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엄청 창의적인 휴머니스트 뱀파이어가 될 거야, 🩸 헌혈하고 콘서트 티켓 받아가세요 🩸

아리안 루이-세즈, 〈난 엄청 창의적인 휴머니스트 뱀파이어가 될 거야〉

〈난 엄청 창의적인 휴머니스트 뱀파이어가 될 거야〉는 밤거리를 홀로 배회하는 소녀를 따라가기로 하면서, 영화는 다름 아닌 ‘휴머니스트 뱀파이어’라는 새로운 종을 제시한다. 그리고 ‘창의적’으로 살아가려는 시도까지 덧붙이면서 공존할 수 없을 것 같은 두 가지 속성을 가지고 말겠다는 선언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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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노 베어스 포스터

특징 1. 밤에 활동하고 낮에는 주로 잠을 잔다.

특징 2. 햇빛을 보면 쪼그라든다.

특징 3. 인간의 음식을 먹으면 죽을 수도 있다.

특징 4. 수명이 매우 길다.

특징 5. 자신의 사냥감은 직접 처리한다.

특징 6. 사냥한 인간을 확실히 죽이지 않으면 동족으로 변한다.

특징 7. 심장에 말뚝이 박히면 죽게 된다.

 

〈난 엄청 창의적인 휴머니스트 뱀파이어가 될 거야〉의 뱀파이어들의 습성을 정리해보자면 이렇다. 전형적인 뱀파이어 캐릭터와 비슷한 것 같지만 영화 속으로 들어가 보면 주인공은 브람 스토커의 흡혈귀 백작도, 햇빛 아래 반짝이는 로맨스 주연도 아니다. 밤거리를 홀로 배회하는 소녀를 따라가기로 하면서, 영화는 다름 아닌 ‘휴머니스트 뱀파이어’라는 새로운 종을 제시한다. 그리고 ‘창의적’으로 살아가려는 시도까지 덧붙으면서 공존할 수 없을 것 같은 두 가지 속성을 가지고 말겠다는 선언을 한다.

사샤는 뱀파이어 집안에서 태어난 소녀이다. 생일을 맞아 아빠는 전자 피아노를 선물한다. 엄마의 선물은 초인종을 누르고 등장한 광대. 그녀는 사샤가 마술 쇼보다는 사냥을 즐기길 원한다. 그러나 살아 움직이는 인간을 죽일 수 없었던 사샤는 선물을 포기하고, 광대는 다른 가족들 차지가 된다. 이 첫 시퀀스는 그녀가 어떤 뱀파이어인지 설명해 준다. 사샤는 클 만큼 컸는데도 스스로 사냥하지 못하고, 폭력을 두려워한다. 그녀는 수십 년을 더 자라면서도 엄마가 혼자 구한(사냥인지 절도인지 알 길은 없다) 혈액 팩으로 연명했다. 아직도 송곳니는 나지 않았고, 이따금씩 키보드를 갖고 나가 버스킹을 하는 것이 일상이다.

그러나 사샤의 본능은 배고픔, 사냥할 기회가 아니라 다른 사람의 위기를 목격할 때 드러나게 된다. 어느 날, 사샤는 저층 건물에서 투신하기 직전인 소년 ‘폴’을 목격한다. 그는 학교 안팎에서 당하는 폭력에 지쳐, 삶보다는 죽음이 더 나은 도피처라는 결론에 다다랐다. 투신은 이루어지지 않지만 사샤는 그를 눈여겨 본다. 눈앞에서 살해당한 광대와는 다르게, 그는 살려달라고 애원하며 마음을 약하게 만들지 않을 것 같아서였을까? 그녀는 사냥을 시도한다. 그가 다가온 자신을 보고 겁을 먹고 도망치려다 넘어져 다친 순간, 사샤의 송곳니는 처음으로 튀어나온다. 이만 독립하라는 가족들의 닦달에 사냥을 시작했지만, 그녀의 본능은 이유 없는 폭력과 유혈사태가 발생할 때 그것을 막으라고 외치는 것처럼 보인다. 수많은 인간이 그러하듯, 또 그래야만 하듯이.

