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담 제23호 〈러브레터〉에서는
한 사람이 짧은 추천과 함께 사랑영화를 보내면,
이를 받은 다른 사람이 답신으로 비평을 작성합니다.
예은👾 이 상희🦥에게 보내는 사랑영화 💌
사랑이 뭐지 하고 스스로를 회의론자라 칭했던 농담 섞인 말이 떠올라. 언제부터인지 가라앉아 있었을 그 마음을 뒤흔들고 싶었나 봐. 나의 직감이든 너의 선택이든 뭐든 간에.
사랑은 뭘까, 도대체 정체가 뭘까, 한창 답답할 때 이 영화를 틀었었어. 젠체하거나 성스럽거나 예의 바른 건 보기가 싫더라. 직관적이고 본능적인 거, 탐스럽고 어지러운 거, 그런 게 더 끌리던 시기라 그랬었나.
이제는 그 질문과 답을 너에게 넘겨. 사랑, 그 욕망의 근원에 대해서 가장 원초적인 감각에 대해서 탐구하는 시간이 되길 바라. 무엇이든 의미가 아리송할 땐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으니까.
그럼 답장을 기다릴게.
예은 보냄.
🍲 아 유 러브? 🍲



뜨거운 때양볕이 살갗에 닿았을때 느껴지는 데일듯한 열기, 그 위로 흐르는 땀방울을 닮은 루카 구아다니노의 강렬한 사랑 영화들과 달리 〈아이 엠 러브〉는 회빛 겨울의 밀라노에서 막을 열어. 명망 있는 레키 가문의 가주 생일파티를 위해 근사한 차림의 가족 구성원들이 하나둘 모여들고, 연회 준비에 한창인 요리사들과 고용인들의 동선이 분주히 엇갈리지. 이 모든 움직임을 조율하는 가문의 안주인 ‘엠마’는 유구한 역사가 지탱하는 대저택 속에 처음부터 속해 있던 사람처럼 위화감 없이 녹아들어 있어.
어느덧 가문의 사람이 된 엠마의 과거, 그러니까 저택 밖의 삶을 가늠케 하는 건 오로지 고향인 러시아의 음식뿐이야. 연회를 위해 엠마가 손수 끓인 우하 수프는 첫째 아들 ‘에도’가 가장 좋아하는 요리이자 거의 유일하게 저택에서 허용된 과거의 흔적이지. 그도 그럴것이 엠마는 러시아를 떠나오며 모든 것을 두고 온 듯 보이거든. 가족도, 취향도, 심지어 본인의 이름인 ‘엠마’마저도 결혼 후 새롭게 주어진 것이니 말이야.


억압된 것은 어느 경로로든 새어나오기 마련인가봐. 엠마는 연회 때 스치듯이 본 아들의 친구이자 셰프인 ‘안토니오’를 그 해 여름에 다시 만나게 돼. 그의 식당에서 새우 요리를 맛보는 순간 마치 오르가즘을 느끼듯 주변을 잊은 채 오로지 자신과 음식, 둘만을 감각하지. 그 어느 것도 욕망하지 않는 듯 보이던 이가 맛있는 것을 먹고 황홀해할 줄도 아는 사람었다니. 누가 알았을까, 고작 입 안 가득 퍼지는 풍미 정도의 즐거움이 단조롭던 엠마의 일상에 제동을 걸리라는 사실을. 가문의 전통, 정해진 규율, 쳇바퀴 굴러가듯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안토니오의 요리는 엄청난 자극이었던거야. 그러니 엠마가 어디에도 얽매여 있지 않은 안토니오의 자유로움에 끌린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는지도 몰라.
사랑은 곧 결핍의 다른 말일까? 돌이켜보면 나 역시 항상 내게 없는 것을 가지고 있는 이들에게 매료돼왔어. 도저히 접점이라곤 없을 것 같은 누군가를 보면 그 세상으로 넘어가볼까 생각하다가도 결국 우리 사이의 간극을 기어이 확인하고 나서야 상처받고 뒤를 돌았지. 왜 나는 좁디 좁은 내 마음에 더 넓고 환한 것을 들이려 했을까. 그 욕심이 사랑의 본질이라면. 본디 사랑은 섣부르고 거추장스럽고 불가해한 것이라면, 그렇게 해서 결국 등을 돌리게 되는 결말을 맞이하게 될 거라면 시작도 하지 말자 결심했어. 세상엔 사랑 말고도 내 세상을 넓혀 줄 확실하고도 충만한 것들이 많으니까. 점점 노골적으로 안토니오에게로 흐르는 시선을 감추지 못하는 엠마를 향해 이렇게 말해주고 싶었어. 당신이 사랑하는 건 안토니오가 아니라 안토니오가 살고 있는 세상, 자유, 그의 요리만큼이나 예측할 수 없는 다채로운 삶이라고. 그리고 그건 안토니오가 아니더라도 꿈꿀 수 있는 것이라고. 사랑이라고 착각했다가 상처를 받고 말 것이라고 말이야.


