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씨 표류기, 🏝 무인도에서 한 턴 쉬어가세요 🏝

이해준, 〈김씨 표류기〉

〈김씨 표류기〉는 서울 한복판에 표류하는 두 사람, 김씨들의 이야기다. 자살을 시도하다 밤섬에 갇혀버린 남자 김씨와, 방 안에 꽁꽁 숨어 틀어박힌 여자 김씨. 이들이 복잡한 사회 속 자신만의 섬에서 생존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김씨들의 이야기면서 현대인들의 이야기이기도 한 〈김씨 표류기〉로 들어가보자.

🏝 무인도에서 한 턴 쉬어가세요 🏝

소시민으로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종종 국가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 보곤 한다. 그리고 비슷한 처지의 친구들과 현실을 냉소하며 우스갯소리로 이런 말을 주고받는다. 국가가 있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나는 무정부주의자라고. 국가가 보호하는 국민에게 포함되어 있지 않은 것 같다 느낄 때면 이 바쁜 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나’라는 존재가 이질적으로 느껴진다. 〈김씨 표류기〉 속 김씨들은 이런 부류의 사람들이다.

 

김씨

 

남자 김씨, 그리고 여자 김씨. 엔딩크레딧에 김성근, 김정연 대신 올라가는 이 이름들이 눈에 띈다. 〈김씨 표류기〉에서 김씨가 가지고 있는 의미는 무엇일까. 김씨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하는 성씨다. 2015년 기준 20%가 넘는 인구가 김씨 성을 가지고 살아간다. 이런 ‘김金’은 캐릭터들에게 평범함과 보편성을 부여한다. 어지러운 사회 속 가장 흔하면서도, 그렇기에 오히려 소외되기도 쉬운 한 현대인을 나타낸다.

이렇게 소외되던 이들이 마지막에 ‘김씨’가 아닌 자신의 이름 석 자를 찾아가기 시작했다는 사실은 주목할 만하다. 사회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거짓으로 무장한 채 외딴섬으로 숨어 들어가던 여자 김씨는 마침내 남자 김씨의 ‘WHO ARE YOU?’에 김정연, 자신의 이름을 내뱉었다. 그리고 다시 한번 쫓겨나 희망을 잃어버린 남자 김씨에게도 이름을 되찾을 기회를 건넨다. 

“마이 네임 이즈 김정연. 후 아 유?”

표류기

 

여자 김씨의 방은 남자 김씨의 섬과 같다. 남자 김씨의 섬이 망망대해의 무인도가 아니라 어지럽게 돌아가는 서울 한복판에 있다는 점은 여자 김씨의 방이 창문만 열어도 햇빛이 내리는 밖으로 나갈 수 있다는 점과 비슷하다. 이들은 사회로부터 고립된 동시에 자기 자신을 고립시킨다. 벗어날 수 있음에도 벗어나지 않는다. 누구나 볼 수 있지만, 무심코 지나친다. 방문 앞에 차려진 진수성찬에도 불구하고 여자 김씨는 가족조차 만나지 않고, 살려달라 발버둥 치는 남자 김씨의 모습은 누군가에게 그저 유람선을 타다 볼 수 있는 관광의 일환이다.

 

이들은 외딴섬에 도달하기 전부터 표류하고 있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2억의 빚, 죽으려 해도 죽지 못하는 몸뚱이, 위급할 때 연락할 수 있는 이가 전 여자친구밖에 없는 상황. 얼굴의 흉터, 엠보싱, 전교 따, 자퇴.

그러나 우리의 동정이 무색하게 김씨들의 하루는 생각보다 안정적이다. 남자 김씨는 도시의 압박에서 벗어나 자급자족의 삶을 꾸려냈고, 여자 김씨는 아침은 172칼로리, 만보계 숫자 3000, 점심은 525칼로리, 만보계 6000. 엄연한 규칙이 있다.

 

이처럼 ‘혼자’ 잘 살고 있던 김씨들의 삶은 서로에 의해 흐트러진다. 일 년에 두 번 평화로운 밖을 구경하는 낙으로 햇빛을 충전하는 여자 김씨는, 모두가 멈춘 시간에 고래고래 소리치는 남자 김씨를 발견했다. 남자 김씨는 아무도 그를 보지 못한다는 생각에 자유롭게 살아가던 어느 날, 떠내려온 병 속 작은 쪽지를 발견했다.

 

희망 소매 가격

표류하는 이들을 살게끔 하는 것은 그다지 거창하지 않다. 바닥에 버려진 짜장라면 봉지 속 라면 스프 하나가 남자 김씨의 희망이다. 오로지 짜장면을 먹겠다는 일념으로 씨를 찾아다니고, 밭을 일구고, 옥수수를 틔운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하는 남자 김씨가 여자 김씨의 희망이다. 남자 김씨에게 쪽지를 붙이기 위해 밖으로 나서고, 짜장면을 시킨다. 이렇게 실낱같은 희망을 붙잡고 삶을 영위한다.

