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물, 🐖 처음 느끼거나 맺은 💞

고레에다 히로카즈, 〈괴물〉

영화는 학교폭력 피해자 자녀를 둔 어머니에서 출발해 선생님을 지나 모든 것의 중심인, 그러나 가려졌던 아이들로 끝난다. 아이들이 자주 부르는 ‘괴물은 누구게’ 노랫말의 의미는 괴물 찾기에 집중하던 영화가 어느 지점에서 카메라를 뒤집는지 알아야 이해할 수 있다. 그제야 누구를 가리킬지 방황하던 손가락이 멈추고 ‘아이의 시선으로 세상을 비평하기’가 시작된다.

🐖 처음 느끼거나 맺은 💞

🎹 Aqua

“제 영화는 전반적으로 ‘상실을 그린다’라는 말을 듣지만, 저 자신은 ‘남겨진 사람들’을 그린다고 생각합니다.”

_ 고레에다 히로카즈, 『영화를 찍으며 생각한 것』 223쪽

죽음을 택한 배우자로부터 남겨진 아내(〈환상의 빛〉)를, 어른과 관심이 부재한 도시에 남겨진 네 남매(〈아무도 모른다〉) 등, 그동안 각자의 사정으로 남겨진 존재를 담은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이번에는 어떤 ‘남겨진 사람들’을 담았나. 사오리와 호리는 끝내 아이들을 찾으러 무너지는 산으로 들어갔고, 미나토와 요리는 비 갠 초록빛 풍경으로 내달렸다. 〈괴물〉의 인물들은 누군가에게 남겨지거나 빗물에 고여 있지 않고 서로를 향해 발을 바삐 움직였다. 그러니 남겨진 사람들은 영화 밖, 하나의 진실을 목도하고 만 관객이다. 너무 일찍 철들어버린 두 아이를, 그들이 쌓아 올린 관계를 바라보며 우리는 무엇으로부터 남겨졌나.

나는 아빠처럼은 될 수 없어

미나토는 사오리에게 남자다움(“남자는 꽃 이름을 몰라야 인기가 많다”), 가족이 안겨다 주는 행복(“가족은 최고의 보물”)에 관한 이야기를 들으며 정상성을 주입받는다. 제 또래 애들보다 과묵하고 성숙한 아이로 자란 것은 환경의 영향 때문이다. 엄마가 말하는 행복이 부담스러워지기 시작하면서 그는 점차 입을 다문다. 방문에 ‘들어오지 마시오’ 팻말을 걸어두며 방에 숨는 게 익숙해질 즈음, 찢어진 귀에 불안해하는 사오리 앞에서 호리 선생님 이야기를 꺼낸 것은 그리 갑작스러운 일이 아니다. ‘아빠’라는 행복을 이룰 수 없다는 좌절과 엄마에 대한 미안함, 그래도 멈출 수 없는 애정을 느끼는 마음이 멀쩡할 리 없다. 사랑의 열병에 혼란스러운 마음은 비단 교복을 입은 청소년뿐 아니라 작디작은 옷을 입은 유소년기에도 존재한다.

“잘은 모르겠지만 좋아하는 애가 있어요. 그걸 말할 수 없어서 거짓말을 했어요. 내가 행복해질 수 없다는 게 들통날까 봐 말할 수가 없었어요.”

“누구에게도 말 못할 일이라면 후- 불어. 후- 하고. 그런 생각 다 쓸데없어. 몇몇 사람만 가질 수 있는 건 행복이라 부르지 않아. 쓸데없는 생각이야. 누구나 가질 수 있는 걸 행복이라 부르는 거야.”

미나토의 말은 행복해지기 위해 거짓말했다는 말로 들린다. 그런 미나토에게 교장선생님은 나도 거짓말을 했다며 고백한다. 호리의 진실을 은폐하고 ‘학교를 위한 일’이라며 해명을 억압한 그는 또 어떤 거짓말로 교장의 위치를 지켜냈을까.

