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레에다 히로카즈, 〈아무도 모른다〉
부모의 보호가 사라진 집에서 아키라, 쿄코, 시게루, 유키 네 남매가 살아가는 방식은 전과 크게 다르지 않다. 예전과 같이 시간이 흐르고, 다음 계절이 오는 과정들을 통해 아이들이 처한 현실이 조용히 드러난다.
🌿 그렇지만 문은 열려 있다 🌿

_김소연, 『마음사전』 p.53
그 집



캐리어에 몸을 접어 넣고 트렁크에 실려 도착한 그 집은 사람의 수에 비해 조용한 편이다. 다섯 사람이 두 사람인 척하는 집에서 장난스러운 언약을 맺는다. “큰 소리로 소란 피우지 않는다. 할 수 있습니까?” “밖으로 나가지 않습니다. 지킬 수 있습니까?” 장남인 아키라는 부딪힌 곳을 어루만져주고 카레도 풍족하게 만들어 나눠 먹는 다정한 오빠면서 수학을 몰라 천진난만하게 웃어버리는 12살 초등학생이다. 엄마인 케이코는 정말 좋아하는 사람이 생겨 애들이 학교도 가고 피아노도 배울 수 있게, 이번엔 정말 잘되길 바란다.
케이코가 가버린 그 아파트에서 아키라는 쿄코, 시게루, 유키와 잘 살아간다. 돈을 입금하고 시장에 다녀온다. 편의점에서 장난감을 훔쳤다고 오해받았을 때 알바생에게 도움을 받는다. 원래도 도둑질은 못 했고 시도라도 하면 땀이 팔을 타고 손에서 툭 떨어질 정도로 긴장한다. 머쓱함을 안고 받아낸 지폐에 웃으며 고맙다고 외친다거나, 쓰레기통에 골인하지 못한 캔 음료도 다시 주워 넣을 정도로 착하고, 여전히 수학 공부를 잊지 않을 정도로 성실하다. 하지만 엄마가 돌아오면 칭찬받고 싶어 일과를 다 꺼내는 들뜬 목소리나, 통화 내용에 귀 기울이며 눈치 보는 얼굴이 결국 이별 통보를 무던하게 받아들여야 하는 일찍 철든 어린이의 것으로 변한다.

어린아이의 길고 지난한 하루를 엿보는 일은 아주 진귀해서 아키라의 쉬지 않는 운동화와 금세 목덜미를 덮는 머리카락이 쉽게 눈에 들어온다. 아이를 주목하는 어른이 있다면, 외면하는 어른들도 있다. ‘걔 내 딸 아니다’가 마지막 인사인 아저씨나, 집세와 엄마의 유무만 묻고 가버린 집주인은 돌봄이 부재한 가정의 미래를 외면한다. ‘무관심’이 관심이 없는 상태나 태도를 뜻한다면 ‘외면’은 관심을 차단해 무관심의 상태로 만든다는 점에서 고의적이다. 고발할 수 있고 고발된 의도들.
그럼에도 아이들은 가장 먼저 지탄받았을 케이코를 고발하지 않는다. 제멋대로라고 비난해도, 와플 한 입과 더 활기차진 집 때문에 입꼬리는 쉽게 올라간다. 아무렴 오랜만에 돌아온 엄마가 반갑고, 다시 떠나간다고 하니 서운하다. 크리스마스 전까지는 돌아온다고 말했으니 크리스마스 케이크를 싸게 살 때까지 호호 입김을 불며 기다린다. 방바닥에 눌어붙은 엄마의 매니큐어를 손가락으로 훑어본다. 엄마 옷을 안고 옷장에 하루 종일 머문다. “내가 심한 말 해서 안 오시는 걸까”, 그 순간이 잊히지 않으면 오빠가 “그런 거 아냐”라고 말해준다.
라면을 먹기 전에 꼭 ‘잘 먹겠습니다’라고 말하는 주방 식탁이 있고, 맞은편에는 공 차는 소리를 들으며 빨래를 너는 베란다가 있다. 그 아늑한 집의 아키라는 길에서 낯익은 사람을 만나면 꾸벅 인사한다. 이름이 뭐냐고 꾸짖음 받을 때 도와준 알바생에게 시간이 흘러 본인 이름의 뜻을 알려준다. 새해니까 동생들에게 세뱃돈을 나눠준다. 케이코의 귀가가 언제일지 확신이 들지 않아 상처받았던 순간들이나, 네 아이들의 열기와, 오래된 부재중에도 멈추지 않고 흘러가는 삶, 어디론가 계속 흘러가는 물줄기를 보던 시간이 그 집의 계절을 빼곡히 채운다.


