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우릴 막으리, 🎸 우리는 그저 허구의 인물일 뿐 🎸

호나스 트루에바, 〈누가 우릴 막으리〉

〈누가 우릴 막으리〉는 21세기 초입에 태어나 곧 성인이 되는 스페인 청소년들의 삶의 초상이다. 2019년 첫 투표를 하고 팬데믹을 겪는 젊은 십대들은 역동적이고, 불안하고, 적극적이고, 회의적이고, 감각적이다. 이들이 말하는 사랑, 우정, 유머, 미래, 정치, 교육은 우리에게 세대에 대한 인식을 넘어선 영감을 준다. 이것은 청소년에 대한, 영화에 대한, 우리에 대한 이야기이다.

🎸 우리는 그저 허구의 인물일 뿐 🎸

📣 QUIÉN LO IMPIDE – NADIE LO IMPIDE CLIP

가장 자신감 넘치지만 동시에 불안에 잠식되기도 쉬운 시기. 언뜻 자유로워 보이지만 사실은 사회에, 학교에, 어른들의 억압에 짓눌린 시기. 더 큰 세상으로 나아가기 위해 지나는, 가장 중요하다고 여겨지는 시기. 줄곧 아름다운 청춘으로 포장되지만 종종 불편한 충돌이 발생하고 돌이켜보면 수치스러운 부분들로 가득한 시기.

좋은 소식이 있어서 불렀어. 영화가 드디어 완성됐어.

(환호)

영화는 몇 분이에요?

좋은 질문이야. 영화는 3시간 30분이야.

관객은 어떡해요?

조각조각 나눠진 ‘줌 미팅‘ 화면 속 오랜만에 만난 듯한 청소년들이 서로의 안부를 묻는다. 이내 호나스 트루에바 감독이 등장해 인사를 나누고, 장장 5년에 걸친 영화 제작이 완료되었다는 점을 언급하며 〈누가 우릴 막으리〉가 첫선을 보인다.

관객은 5분의 인터미션 두 번을 포함해 220분 동안 “몰입 체험”을 하게 된다. 1부에선 학교의 역할, 정치 세습, 국가의 미래 등에 대해 자유롭게 토론하는 청소년 개인들의 모습과, 어떤 영화를 만들고 싶은지에 대한 의견이 오가는 대화를 지켜본다. 2부에선 앞서 나눈 이야기를 바탕으로 만들어졌을 두 편의 사랑 이야기(카약을 타고 포르투갈 국경을 건너 가는 칸델라와 실비오의 짧은 일탈, 무리에 잘 섞이지 못하는 파블로와 조심스럽게 가까워지는 로니의 학기말 여행)를 만난다. 소란스러운 음악 축제로 시작하는 3부에선 “누가 우릴 막으리”라고 외치듯 노래하는 청소년들이 첫 투표를 하고, 코로나 시기를 겪고, 성인이 되며 느낀 감상을 전해 듣는다.

트루에바 감독의 전작 〈재회〉(2016)에서 한차례 작업한 이력이 있는 칸델라, 파블로와 함께 시작된 이 프로젝트는, 마드리드의 학교, 공원 등의 청소년들을 만나며 영화의 방향성을 점점 다듬어갔다. 그러니까 무엇을 어떻게 찍어야 할지 확고히 계획한 다큐멘터리나 극영화가 아니라는 것이다. 청소년들의 일상적인 대화를 있는 그대로 포착하고 때로는 재현하면서, 픽션과 논픽션을 모호하게 오가며 스페인의 청소년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나는 너희가 연기한다고 생각하지 않으면 좋겠어.

최대한 너희 삶에 가깝게 다가가 봐.

우리가 관심 있는 건 바로 너희야.

존재하지 않는 허구의 인물이 아니라.

이 말로 시작된 〈누가 우릴 막으리〉는 스페인의 공공 영화 제작 워크숍에서 출발해, 어디로 튈지 모르는 5년의 여정을 지나, 청소년들의 일상과 그들이 바라보는 세상을 유동적으로 담아냈다. 세상을 있는 그대로 비추는 동시에 경험에 기반한 새로운 세상을 창조한 이 영화는 청소년에 관한 이야기이자 영화 제작에 관한 이야기이다. 영화라면 응당 가져야 할 단일한 주제의식보다 함께 하면서 나누는 감정과 철학, 오가는 대화, 토론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래서 이 영화는 무엇이든 될 수 있다. 2016년 중재 모임을 연출하는 첫 장면으로 되감아 보자. 두 명씩 짝을 지어 가상의 갈등 상황을 꾸며낸 학생들은 그 상황을 중재하기 위해 또 다른 학생들 앞에 앉는다. 꾸며낸 속마음을 털어놓는 연기가 조금은 어색할지라도 이야기를 들어주는 눈빛 등 중재에 임하는 태도는 아주 능숙하다. 그 이유는 이 학생들이 실제로 학교에서 중재 모임을 만들어 또래의 이야기를 들어 주고, 갈등을 해결하고자 돕기 때문이다.