자꾸만 떠오르는 의문은 한둘이 아니다. 학교는 아이를 걱정해 찾아온 엄마를 왜 그렇게까지 죽은 눈으로 맞이했을까. 교장선생님이 한 거짓말의 내용에는 손녀도 있을까. 미나토의 옆자리에 앉은 여자아이는 왜 호리에게 고양이 이야기를 꺼냈을까. 화재는 정말 요리의 소행일까.

하지만 영화는 명확히 설명해 주지 않는다. 관객이 느끼는 영화의 모호한 태도는 아이가 세상에 느끼는 불가해함을 닮았다. 불륜을 저지르다 죽은 아빠를 진심으로 기리는 엄마와 아이의 등에 피멍이 생길 때까지 폭력을 행하는 어른, 알리기 꺼림칙한 건 숨기고 필요에 따라 선생 한 명쯤은 낭떠러지로 내몰 수 있는 학교. 그런데 미나토와 교장선생님이 자아내는 호른의 울림은 낭떠러지로 내몰린 호리를 구한다. 우연이었을까.

“그러고도 남자냐”라는 말을 장난스럽게 내뱉는 호리는 미나토와 닮았다. 호리가 연인에게 그랬듯 미나토도 엄마에게 “나는 불쌍하지 않아”라고 말하는데, 이는 편부모 가정에서 자란 두 사람이 공통된 두 가지의 콤플렉스, ‘남자다움’과 ‘불쌍하지 않음’을 항상 염두에 두고 사는 것을 보여준다. 호른 소리가 학교 전체에 퍼질 때에도 미나토와 호리는 동시간대 비슷한 상황에 놓인다. 아들이 창문 밖으로 떨어졌을까 봐 두려워하던 사오리가 안도감에 주저앉으면서 미나토는 타인의 눈에 자살의 가능성을 잠재한 아이로 포착된다. 학교 옥상에 올라간 호리도 자살하기 위해 올라간 이처럼 여겨진다.

그래서 아래를 내려다보던 호리의 고개를 들어 올리는 소리의 주인이 미나토라는 점은 다행이다. 해고당한 이후 학교로 찾아온 호리에게 미나토는 거짓말해서 미안하다고 작게 중얼거렸다. 호리의 자살을 막은 일은 마치 자신과 닮은 이를 구원한 것처럼 보인다. 이 장면 이후 3부로 전환되면서 호리 또한 미나토의 집으로 찾아가 네가 잘못한 건 없다며 미안하다고 소리친다. 두 번의 사과 모두 상대방에게 온전히 닿지 못했으나, 이후 두 사람은 어떤 식으로든 재회해 다시 한번 사과를 전했을거라 믿는다.

새로 태어나면 뭐가 돼

미나토와 요리의 만남은 벚꽃이 잔뜩 피어 길바닥을 메운 등굣길에서 시작된다. 걸어가다 중간중간 멈춰서 떨어진 벚꽃을 구경하는 뒷모습과 깜깜한 맨홀 아래 고양이를 상상하는 뒤통수, 잠자는 게 아까워 새벽 2시에 잠든다는 말까지. 가정폭력에 이어 동급생 남자애들에게도 괴롭힘을 당해 신발이 자주 벗겨지는 요리, 그 아이와 미나토는 음악실 창고에서 친구가 되었다. 몰래 가져온 과자를 나눠 먹은 일은 우리의 비밀, 둘이 친구가 된 것도 우리의 비밀, 요리가 아무렇지 않게 만지작댄 머리카락에 살짝 흠칫한 일은 미나토의 비밀이다.

앞서 심각했던 어른들의 이야기는 3부에서 잘 보이지 않는다. 오로지 서로에게 집중해 빠르게 가까워진 아이들은 어른의 개입에서 벗어나 버려진 전차에 자신들의 놀이터를 구축한다. 그림을 그리며 괴물 놀이에 열중하다가 자기 얼굴만 한 나뭇잎을 들고 풀밭을 거닌다. 몸은 작고 동작은 크다. 정적은 간지럽고 말소리는 소중하다. 아이들의 소통 방법과 관계를 쌓아 올리는 능력은 서로가 전부라고 느낄 수 있는 시기와 맞물려 강력하다.