 

희망을 지키기 위한 나름의 규칙도 있다. 남자 김씨는 여자 김씨가 보낸 짜장면을 받지도 않고, 배달원을 따라 섬 밖으로 나서지도 않았다. 자신만의 짜장면을 완성할 그날을 위해 단무지 정도만 챙겼을 뿐이다. 여자 김씨는 자신이 짜장면을 전해줄 수 있었음에도 직접 남자 김씨를 만나러 가지 않았다. 멀리서 지켜보며 함께 옥수수를 키울 뿐이다. 서로 거리를 지키면서, 응원하고 응원받으며 그렇게 희망을 키워나간다.

 

하지만 얇고 어린 희망은 숨어버리기도, 끊어지기도 쉽다. 여자 김씨는 남자 김씨의 물음에 걷었던 커튼을 다시 쳐버렸다. 희망을 키우느라 오랜만에 접속한 그만의 가상 세계에는 김씨가 감당하기 어려운 태풍이 일었다. 그리고 동시에 여자 김씨의 답을 기다리던 남자 김씨의 섬에도 한바탕 태풍이 찾아왔다.

 

태풍은 그들이 찾은 안정을 헤집어 놓고 파괴해 버린다. 오리는 떠나가 버렸고, 옥수수는 쓰러졌다. 여자 김씨는 다시 벽장 속으로 들어가 버렸고, 남자 김씨는 공권력에 의해 섬 밖으로 쫓겨났다. 다시금 사회로 내던져진 김씨들에게 어떤 희망이 남아있을까.

남들은 다 참고 사는데 왜 너만 그러냐?’ 몇 년 전 은둔형 외톨이를 다룬 BBC 코리아의 뉴스에 나온 인터뷰이가 들었던 말이다. 세상은 청년들의 소외와 고립을 개인의 탓으로 돌리곤 한다. 잠시의 쉴 틈도 없이 압박하는 사회는 청년들의 이탈을 촉발하고, 모두 그렇게 살아간다며 개인의 나약함을 꾸짖는다. 그리고 이들이 돌아온다고 해도 사회는 받아주지 않는다. 잠깐의 휴학에도 ‘무엇을 했냐’ 묻는 회사들이 오랜 휴식기를 마치고 돌아온 이들을 반길 리 만무하다.

 

컴퓨터 앞에 앉아 타인을 사칭하고, 가상의 인물을 만들어 내고. 환경 보호구역에서 생물을 잡아먹고, 마음대로 농사를 짓고. 모두 김씨들이 잘못한 일임에도 편을 들어주고 싶은 건 그들이 살아갈 곳을 만들어 주지 않으면서 개인만을 꾸짖는 사회에 대한 반발 때문일 테다. 자연에 동화되어 살아가던 남자 김씨를 다시 척박한 아스팔트 위에 던져놓은 이들이나, 다시금 여자 김씨의 아픈 기억을 건드리는 이들에게 ‘꼭 그랬어야만 했나?’ 하는 원망 섞인 물음을 던지고 싶어진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사회가 안식처를 헤쳐놓은 일은 오히려 그들이 새로운 안식처와 기댈 곳을 찾아가게 될 계기가 되었다. ‘태풍’이 아니었다면 남자 김씨와 여자 김씨는 그들만의 섬에 머무를 뿐 서로를 마주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김성근과 김정연은 다시 한번 사회로 내디뎠다. ‘무인도에서 한 턴 쉬어가세요.’를 거쳐, 다시 새로운 주사위를 돌리고 전진할 때인 것이다.

 

조금 더 단단해진 마음으로 밖으로 나선 이들을 사회는 망치지 말고 도와줘야 하지 않겠는가. 삶의 끝으로 향하는 버스를 멈춰 세운 국가의 사이렌 소리가, 이제는 그들을 보호하겠다는 다짐이기를 바란다.

230824_유안 보냄.

“김씨 표류기, 🏝 무인도에서 한 턴 쉬어가세요 🏝”의 2개의 댓글

  1. 아주 오래 전에 봤던 영화인데 이번 여담을 통해 오랜만에 떠올리게 되었어요. 그때의 저는 여자 주인공 또한 표류하는 김씨라는 생각을 하지 못할 정도로 어렸던 것 같아요. 영화의 연출을 보면서 당시 느꼈던 남자 김씨의 이색적인 하루가 주는 즐거움, 여자 김씨의 은둔 생활이 주던 약간의 공포 같은 것들이 생생하게 생각났어요. 그 상반되었던 두 감정이 여담을 읽으며 서로 자연스럽게 대조되면서, 이렇게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야 영화가 말하려던 것이 무엇이었는지를 이해하게 되었네요. 감사합니다, 여담

  2. 정말 어릴 때 티비에서 우연히 보았던 영화인데, 그 당시엔 이해는 못했지만 눈은 쉼 없이 화면을 들여다 본 기억이 나네요. 시대를 앞서간 명작을 다시 상기 시켜주셔서 감사합니다ㅎㅎ
    꼭 한번 영화관 스크린으로 보고싶네요. 좋은 글 항상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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