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임라이트, 🎭생을 밝히는 희미하고 끈질긴 빛🎭

🎭 생을 밝히는 희미하고 끈질긴 빛 🎭

찰리 채플린, 라임라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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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이 오르면 그가 무대에 등장한다. 중절모와 콧수염, 진하게 강조된 눈썹, 과장된 표정, 우스꽝스러운 몸짓. 이 나이 든 희극인은 성공적으로 공연을 마치고 다시 무대로 나와 인사를 할 참이다. 그러나 그의 시선이 향한 곳에는 아무도 없다. 불이 꺼진 어두운 객석처럼, 그의 표정에도 그림자가 드리운다.

꿈이었지만 불 꺼진 객석의 정경은 잔상으로 남아 그를 괴롭힌다. 영화가 시작하면 프레임 우측에서 입장하는 칼베로는 세상이 잊어버린 코미디언이다. 모든 조명을 한 몸에 받던 때도 있었지만, 이제 무대에서 그에게 허락된 빛은 없다. 그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어두운 구석에서 새로운 무대의 주역이 탄생하는 장면을 지켜보는 일뿐이다.

 

칼베로의 시대는 말 그대로 저물었다. 6개월을 사정해야 겨우 한 번 무대에 오를 기회를 얻고, 그마저도 그의 이름은 독이 되기에 마음껏 자신을 드러낼 수도 없다. 그는 자꾸만 미끄러진다. 공연을 하지만 관객은 모두 자리를 뜨고, 광대 자리를 얻지만 잘하지 못한다고 교체당하며, 결국 술집에서 공연하고 적선하는 것으로 생계를 이어간다. 그래서 무대 위 그를 보고 있으면 어쩐지 슬픔이 느껴진다. 과장된 표정과 우스운 몸짓에 처연함이 묻어나는 채플린의 영화들처럼.

 

그런 그도 생의 의지를 잃어버린 테리에게 희망을 말할 때만큼은 확신에 차 있다. 칼베로는 세상 다 산 어른–약간은 꼰대–처럼 생을 위한 투쟁을 예찬하고, 지구를 움직이는 우주의 힘, 나무를 자라게 하는 우리 안의 힘에 관해 이야기한다. 희망을 말할 때 그가 보이는 확신은 테리를 다시 일어서게 한다. 하지만 “생의 원동력은 의미가 아니라 욕망”이라고 설파하던 그도 꿈속에서는 간절하게 인생의 의미를 찾고 있다. “지금 나는 인생의 의미를 찾으려는 거야. 뭐하러 애를 쓰고 있지! 이 욕망이 대체 뭘까? 삶을 지탱하는 이것은?”

 

이 모든 것이 결국에는 덧없다면서도 누구보다 생을 염원했던 그의 죽음은 허무하게 찾아온다. 아픈 몸을 이끌고 연극을 계속하다가 무대에서 쓰러져 죽은 몰리에르처럼, 칼베로는 무대에서의 부상으로 소품 위에서 죽음을 맞는다.

의사 선생, 내가 곧 죽을 것 같군요. 모르겠어. 난 여러 번 죽었었으니까.

고통스럽소?

더 이상은 아니오. … 그녀는 어디 있지? 그녀가 춤추는 걸 보고 싶어.

객석의 환호가 테리가 꾸며낸 것임을 어렴풋이 눈치챈 그는 그 열띤 반응에서 생의 의미를 발견했을까. 눈을 감기 직전 내뱉은 말이 무대를 향한 그의 여전한 욕망을 보여준다. 그는 여러 번 죽었으나 계속해서 무대를, 삶을 열망한다.

 

눈을 감은 그를 뒤로하고 카메라가 비춘 무대에는 여전히 테리의 춤이 흐른다.

은막은 내리지 않는다.*

* 찰리 채플린, 『나의 자서전』 마지막 장의 제목

아무도 나를 찾지 않는 세상에서 나를 증명해야 하는, 모두에게 주어진 그 투쟁을 칼베로도 하고 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면 자연스레 채플린이 떠오른다. 액자에 걸린 포스터 속 칼베로의 이름 아래에는 떠돌이 찰리(Charlie the Tramp)를 연상시키는 ‘Tramp Comedian’이라는 문구가 있다. 테리가 생에 관해 이야기하는 칼베로에게 ‘희극 배우 같지 않다’고 말할 때 그는 ‘사람들이 상상력이 없어서’라고 말하는데, 이는 찰리가 유성영화 앞에서 은퇴를 선언할 때 “영화는 끝났다. 더 이상 사람들은 상상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했다는 일화를 연상시킨다.