사샤가 유별난 아이가 되었던 이유, 그녀의 예술적인 민감성과 공감 능력이 예민함이 되었던 이유는 뱀파이어들이 폭력에 무감해졌기 때문이다. 누군가가 다치는 광경을 보고도 크게 동요하지 않고 시니컬한 태도를 유지하는 것이다. 수많은 뱀파이어 캐릭터와 사샤의 다른 점은 〈휴머니스트 뱀파이어〉가 가진 이 묘한 균형 때문이다. 이들은 드뷔시를 듣고 은색 볼보를 모는 〈트와일라잇〉 의 가족들이나 삶이 곧 기회인 〈박쥐〉, 긴 수명이 곧 저주인 〈뱀파이어와의 인터뷰〉 캐릭터가 아니다. 취향과 유행 속에 살면서도 누군가와 공유할 수는 없고, 긴 수명을 견디면서 어린 시절의 열정은 금세 사그라든다. 사샤는 음악을 즐기지만, 그녀의 부모님은 가사 노동 분담과 유난히 송곳니가 늦게 나는 아이 걱정에 시달리는 중년(모습의) 부부이다. 이들의 길고 긴 수명은 영원히 사는 징벌이 아니라 지루함이다. 그리고 이들에게는 그것이 곧 성장이자 독립이다.

 

송곳니가 나자 엄마는 당장 사냥할 수 있겠다며, 마음이 약해져 자꾸만 혈액 팩을 줘 버리는 아빠 없이 지내도록 사샤를 언니인 상드린의 집으로 보내 버린다. 그녀의 사냥 방식은 아주 단순하다. 술에 취해 여자를 꾀어 보려는 남자들을 집으로 불러들이고, 제압해 거꾸로 매단다. 피를 다 마시면 인적이 드문 곳에 매장한다. 사샤는 상드린의 방식에 질겁하지만, 자세히 보면 그녀의 시니컬함에도 고민의 흔적이 있다. 나름 ‘그래도 될 만한’ 대상을 고르고, 사샤가 음악으로 평화를 찾으려고 노력하듯 상드린은 그림을 그리면서 절대 가족을 늘리지 않는다. 잘 생각해 보면 피를 마시고 산다는 것 외에는 인간과 크게 다를 것 없는 삶이다.

동시대 관객이 살아가는 현실은 이해관계가 너무나 복잡하게 얽혀 있어 아무리 윤리적인 선택을 내리려고 해도 결국은 불가능하게 한다. 가공육 산업의 폐해를 떠올리면서 비건 메뉴를 고른다고 해도 그 안의 아보카도는 어마어마한 양의 담수를 낭비하면서 길러지고, 플라스틱 없는 화장품을 산다고 해도 그 안의 반짝이 가루는 어린이의 고된 광산 노동으로 생산된다. 사샤와 마찬가지로 관객들은 식탁에 오르기까지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어렴풋이 알면서도 살육의 과정은 깔끔히 제거된 음식만을 맛본다. 〈휴머니스트 뱀파이어〉는 인간의 목덜미를 깨물어 식사하는 뱀파이어들을 통해 그 과정을 단숨에 줄여서 관객에게 보여 준다. 그 앞에서 죽음을 대하는 뱀파이어들의 태도는 무심하고 심지어 평범해 보이기만 한다. 그러나 가족 중 가장 어린 사샤는 그 과정을 감당하고 싶지 않아 사냥하지 않는 것을 신념으로 삼는다.

 

하지만 위기는 빨리 찾아온다. 굶어 죽을 수는 없지 않은가. 그러면 예술도 신념도 아무 소용 없게 된다. 사샤는 저녁을 먹으며 웃고 떠드는 젊은이들을 바라보다가 살육을 하는 대신 인간의 음식을 먹고 죽어 버릴지 고민한다. 그때 그녀의 눈에 자살 방지 모임 홍보물이 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위기의 순간 방문한 모임에서 엄마의 권유에 참석한 폴을 다시 만난다. 어떻게든 살아가 보려는 사람들 사이에서, 죽음이 최선의 선택이자 고통을 끝낼 도피처라고 생각하는 폴과 ‘나쁜 일을 억지로 해야 해서’ 괴롭다는 사샤는 눈을 마주친다. 플라스틱 의자에 빙 둘러앉은 사람들 사이에서 그들은 동지애가 담긴 눈빛을 던진다. 이해관계의 가능성을 느낀 폴은 사샤에게 자신을 죽여 달라는 제안을 하고, 그녀는 폴을 집으로 데려가기에 이른다.

Emotions, you get me upset
감정들, 날 화나게 해

Why make me remember what I wanna forget?
왜 잊고 싶은 기억을 떠올리게 해?

