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 베어스〉 또한 예외는 아니다. 영화엔 세 가지 이야기가 중첩돼 있다. 파나히가 촬영하고 있는 영화 속 영화, 감독이 처한 현실, 그리고 그가 머무는 국경 마을에서 벌어지는 사건은 평행선을 이루며 뻗어나간다. 감독의 카메라에 담기는 피사체라는 것 외에 접점이 없어 보이는 서로 다른 시공간의 두 연인은 결정적인 단 하나의 공통점을 지닌다. 현재 처한 물리적 공간과 사회적 제약을 벗어나 어딘가로 이동하려는 인물들이라는 것. 도피를 꿈꾸는 것은 자라와 박티아르 뿐만이 아니다. 국경 마을의 ‘고잘’ 또한 사랑하는 ‘솔두즈’와 야반도주를 도모한다. 여자가 태어날 때 탯줄을 자른 남자와 결혼해야 하는 유구한 전통이 있는 이 마을에서 고잘이 약혼자가 아닌 솔두즈와 사랑에 빠져버렸기 때문이다. 감정이란 것이 금단의 영역에 속하고, 어떤 행위가 그 자체만으로 투쟁이 될 때, 사생활은 지극히 정치적인 것으로 변모한다. 

경계에 위태롭게 서 있는 두 연인을 담아내는 카메라 뒤 파나히 자신도 그들과 별 다를 바 없는 처지라는 점이 공교롭다. 평화로운 마을 생활에 잠시 잊고 있던 제 위치가 선명히 감각되는 순간은 파나히가 국경선이라는 실체를 마주할 때다. 조감독 레자의 안내에 따라 밀수꾼의 도로를 오른 파나히는 지금 밟고 있는 땅이 국경이라는 말에 놀라며 한 발 뒤로 물러난다. 그리도 닿고 싶던 촬영지를 눈앞에 두고, 한 발짝만 내디디면 경계 너머의 삶을 살 수 있을지 모를 선택지를 손에 쥔 파나히는 끝내 등을 보이며 마을로 돌아간다. 픽션과 논픽션, 가상과 현실, 다양한 시공간이 겹치며 흐려지는 줄만 알았던 경계는 실은 잠시 가려져 있었을 뿐 항상 거기 있었다. 권력의 존재감은 그렇게 느슨히 연결된 파나히와 두 연인을 무겁게 짓누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