채플린의 1928년 작 〈서커스〉는 흥행에 성공했지만, 그 전후로 영화계의 상황이 변화한다. 개봉 직전에 〈재즈 싱어〉(1927)가 유성 영화 시대의 도래를 알리며 무성 영화 배우들이 설 자리를 잃은 것이다.* 찰리의 라이벌이자 슬랩스틱 코미디로 최고의 인기를 누리던 배우 겸 감독 버스터 키튼은 유성 영화에 출연했다가 기대와 다른 목소리로 대중에게 실망을 안긴다. 이런 가운데 채플린도 자신이 잘하던 방식을 완전히 버려야 하는 것이 두려웠을 것이다. 물론 그의 직업적 상황은 칼베로와는 사뭇 달랐다. 무성 영화에 대한 신념을 잃지 않는 대신 사운드트랙을 도입한 〈시티 라이트〉(1931)는 큰 성공을 거두었고, 이후 유성 영화로 들어서서도 〈모던 타임즈〉(1936), 〈위대한 독재자〉(1940) 등 유명한 작품들을 남겼다.
* 외모와는 사뭇 다른 목소리가 웃음을 자아내 결국 목소리 연기를 할 배우를 따로 구하는 〈사랑은 비를 타고〉(1954)의 유명한 장면은 당시 상황을 잘 보여준다.

유성 영화로 성공을 거둔 후에도 무성 영화에 대한 그의 애정은 사라지지 않았다. 이 시대를 향한 채플린의 마음을 간접적으로나마 보여주는 부분이 영화의 마지막, 칼베로의 자선 공연 장면이다. 이때 키튼이 피아노를 치는 칼베로의 공연 파트너 역으로 등장한다. 분장실에서 그는 칼베로에게 말한다. “우리가 이렇게 되리라곤 생각도 못 했는데. 의상 담당자도 없는 분장실에서 이렇게.” 변화한 시대를 통감하는 두 배우의 대화는 한때 라이벌이었던, 이제는 전성기를 지나쳐온 채플린과 키튼의 대화처럼 들리기도 한다. 여기서 채플린은 피아노를 연주하는 그의 모습을 자르지 않고 담는 것으로 시대를 풍미한 한 배우에게 존경을 바치는 듯하다.

 

그러나 그의 캐릭터 떠돌이 찰리처럼, 말년의 그는 고향에도 본거지에도 안착하지 못했다. 1952년 그의 역작 중 하나로 남을 〈라임라이트〉가 개봉하던 시기, 채플린은 매카시즘 광풍에 의해 공산주의자로 몰리고 있었다. 고향인 런던에서 개봉하기 위해 미국을 잠시 뜬 동안 정부가 그의 미국 비자를 말소시켰고, 그는 터를 잡고 직업생활을 이어온 공간에서 퇴장당했다. 이후 1972년 아카데미 특별상을 받기 위해 미국을 방문할 때까지 그는 공산주의자로 몰려 20년을 스위스에서 보내야 했다.

 

평생의 신념을 바꿔야 하는 상황과 평생을 몸담아온 사회에서 부정당하는 경험. 계속해서 큰 결정의 기로에 놓여야 했던 채플린의 삶을 바라보며 다시 칼베로의 말을 떠올린다. “죽음만큼이나 피할 수 없는 게 있지. 그건 삶이야. 삶. 삶. 삶!”이것은 삶에 대한 무책임한 예찬이 아니다. ‘삶’을 세 번 강조해서 말할 때, 죽음을 목전에 두었던 이의 삶의 무게가 묵직하게 다가온다.

어두운 객석에 하나둘 불이 켜진다. 〈안녕, 용문객잔〉(2003)에서, 당장 내일부터 영화를 틀지 않을 복화극장의 매표원은 죽음을 앞둔 극장을 매일 하던 것처럼 쓸고 닦는다. 절뚝거리는 발은 느릿하게 극장 곳곳을 훑고, 카메라는 그가 일을 다 마칠 때까지, 혹은 목적지에 도달할 때까지 가만히 기다린다. 마치 제의처럼 느껴지기도 하는 그 동작이 마음을 두드린다. 누가 봐주지도, 인정해주지도 않아도, 변화하는 시대 속에서 나의 일부분이 스러지지 않도록 지키려는 반복적인 움직임.

 

너무 많은 죽음이 쏟아진다. 그저 숫자 몇 개로 누군가의 죽음이 이야기될 때, 그에 감춰진 이들의 삶은 어땠을지 헤아려 본다. 그 무게를 담아내기에 글자 몇 개, 숫자 몇 개는 너무도 가볍다.

 

그 숫자를 보고 있으면 갑자기 내 몸이 이 땅에 붙어 있다는 사실이 낯설게 느껴지곤 한다. 그리고 나의 생은 얼마만큼의 무게를 차지할지 생각해 본다.

 

나를 끊임없이 갱신하지 않으면 이 세상에서 나의 쓸모가 사라질 것 같다는 생각에 쫓기듯 남들의 삶의 속도를 따라가다 문득, 그 텅 빈 극장과 느릿한 움직임에 대해 생각한다. 올 사람이 없는 극장을 청소하는 매표원과 아무도 없는 극장에 웃음을 퍼트리는 코미디언. 눈앞에 어떤 죽음이 뻔히 보여도 이 잠깐의 생을 아끼는 마음. 죽었거나 죽어가는 것들을 가벼이 여기지 않으려는 의지. 더는 복화극장에서 영화를 틀지 않아도, 혹은 이제는 팬터마임을 즐기는 이가 없다고 하더라도, 그 움직임은 어떤 형태로든 흔적을 남긴다. 물걸레질로 닳고 닳은 극장 바닥의 매끈함으로, 또는 왁자했던 객석의 웃음소리가 마음에 남긴 파동으로.

221027_성하 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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