“아키라네 아빠는 하네다에서 일했었어. 비행기가 무지무지 많이 날아다니는 곳.
아빠 만나러 갔던 거 기억해? 모노레일 타고 하네다 공항 갔었잖아. 잊어버렸어?”
“응.”
유일하게 외출이 허락된 아키라는 새해니까 예외적으로 유키를 데리고 나가 ‘아폴로 쵸코’를 사 먹는다. 밤늦게 집에 돌아가던 길에 모노레일이 빠르게 눈앞을 지나가는데, 그 일상의 순간들이 가끔 선뜩하고 생경하다. 아키라가 마주치는 세상은 장 보러 나가면서 시작해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끝나고는 해서, 배웅과 마중의 상대는 늘 집이다. 집에만 머무는 동생에게 아키라는 자신이 보는 세상을 알려주고 싶다. 그래서 “나중에 비행기 보러 가자”고, 더 큰 세상을 동생에게 약속한다.
깨끗했던 나이키 신발이 얼룩져가는 동안 잎사귀 향기가 나던 다다미도 다 먹은 음식 포장지에 덮여간다. 203호가 그렇게 은폐되어 가는 동안 아이들은 여전히 집의 공기를 호흡한다. 머리는 덥수룩해도 중학생 친구를 만날 때는 옷도 신경 쓰고 공원에서 머리도 감는다. 달라진 게 있다면 엄마가 언제 돌아오냐는 질문에 ‘다음 주’가 아니라 돌아오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 그 말 뒤에 ‘아마도’를 덧붙이는 건 언제든 돌아올 수 있도록 마련해 두는 자리 같은 것. 놓을 수 없는 희망 같은 것.

“이제 안녕이야?”
야구신발과 야구복을 입고 공을 따라 힘차게 뛰다 집으로 돌아온 날, 유키가 의자에서 떨어진 후로 깨어나지 않는다. 좋아하던 곰돌이 슬리퍼를 신고 토끼 인형과 함께 분홍색 캐리어에 담긴다. 비행기를 보여주겠다고 약속했으니까, 아키라는 공항에 찾아가고 유키를 묻기 위해 한밤중에 흙을 판다. 흙을 퍼담는 덜덜 떠는 손이 다른 이의 손에 붙잡히니 움직임을 멈춘다. 그 맞잡은 손이 다시 집으로 돌아간다.
우리 집
아키라는 다음 날도 폐기되는 음식을 받고 고맙다는 말을 잊지 않는다. 동생들을 만나 물을 채우고 신호를 기다리며 집까지 걸어간다. 비행기 소리가 크게 들리면 하늘을 쳐다보고 시게루가 소매를 잡아당기면 아래를 내려다본다. 전화기에서 동전을 발견한 날이니 운이 좋고 집까지 뛰어갈 기력이 있으니 웃는다. 좋아하는 것, 꿈꾸는 것, 먹고 싶은 것, 가위바위보 할 때 처음엔 뭘 내는지, 어떤 상황에서 허술하게 속마음을 내비치는지가 훨씬 더 중요하다.



동네 편의점에는 몰래 유통기한 지난 음식을 전달해 주는 직원이 있고 놀러 오는 중학생 친구가 있다. 그 집에서 아이들은 뜨거운 여름날의 더위를 조용히 견뎌내고 배고픔에 굶주려 삼킬 수 없는 종이를 질겅질겅 씹어먹는다. 컵라면에 담긴 열매들이 가득한 그 집은 유키의 장례식이 이루어지는 공간, 네 남매가 떨어지지 않고 같이 살 수 있는 집이다. 아키라는 문을 잠그지 않고 살짝 열어둔다. 언제든 돌아올 수 있는 집이라는 것처럼.
이 영화를 처음 보았을 때 생각을 주저하게 되었다. 곧이어 나는 이 영화에 대해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어”가 아닌 “어떤 말도 꺼낼 수 없어”라고 말했다. 나약한 통각만으로 자위하면서 보편의 문제로 이 사건을 마무리한다면 나는 죄인이다. 나는 때가 묻은 손의 고통도 여러 번 오해했고 웃음의 소리도 명징하게 듣지 못한다. 불특정한 가책과 죄의식을 느낀다면, 그것이 관객이 향유할 수 있는 최대한이다. 이 영화가 해낸 점이라면 보는 사람에게 자신이 얼마나 무력한지를 깨닫게 한다는 것이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키라가 길에서 주운 공 하나만으로 즐겁게 웃는 걸 보며 야구를 좋아할 거라는 추측이나, 피아노를 사기 위해 모으던 세뱃돈을 편의점에서 다 써버렸는데도 행복해하는 쿄코가 다정한 언니일 거라는 상상이다. 컵라면 용기에 흙과 주운 열매를 채워서 베란다를 가득 채운 시게루는 마실 물을 가득 끼얹어줄 정도로 식물 가꾸기를 좋아한다. 유키는 살색 크레파스를 먼저 칠하고 엄마에겐 파마머리와 빨간 원피스를 입혀준다. 그 네 아이가 사는 집의 풍경을 기억하는 게 나의 의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