I’ve been lonely, lonely too long
난 너무, 너무 오랫동안 외로웠어

Emotions, please leave me alone
감정들, 제발 날 내버려 둬

 

1961년, ‘Emotion’을 부른 미국 가수 브렌다 리(Brenda Lee)는 열일곱이었고, 사샤는 대여섯 살이었으니 그녀는 한 세대 거슬러 음악을 들은 셈이다. 그러나 십 대 소녀의 복잡한 감정을 노래하는 가사는 살고 또 살아야 하는 것에 대한 고민, 자신이 사냥하지 못하도록 막는 연민과 감정에 호소하는 것처럼 들렸을 것이다. 폴은 수많은 레코드판 중에 딱 하나만 고르라면 무엇을 고를 거냐고 묻고, 사샤는 망설임 없이 이 곡을 고른다. 시간이 지나 클래식으로 거듭난 드뷔시가 아니라 정적이 흐르는 가운데 속마음을 말해 주는 음악이 울려 퍼지는 이 장면이 〈휴머니스트 뱀파이어〉의 특별함을 보여 준다. 폴은 판타지 속 창백한 흡혈귀가 아니라 살아있는 사샤를 본다. 그리고 사샤는 옆에서 함께 리듬 타는 그를 보면서 역시 살아 있는 그를 본다. 죽고 싶다고 말하면서도 브렌다 리의 목소리에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폴을 목격한다. 그녀의 송곳니는 나오지 않는다.

 

이것을 반쯤은 핑계 삼아, 사샤는 폴이 죽기 전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일을 도와 주기로 한다. 주린 배를 부여잡고 자신을 못살게 군 아이들과 선생님들을 골탕 먹이고 유서를 남기는 폴을 따라다닌 그녀는, 파티에서 싸움을 벌이고 해방감에 신나게 뛰는 폴을 본다. 유서를 놓으러 들어간 방에서 그 역시 가지고 있는 수집품들을 보고, 자신들의 계획과는 달리 퇴근해 집에 들이닥친 그의 어머니를 본다. 관객은 사샤가 결국은 그를 죽일 수 없을 것이라고 직감한다. 사샤의 가족들도 마찬가지여서 그들은 실수로 머릿수를 늘리게 될지 걱정인 부모님, 언니, 외숙모에게 쫓기는 신세가 되고 만다. 뱀파이어 영화의 클리셰는 여기서 유용하게 쓰인다. 로맨스 없이 두 사람이 하나가 되는 결말을 어떻게 맞을 수 있을까? 결국 두 사람은 죽음에 반쯤 걸친 상태를 선택한다. 폴이 뱀파이어가 되어 죽은 심장으로 살아가기로 한 것이다. 사샤가 선택을 고심하는 사이 폴은 이미 상상을 마쳤다. 그리고 우리는 정말 창의적인 뱀파이어가 될 수 있다고 말하며 그녀를 설득한다.

죽음을 한 번, 새로운 삶을 한 번 선물 받은 폴과 송곳니를 쓸 수 있게 된 사샤는 정말로 ‘창의적으로 인간주의적인’ 삶의 방식을 보여 준다. 둘은 비록 인간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휴머니스트로서 살아가기로 결심한다. 생명유지장치에 매달려 살아가기 지친 사람들, 노인들이 고통 없이 삶을 마감하도록 하면서 그들의 혈액을 취하기로 한 것이다. 가족과 시간을 보내고 난 ‘자살 동의자(consenting suicidal person)’는 사샤의 피아노 연주를 들으면서 떠난다. 그들은 검은 옷을 차려입고 그들만의 사냥 겸 장례식을 마친다. 〈휴머니스트 뱀파이어〉는 그렇게 허무주의에 빠지려는 관객을 건져낸다.

〈난 엄청 창의적인 휴머니스트 뱀파이어가 될 거야〉는 저물어 가는 것만 같은 지구에서 살아가기 위한 태도를 고민하는 것처럼 보인다. 귀여운 로맨스 대신 존재론적인 고민을 펼쳐 보이는 폴과 사샤를 통해서 자기만의 지속 가능한 코미디를 조심스레 제시한다. 인간의 편의 서기로 한 뱀파이어들이 ‘창의적’이기까지 해야 했던 이유이다.

 

우리는 앞으로 영구적인 손해를 입고 만 행성에서 살아야 한다. 그리고 영원처럼 느껴지는 백 년을 더 살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지금 당장 삶을 져버릴 수는 없다. 뱀파이어 영화를 보고 브렌다 리의 노래를 또다시 듣고 싶기 때문에 그렇다. 또 다른 지속 가능한 코미디를 보고 싶기 때문에 그렇다.

241219_효진 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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