토론도 마찬가지다. 이들은 학구적이고, 정치적이고, 결단력이 있고, 자신의 생각(그것이 누군가의 의견에 반하는 내용이더라도)을 공유하는 데에 거리낌이 없다. 국회에서 잠을 자는 정치인을 비판하고, 공부 외에 다른 것에 집중하지 못하도록 옥죄는 교육 제도를 지적한다. 극좌파 가정에서 자란 대부분의 학생들부터 자신이 보수 집안 출신임을 고백하는 학생까지, 저마다의 입장을 나누는 동시에 가족으로부터 세습되는 사상을 경계한다. 영화는 카메라 앞에서 자유롭게 의견을 펼치는 모습을 담으며 스페인이라는 국가의 미래와, 그곳에서 살아갈 청소년들의 ‘가능성’에 주목한다.

이렇게 촘촘히 쌓인 실제 청소년들의 일상이나 그들 각각의 개성은 영화 곳곳 허구적인 장면들에 반영되는데, 이는 2부에서 두드러지며 관객을 더욱 헷갈리게 만든다. 예컨대 칸델라와 실비오가 카약을 타고 포르투갈 국경을 건너는 낭만적인 장면은, 에스트레마두라에 있는 자신의 출신 마을을 부정적으로 이야기하는 칸델라와의 대화에서 출발한 즉흥적이고도 꼼꼼한 연출이었다.

모든 장면으로부터 역동적인 낭만이 전해지는 〈누가 우릴 막으리〉는 배우들과 학생들의 현실에 기반한 픽션을 드문드문 붙여낸다. 이를 통해 영화의 인물들은 화면 너머 허구의 캐릭터로 취급되지 않으면서, 동시에 특정한 주제를 뒷받침하기 위한 짧은 인터뷰 속 청소년으로 소비되지도 않는다.

언제 어떻게 끝날지 예측 불가능하게 흘러가던 영화는 작은 화면 속 칸델라의 이야기로 이어진다. 첫 투표를 돌아보며 당시엔 그 순간의 중요성을 잘 몰랐다고 고백하고, ‘지금의 모든 순간이 저 때와 연관되어 있음’을 말한다. 자신의 공연을 보며 반가워하기도, 조금은 부끄러워하기도 하던 그는 “굉장히 속상하네요”라는 감상과 함께 입을 뗀다.

왜 이렇게 됐을까요?

우리가 더 어른이 되고 더 우리다워지기 시작하는

아주 중요한 시기에 갑자기 모든 게 어려워졌어요.

한 세대를 제대로 형성할 수 있는 시기는 청소년기잖아요.

우리는 앞으로 세상을 이끌 세대인데

뭔가가 되어 보기도 전에

그 변화의 과정에서 발이 묶여 버린 거예요.

스페인은 유럽 국가 중에서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의 타격을 가장 크게 입은 나라였다. 1차 유행으로 3만 명 이상이 사망했고, 당시 매우 엄격한 봉쇄 조치를 도입하여 도시 경계를 벗어나는 것조차 불가능했다. 정치인들은 경제적 충격을 우려해 국경을 열고 관광객을 유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봉쇄 조치가 기본권 침해라며 정부의 방역 정책에 반대하는 시위가 곳곳에서 일어났다. 이동을 제한하려는 중앙정부와 이를 거부하는 지방 정부가 충돌했다. 그 모든 소란 사이에서 학생들은 공부도, 취직도, 여행도, 자기 계발도 못한 채 집 안에 갇혀 있어야만 했다.

복잡한 표정의 칸델라와 함께 마무리되는 영화는 청소년들이 세상에 첫선을 보이는 것과 작품이 관객에게 첫선을 보이는 것을 연결한다. 트루에바는 2016년에 〈누가 우릴 막으리〉 프로젝트를 시작했지만, 5년의 시간을 온전히 이 작업에만 쏟은 것은 아니었다. 중간에 촬영이 중단되기도 했고, 다른 영화 작업에 참여하기도 했으며, 다른 영화들과 동시에 촬영하기도 했다. 켜켜이 쌓인 푸티지들은 네 편의 영화가 되어 2018년 6월 20일 시네테카 마드리드(마타데로의 논픽션 영화 상영관)에서 상영되기도 했다.

청소년기의 생동을 기록하기 위해 시작한 작업은 5년의 시간을 거치며 트루에바에게도 새로운 의미로 피어났을 것이다. 영화 제작자로서, 카메라 버튼을 누르고부터 편집실에서 영화의 매듭을 짓기까지. 그리고 관객으로서, 생생한 증언과 경험을 목격하고 영화와 삶에서 놓친 것들을 읽어내기까지. 첫선을 보인다는 것은 수백 시간의 촬영과 수 년의 편집 기간을 끝맺는 씨앗을 내보이는 것이다. 마치 악몽 같은 2020년을 보냈을지라도 이를 세대의 정체성으로 받아들이고 2021년을, 2022년을 맞이하는 청소년들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