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매드랜드, 🚐 계속된 삶에서 언젠가 다시 만날 아름다움 🚐

🚐 계속된 삶에서 언젠가 다시 만날 아름다움 🚐

클로이 자오, 노매드랜드

On January 31, 2011, due to a reduced demand for sheetrock, US Gypsum shut down its plant in Empire, Nevada, after 88 years. By July, the Empire zip code, 89405, was discontinued.

2011년 1월 31일, 석고보드 수요의 감소로 ‘US 석고’는 네바다 엠파이어 공장을 88년 만에 폐쇄했고 7월엔 엠파이어 지역 우편번호 89405가 폐지됐다.

〈노매드랜드Nomadland〉는 2007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에서 비롯된 경제 위기를 기반으로 둡니다. 이 시기 집값을 감당할 수 없는 사람들이 밴을 타고 현대적 유목민(유랑족), 즉 ‘노마드’로서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동시에 주인공 펀의 개인적인 서사로 이야기에 힘을 싣습니다. 영화의 배경에 대한 정보를 사전에 알고 보면 좋겠지만, 미국의 당시 경제적 상황을 몰라도 충분히 재미있게 관람할 수 있는 영화입니다. 우리는 두 시간 동안 펀을 지켜보면서, 궁극적으로는 가장 개인적인 것을 고민하게 되니까요.

 

대부분의 노마드들은 군인, 경제계, 교사 등 한평생을 열심히 일하고 은퇴한 사람들입니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중산층 백인들이죠. 자본주의에 소외되기에 앞서 인종차별과 경찰력에 무력해지는 비백인들은 노마드로서 살아가는 것조차 위험하기 때문입니다. 미국은 이들의 노후를 보장해 주지 않습니다. 밴을 끌고 길 위로 나와 떠돌아다니고, 대기업에 노동을 착취당하는 암담한 현실이지만, 영화는 미국이라는 국가의 무책임함과 아마존으로 표방되는 자본주의 시스템을 비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노마드들의 자유로운 삶을 긍정적으로 묘사하고, 그들의 선택을 존중합니다.

 

오늘은 영화가 의도한 대로, 노마드들의 멋지고 강인한 삶의 형태를 살펴보겠습니다. 다만 소외된 자들의 존재를 잊지는 말기로 하고요.

“What did you name your van?”
“Vanguard.”

“밴 이름은 뭐라고 지었어?”
“선구자.”

펀을 비롯한 노마드들의 삶은 굉장히 즉흥적이고 위태로워요. 이들은 어디에도 속해 있지 않습니다. 오늘은 아마존 물류센터에서 일하지만 내일은 캠핑장에서 일하고, 오늘은 주유소 앞 주차장에서 홀로 하룻밤을 보내지만 내일은 애리조나 쿼츠사이트에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죠. 무엇으로도 규정하기 힘든 경계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라 할 수 있겠네요.

 

카메라는 이들의 삶을 두 가지 방식으로 포착합니다. 극 영화로서 ‘밴가드’에 올라탄 펀의 삶을 따라가기도 하고, 마치 다큐멘터리처럼 노마드들의 하루하루를 사실적으로 보여주기도 합니다. 실제 노마드들을 주·조연에 캐스팅했기에 엔딩 크레딧에도 이름과 배역이 일치하는 사람들이 많죠. 그 사이에 자연스럽게 스며든 프란시스 맥도먼드와 영화를 매끄럽게 연출해 낸 클로이 자오의 노력이 대단하게 느껴집니다.

 

영화엔 이렇다 할 갈등구조나 극적인 전개가 없기 때문에 조금은 지루하게 느껴지셨을 수도 있어요. 하지만 그 정적인 방식으로 망막한 자연을 바라볼 때, 인물들의 표정과 주름 하나하나를 들여다볼 때면 영화는 좀 더 소중하게 여겨집니다.

“My mom says that you’re homeless. Is that true?”
“No, I’m not homeless. I’m just houseless.”

