강화한다.

 

그러나 동시에, ‘무주택’ ‘미혼모’ ‘실업’ ‘성판매’ 등의 심각한 문제들을 생각할 때 떠오르는 이미지와는 반대로, 그 공간과 조건 아래 살아가는 무니와 핼리의 삶이 늘 불행하지만은 않다. 무니는 그러한 환경 속에서도 재미있는 일들을 발견하는 말괄량이 꼬마이고, 엄마는 그런 무니에게 즐거운 시간을 제공해주려고 한다. 엄마와 떨어져야 하는 상황 앞에서 늘 웃던 무니는 처음으로 친구 잰시 앞에서 엉엉 운다. 무니는 분명 당분간 더 ‘좋은’ 환경에서 지내게 되겠지만, 이 울음이 비극이 아니라면 무엇일까?

 

이렇게 영화는 아이의 시선에서 벌어지는 일상과 그 안의 작은 행복들을 보여줌으로써 좋은 엄마와 나쁜 엄마, 불행과 행복의 경계를 허문다. 이를 통해 영화는 행복의 정의가 과연 무엇인지, 이 가족에 과연 둘 중 하나의 수식어를 붙일 수 있을지 질문한다.

“내가 왜 이 나무를 제일 좋아하는지 알아?”
“왜?”
“쓰러졌는데도 계속 자라서.”

영화의 중반, 한 나무에 앉아 딸기잼 샌드위치를 먹는 장면에서 무니는 잰시에게 이렇게 말한다. 이 말은 무니의 가족을 잘 표현하는 말처럼 느껴진다. 핼리는 혼자 무니를 키우고 일자리도 구하지 못하지만 무니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노력하고, 무니는 종종 봐서는 안 될 것들을 보고 해서는 안 될 것들을 경험하지만 조금씩 자라난다.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는 이런 삶의 모습은 ‘엄마 실격’ ‘플로리다 프로젝트의 비극’ 등, 사회의 라벨링을 걷어낼 때 비로소 드러나기 시작한다. 그렇게 영화는 ‘쓰러졌지만 계속 자라나는’ 것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210526_성하 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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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로리다 프로젝트, 🌈 쓰러졌지만 계속 자라나는 것들에 대하여 🌈”의 2개의 댓글

  1. 안녕하세요!

    우선 좋은 글 너무 감사합니다. 큰 시간 들이지 않고 읽을 수 있어서 좋았어요! 그리고 여담이 첫 번째로 소개해준 영화가 제 인생 영화라 너무 반가웠습니다.

    이런 사소한 감상글을 보내도 되나 망설였지만 영화의 어떠한 이야기라도 공유할 수 있다고 소개해주셔서 메일 드립니다:D

    플로리다 프로젝트가 제 인생영화인 이유는, 영화의 주제가 인상 깊었다거나, 영화를 보는 내내 눈을 뗄 수 없었다는 것에 있지 않았습니다. 그저 보고 난 뒤에 계속 생각났기 때문이었어요. 핼리는 그다음에, 무니는 그다음에 어떻게 됐을까. 분명 살아갈 텐데… 숨이 끊어지는 한 살 수밖에 없을 텐데… 이런 걸 떠올리니 숨이 턱 막혔습니다. 저는 계속해서 그다음 이야기를 생각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어쩌면 지금도 마음 한 켠에선 생각하고 있을 거예요.

    제가 이 영화 안에서 제일 마음에 두고 있는 장면은 핼리가 소리치는 장면입니다. 그 모습이 마치 세상에 외치는 것 같았거든요. 핼리의 행동이 불법이고 무니에게 좋은 영향을 주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핼리가 무니를 아꼈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습니다. 너무 슬펐어요… 본문 중에 좋은 엄마와 나쁜 엄마, 행복과 불행의 경계를 무너뜨린다고 하신 문장이 참 인상 깊었습니다. 사람과 상황이 입체적이고 복합적이라는 말이 자꾸자꾸 떠오르네요.

    다시 한번 제 삶과 영화를 되돌아보게 되는 좋은 글이었고, 잘 읽었습니다. 다음 글도 기대할게요:)

    좋은 하루 되세요!

    1. 또링님, 안녕하세요! 답장이 늦어져 죄송합니다.

      우선 여담의 첫 글을 읽어주시고 시간을 들여 답장을 보내주셔서 감사해요.

      저도 아끼는 영화인데, 또링님께도 인생영화라니 반갑네요!

      마지막에 핼리가 소리치는 장면에서 저도 비슷한 느낌을 받았어요. 영화 초반에도 비슷한 장면이 있었죠, 보조금을 구하려고 찾아간 핼리에게 직원은 직장을 구하려고 노력하지 않았다는 듯이 ‘주 30시간 일하는 직장을 찾아보라’고 말하고, 그 직원에게 핼리가 화를 내는 장면이요. 핼리가 그런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고 지금까지 노력해 오지 않은 것이 아닌데… 아마 핼리는 사람들에게 소리칠 때 현 상황만을 보고 그렇게 납작하게 상황을 정의해버리지 말라고 한마디 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요?

      보내주신 답장은 무엇이든 전혀 사소하지 않아요! 좋은 글 덕분에 저 역시 다시 한번 영화를 생각해볼 수 있었습니다 🙂 감사해요. 편안한 밤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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