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닉스, 🌿 시간의 재촉 속에서 놓쳐버리는 것들 🌿

얼굴에 붕대를 감은 동승자를 배려해 서두르지 않고 귀환하는 자동차는 군인에 의해 잠시 멈춘다. “강제 수용소에서 왔어요”, “제발요” 라는 부탁에 닥치라며 맨얼굴을 봐야겠다는 군인과 힘겹게 붕대를 푸는 동승자의 모습은 전쟁 직후 남은 개인 간의 의심과 불화를, 자기 육체를 피해의 증거로 펼쳐내야 했던 살아남은 자들을 예상하게 한다. 다만, 그다음 장면에서 흐릿한 안도감이 드는 이유는 어렴풋이 들리는 “미안해요”라는 말 때문일 것이다. 영화는 과거의 폭력을 재현하기보다 아물지 않는 공통의 상처를 맴돈다.

‘새 얼굴을 가지고 새 삶을 살라’는 의사의 조언을 제치고 넬리는 예전의 얼굴과 똑같아지고 싶다고 말한다. 그 간절함에서 생존자로 불리기 이전 행복했던 삶으로 되돌아가려는 의지가 비친다. 그런 넬리 앞에 당도한 것은 절망스럽게도 나치로 판명 나거나 위에 십자가가 그려진 옛 친구들, 그리고 폭격으로 스러진 건물의 잔해다. 다행히 남편 조니만은 멀쩡히 살아있다. 하지만 넬리의 유일한 희망인 그는 아내의 행방을 털어놓는 대가로 나치의 고문에서 풀려난 남자, 아내가 죽었다고 굳게 믿고 그의 유산을 노리는 남자다. 하나뿐인 친구 레네가 일러준다.

“조니는 널 배신했어.” 그러니 잊어.

하지만 〈피닉스〉는 그렇게 할 수 없는 인간을 응시하는 영화다. 〈피닉스〉를 포함한 페촐트의 ‘역사 3부작’은 거대한 역사적 문제를 소리 높여 비판하는 대신 그 한복판에 선 개인을 조망하는 ‘시네마’로 남기를 택한다. 당사자성이 부재한 예술이 으레 그러하듯, 우리는 필연적으로 우리가 바라보는 개인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는 운명을 가진다. 〈피닉스〉 또한 그의 고통이나 불행을 대신 호소하고 있다는 뉘앙스조차 흐르게 두지 않는다.

그런데 우리가 바라보는 넬리도 누군가를 바라본다. 돌아갈 수 없는 시절을 그리워하는 노스탤지어와는 다른 열정으로. 재밖에 남지 않은 오늘날 풍경에 놓쳐버린 지난날을 ‘재건’하거나 ‘복원’하는 수준이 아닌, 과거의 완전한 소환을 원하는 눈이다. 그리고 다시 한번, 그 눈은 넬리의 유일한 희망인 조니를 좇는다. 불한당에게 위협당한 밤을 겪고도, 다음 날 꿋꿋이 조니가 일하는 ‘피닉스’를 찾고 만 넬리를 보며 떠올렸다. 불가해한 사랑을 구심점으로 이승을 떠나지 못하고 배회하는 유령의 뒷모습을. 정확하게는 붙잡힌 유령의 뒷모습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