“엄마 말로는 집이 없으시다던데 진짜예요?”
“아니, 집이 없는 건 아냐. 거주할 곳이 없는 것과 집이 없는 건 다르잖아.”

영화는 이런 삶을 딱히 어떻다고 규정짓지 않습니다. 누군가는 한평생 일했지만 말년에조차 편히 쉴 수 없는 이들을, 동정 어린 시선으로 볼 수도 있어요. 또 누군가는 광활한 자유를 사는 삶을 부러워할 수도 있습니다. 거대한 자연의 풍광 속에서 길을 따라 나아가는 밴을 보면 분명 낭만적이기도 하니까요. 끝없는 도로를 달리는 밴가드를 보며 어떤 감정을 느끼셨나요?

 

펀은 기본적으로 홀로 밴을 운전하면서 살아가지만, 여전히 타인과의 관계는 지속되는 삶을 살아요. 그리고 이를 진정 즐길 줄 아는 인물이지요. 고정된 주거지에서 적당한 인간관계를 유지하면서 살아가는 저에겐 그 삶이 조금은 불안하게 느껴졌습니다. 그러나 그 아슬아슬한 걱정이 미안해질 만큼 펀은 정말 멋있고, 재밌고, 행복한 일상을 보내요. 정착된 형태는 아니지만 어쨌든 삶은 흘러가고, 만남이 영원하지 않듯 헤어짐도 영원하지 않습니다. 떠난 자들에게 건네는 인사가 ‘안녕Goodbye‘이 아니라 ‘언젠가 다시 만나See you down the road‘인 것처럼요. 펀은 그 분절된 연속에서 안정감을 얻는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Fern:
I worked in human resources there for a few years. That was my last full-time job. I did a lot of part-time jobs. I cashiered at the Empire store. I was a substitute teacher at the school for five years.
Counsler:
It is a tough time right now. You might want to consider registering for early retirement.
Fern:
I don’t think I can get by on the benefits. And I need work. I like work.

 

펀: 전 그 회사 인사과에 있었어요. 그 일을 끝으로 아르바이트를 많이 했죠. 가게 점원도 했고, 임시 교사로 5년 일했고…
카운슬러: 워낙 힘든 시기라 조기 퇴직 급여를 신청하시는 게 어떨지…
펀: 전 퇴직급여로는 살기 힘들어요. 일해야 돼요. 일을 좋아하고.

펀은 일을 좋아하고, 어느 정도 경력도 있지만 어딘가에 정착해 일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오로지 세상만이 그를 유랑으로 내몰았다고 할 수는 없어요. 언니 돌리나 친구 데이브의 함께 살자는 제안을 거절하고 밴가드에 올라탄 건 분명한 펀의 선택이니까요. 우리는 그의 자유로운 선택을 존중하면서 다양한 삶의 형태를 떠올릴 수 있습니다.

 

2019년의 저는 아침에 일어나 등교하고, 강의실에서 수업을 듣고, 동기들과 점심을 먹고, 저녁엔 혼자 영화관에 가는 게 일상이자, 제게 안정감을 주는 일종의 루틴이었습니다. 그런데 코로나 이후의 삶은 완전히 달라진 것 같아요. 정상과 이상의 경계가 흐릿해지면서 대체 일상을 사는 게 무엇인지 헷갈리기도 하고요. 삶에 정답은 없다지만, 어떤 선택을 해야 좋을지 고민되는 순간도 참 많습니다. 여러분의 삶은 어떤 형태인가요? 어디에서 안정감을 얻으시나요? 모두 영화적인 삶을 살고 계실 거라고 믿어요.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아름다우니까요.

 

아직 관람하지 않으신 분들, 주변에 여전히 상영 중인 극장이 있다면 예매해서 스크린으로 보시는 걸 권해드릴게요. 앞서 언급했듯 많이 정적인 영화니까 물이나 커피 한 잔 챙기시고요.

210603_세림 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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