내 호소는 엠마에게 가닿지 못했고 결국 엠마는 안토니오의 세계로 훌쩍 넘어가. 딸 ‘엘리자베타’를 만나러 간 니스에서 우연히 안토니오를 발견하고 그곳에서 처음 맞는 여름을 만끽하지. 영원히 끝나지 않는 겨울을 지나온 엠마는 처음 맛보는 여름의 강렬함에 속수무책으로 빠져들어. 수풀이 우거진 산골 속 허름한 집, 대강 자른 머리카락, 한낮의 사랑, 멀리 펼쳐진 산의 능선을 보고 있자면 찐득하고 축축한 여름의 습기가 스크린 너머로 만져지는 것만 같아. 밀라노의 겨울을 뒤덮던 얇은 막이 걷힌 자리를 대신하는 고명도의 여름은 노골적이고 가감 없지만 왜인지 선정적으로 느껴지진 않았어. 뭐랄까, 어떤 이야기의 원형에 가깝게 느껴져서 그런가. 오래전부터 되풀이돼 쓰여온 고대 그리스 신화 같은 거 있잖아. 마치 엠마의 꿈 속에 들어와 있는 것처럼 현실감 없게 느껴지기도 했고.
꿈에서 깨어나는 것은 다시 성대한 연회를 위해 가족이 저택에 모이게 되었을 때야. 엠마는 저택으로 돌아와 수행해야 할 역할을 충실히 이행하지. 적어도 겉으로는 말이야. 저녁식사 전 어수선한 분위기를 틈타 엠마는 에도가 몇번이고 자신을 부르는 것도 모르고 계단을 타고 아래로, 아래로 내려가 지하의 주방에서 안토니오와 입을 맞춰. 그리고 안토니오는 니스에서 엠마에게 배운 우하수프를 상에 내놓지. 이 미묘한 균열을 감지하는 것은 애석하지만 당연하게도 엠마를 가장 가까이서 지켜봐온 에도야. 우하 수프가 상에 올라오자마자 그는 안토니오의 가게 앞에 잘려져 있던 금발 머리카락의 주인이 엠마임을 깨닫는 동시에 자신이 런던에 가 있던 시간 속 엠마와 안토니오를 짐작하게 돼.

갑작스러운 에도의 죽음으로 인해 엠마는 무너지지만 동시에 니스에서의 시간은 아들 에도와 함께 영원히 봉인돼. 아이러니하게도 이 비극으로 인해 엠마를 붙잡아 둘 수 있는 것은 전부 사라지게 되지. 아들의 장례를 치르고 휑한 성당에서 맨발로 멍하니 서 있는 엠마를 향해 남편은 말없이 다가와 널부러져 있던 하이힐을 신겨줘. 그런 남편에게 엠마는 스스로 봉인을 풀고 말하지. ‘당신이 알던 나는 이제 없어요. 안토니오를 사랑해요’ 이제 반대로 현실을 깨고 나와야 할 때라는걸 직감한거야. 엠마는 마침내 완전한 해방으로 나아가기 직전, 입고 있던 값비싼 드레스를 전부 벗어던지고 짧아진 머리만큼이나 가벼운 옷차림으로 저택의 계단을 내려와. 수직과 수평의 공간을 동시에 향유하던 엠마는 마지막 시퀀스에 이르러 쏟아질 듯 가파른 수직의 층계를 따라 바닥면까지 내려오고, 마침내 저택의 문 너머 수평의 공간으로 영영 사라져버리지.

‘인연을 만나는 건 고독만큼 멋진 거야
우린 용기를 내야 해’
사진 속의 앙가라드라는 친구가 들려준 노래 가사야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해주는 건
에도 오빠 뿐이야
난 여자랑 사귀어 왔어
(…)


엠마가 떠난 자리를 오래 바라보면서도 가라앉은 내 마음이 떠오른지는 모르겠어. 분명한 건 엠마를 해방으로 이끈 것은 사랑이었다는거야. 사실 나도 알고 있어. 안토니오가 아니라 그를 둘러싼 환경을 동경하는거라고 아득바득 우긴다 한들, 그 둘을 구분하는게 아무 짝에도 쓸모 없는 일이라는걸. 사랑은 그렇게 명확히 딱 떨어지는게 아니니까.
사랑이 궁극적인 것, 가장 좋은 것, 무채색의 세상 속에서 홀로 밝게 빛나는 것이 아니라는 걸 믿기 힘들었던 것 같아. 결국 사랑이란 우정과 사랑, 동경과 연민을 헷갈려 뭉뚱그려 포괄한 흐릿한 형체인거겠지. 더 이상 단어를 구분 짓는 일에 집착하지 않게 되었을 때쯤 엠마의 사랑이 보이더라. 언니의 말대로 직관적이고 본능적인 사랑, 탐스럽고 어지러운 것. 그런 날 것의 사랑. 그건 내가 상상한 빛나는 사랑과는 거리가 멀었고, 오히려 눈살이 찌푸려지기까지 했어. 뿜어대는 에너지와 육체성, 오감이 열리는 듯한 느낌이 거북했거든.
내가 내린 결론은 이러해. 사랑은 욕망, 이기심, 본능, 이성 같은 것과 나란히 서 있는 것. 놀랍도록 보잘 것 없고 믿을 수 없이 누군가를 용감하게 만들어주는 것. 도처에 만연해 있는 것. 추하고 아름다운 것. 단어와 단어 사이 닿을 수 없는 거리를 단숨에 좁혀주는 것.
그리고 난 여전히 존재하는지도 모를 대답 주변만을 배회하고 있고, 영영 찾지 못할지도 모르지만 사랑에 대해 이야기하는 걸 멈추지 못할거라는 사실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