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오늘의 여담을 열기 전에, 각자 가장 좋아하는 지브리 영화를 떠올려 봅시다. 어떤 영화인가요? 언제, 어디서 보셨나요? 특별한 애정이 서린 캐릭터가 있나요? 아마 다섯 명이 모이면 다섯 편의 영화가, 열 명이 모이면 열 개의 이야기가 나올 거예요. 다른 삶을 살아 온 우리들을 하나로 엮어 준다는 점, 함께하지 못한 당신의 유년 시절을 상상해볼 수 있게 해 준다는 점에서 지브리의 영화는 소중하지요. 괜찮으시다면, 지브리에 관한 여러분의 이야기를 답장으로 들려주세요. 그럼 제 이야기를 담아 답장해 드릴게요. 미리 말하자면, 제가 가장 좋아하는 지브리 영화는 〈벼랑 위의 포뇨〉랍니다.
오늘은 〈이웃집 토토로〉의 여담을 준비했어요. 그럼 〈さんぽ(산책)〉을 들으며 힘차게 시작해 볼게요.
歩こう歩こう私は元気歩くの大好きどんどん行こう
걷자 걷자 나는 건강해 걷는 게 정말 좋아 계속해서 나가자
〈벼랑 위의 포뇨〉가 강렬한 파랑의 여름이라면 〈이웃집 토토로〉는 경쾌한 초록의 여름을 선사합니다. 녹음이 짙은 숲과 시골을 보고 있자면 눈과 마음이 편안해져요. 이 안온한 감성에 낭만을 불어넣어 주는 것이 바로 섬세한 소리입니다. 바람에 나무가 흔들리는 소리, 강물이 흐르는 소리, 밤의 풀벌레 소리, 자전거 페달을 밟는 소리, 빗방울이 우산에 부딪히는 소리를 들으며 찰나의 자연을 즐기게 해 줍니다. 그리고 영화는 절대 급하지 않은 속도로 이를 담아내기에, 한순간도 쉬이 흘려보내지 않습니다.
영화 속 각각의 쇼트와 시퀀스는 순간을 수록하기에 충분한 시간을 부여받습니다. 섣불리 화면을 흔들지 않고, 정적인 프레임 안에서 나뭇잎 끝에 빗방울이 맺혀 서서히 커지다가 이내 떨어지기까지의 시간을 온전히 담아냅니다. 그런데 어릴 적을 한 번 생각해 보세요. 그때도 이런 느리고 고요한 순간들이 소중했나요?
지금이야 움직임 없는 잠잠한 순간을 좋아하지만, 이제는 시간이 천천히 흘러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지만, 초등학생의 저는 그렇지 않았거든요. 일과를 모두 마쳐도 해가 중천에 떠 있던 십수 년 전 여름날을 떠올려 보면, 이 영화의 온전한 느림이 답답했을 것도 같습니다. 아무리 걸어도 주변 풍경이 그대로라는 이유로 등산을 싫어하고 산림욕장을 뛰어 내려오던 아이였으니까요.
おうちの庭が森になったらステキなので
정원이 숲이 되면 멋질 것 같아서
木の実は庭にまくことにしました
나무 열매는 땅에 심었답니다
でも。。。なかなか芽が出ません
근데 싹이 잘 안 나와요
メイは毎日毎日 “まだ出ないまだ出ない”と言います
메이는 매일 “아직 안 나와 아직 안 나와”라며 기다립니다
그래서인지 저는 우산에 빗방울이 떨어지는 소리가 마음에 든 토토로가 냅다 뛰어버리는 장면을 정말 좋아합니다. 한 방울 두 방울을 기다리기보다 풀쩍 뛰어올라 나뭇잎에 맺힌 빗방울을 우수수 떨어뜨리곤 만족한 듯 웃어 보이지요. 좋은 건 당장 전부 해 버리고 싶고 금방 어른이 되기를 바랐던 때가 생각나기도 해서 여전히 이 장면을 기대하며 재생 버튼을 누른답니다.
그러고 보니 〈이웃집 토토로〉는 1988년의 영화임에도 크게 바랜 느낌이 들지 않아요. 어느 시골의 숲속에 들어가면 토토로가, 사츠키가, 메이가 새싹을 틔우고 있을 것 같지 않나요? 마치 짱구와 코난이 여전한 어린아이인 것처럼요. 그렇게 한 순간에 멈춰 있는 듯한 환상은 우리를 각자의 어느 순간으로 데려다 놓습니다.
메이는 도토리를 따라가다 토토로를 발견하지만 혼자 수풀을 헤치고 들어갈 땐 작은 모험이었던 길이 아빠와 언니를 데리고 왔을 땐 별것 아닌 외길로 변해 있습니다. 사츠키는 고양이 버스를 타고 마을을 가로질러 날아가지만 다른 사람들은 이를 보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이런 환상이 더는 현실이 아닌 꿈으로 느껴질 때 추억이 시작되는 것 같아요. 거대한 물고기들로 표현된 파도가 무서웠고, 가마할아버지가 이상했고, 움직이는 성이 마치 괴물 같아 두려웠지만, 어느새 소중한 영화로 남아 버린 지브리의 작품들처럼요.
토토로와 함께 거대한 나무를 키워낸 새벽이 지난 아침, 정원에 있어야 할 나무는 사라지고 없습니다. 그 환상적인 새벽은 꿈이었던 걸까요? 이제 저는 마쿠로쿠로스케를 잡을 수도, 고양이 버스를 볼 수도 없겠죠. 토토로를 만나게 되더라도 꿈이라 생각할 거예요. 그런데 꿈이면 뭐 어때요. 어느새 성장이 멈춘 나무 옆에 작은 새싹을 틔울 수 있을 겁니다. 보이지 않는 바람처럼 지나갈 순수한 기대를 묶어 둘 소중한 기억이 되겠죠.
夢だけど夢じゃなかった
꿈이었지만 꿈이 아니었어
제가 기억하던 영화엔 토토로와 고양이 버스가 꽤 많이 나왔던 것 같은데, 그렇지 않아 조금 놀랐습니다. 역시 시간이 흐를수록 남기고 싶은 것들만 진하게 남겨 놓나 봅니다. 오히려 두 소녀의 귀엽고도 용감한 모험담으로 가득 찬 영화였어요. 사츠키가 이렇게까지 어른스러웠나, 동시에 이렇게 여린 아이였나 싶기도 하고, 찢어진 우산을 건네고 도망치는 소년이 찡하게 다가오기도 했어요. 마냥 귀여운 아이 같던 메이는 엄마를 위한 옥수수를 품에 꼭 안은 당찬 소녀고, 메이를 등에 업고 철이 든 사츠키도 실은 토토로 배에 올라타 하늘을 나는 게 신이 나는 어린아이입니다. 아이들의 세상은 이렇게나 커다랗습니다. 그리고 토토로는 메이의 의젓함을, 사츠키의 동심을 지켜 주는 존재이지요.
오랜만에 영화를 보니 잊고 지내던 장면들, 잘못 기억하고 있던 대사, 기대하던 설렘을 마주하게 되더군요. 여러분도 오늘 잠자리에 들기 전 한여름 밤의 짧은 꿈을 꿔 보는 건 어떨까요? 기대보다 더 설레는 경험을 하게 될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