서로의 관계를 숨기는 교실 안과 다르게 학교 밖은 미안함에 신발 한 짝을 건네는 화해의 공간으로 그려진다. 물감을 묻혀가며 몸싸움을 나눈 것도 잠시, 미나토는 요리의 집으로 달려가 문을 두들기고 요리는 아빠 때문에 거짓말을 했다며 문을 박차고 나온다. 누군가 주시하지 않는다고 느낄 때면 서로에게 거리낌 없어진다. 다른 여자와 온천을 가다 사고로 죽은 아빠의 이야기를 꺼내는 미나토. 그리고 화재를 일으킨 게 너냐는 질문에 술은 몸에 좋지 않다는 요리의 대답. 각자의 비밀을 공유하는 산 속에서 아이들은 자유롭다.

태풍이 치는 밤, 카메라는 요리를 괴롭히던 남자아이의 가족과 요리의 아빠, 그리고 교장선생님을 차례로 잡는다. 누군가에게 가해자였던 사람들은 그 장면을 끝으로 다시 등장하지 않는다. 태풍이 많은 것을 쓸어간 자리에는 무엇이 남았고 누가 다시 등장하는가. 빛바랜 선로를 가만히 응시하는 줄 알았지만, 사실 아이들은 건너편을 넘어가 보고 싶었다. 입구를 봉쇄하던 철문이 바람에 날아가고 아이들은 처음으로 맘껏 소리치며 그 땅을 밟는다. 영화 밖의 관객이 목도한 진실은 언젠가 편린으로 남아 삶을 지탱해 줄 첫사랑에 대한 기억같은 것들이다.

“우리 새로 태어난 걸까?”

“그런 건 없는 것 같아. 그냥 그대로야.”

“그래? 다행이다.”

〈괴물〉의 마지막을 보며 오늘날 이 사랑은 지속될 수 있을까 생각했다. 사오리와 호리가 흙에 가려지는 차창을 닦아내며 멈추지 않고 아이들의 이름을 불렀던 노력만큼 지켜봐주는 어른들이 있다면 계속될 수 있다. 호리는 요리의 숙제에 적힌 ‘무기노 미나토’와 ‘호시카와 요리’를 가리키는, 좌우가 반전된 글자를 보고 진실을 찾아냈다. 그러니 좌우를 바꿔 쓰지 않고 본래의 모양을 갖추더라도 괜찮은 첫사랑이어야 한다. 그냥 그대로여도 다행이어야 한다.

한 차례의 성장통을 넘긴 두 아이와 그들을 보호해 나갈 어른들을 끝으로 영화는 막을 내렸다. 이제 이를 잇는 건 언제나처럼 남겨진 우리의 몫이다.

240118_수연 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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욤

2024년 01월 19일 / 1:56 오후

영화 〈괴물〉을 8번이나 보면서 언제 여담이 괴물을 다뤄줄까 오매불망 기다리고 있었어요! (자랑인데 무대인사도 다녀왔답니다✌️)

저는 영화를 처음 한 두번 봤을 때에는 아이들의 사랑이 너무 소중했었는데 여러번 보다보니 어른들이 느끼는 감정 변화가 인상적이더라구요. 괴물을 부정적으로 봤던 사람들의 의견 대다수는 호리가 너무 불쌍하다. 교장선생님은 너무 이상하다~ 였는데요..저는 오히려 호리는 마지막에 미나토를 향해 틀리지 않았다고 말함으로써, 호리 자신 역시도 더 이상 스스로를 부정하거아 교정하지 않아도 되는 일종의 구원(?)을 받지 않았나 싶어요! 그리고 교장 선생님도 결국 마지막 태풍 속에서 미나토가 요리를 향해 달려가는 걸 보고 자살을 멈춘다는 것이 너무 인상적이었어요. 교장선생님도 미나토와 요리를 통해 새로운 삶을 얻은 거겠죠!

이번 여담의 “사오리와 호리가 흙에 가려지는 차창을 닦아내며 멈추지 않고 아이들의 이름을 불렀던 노력만큼 지켜봐주는 어른들이 있다면 계속될 수 있다.“ 라는 말처럼, 그저 그대로 살아있기만을 간절히 바라는 사람들로 가득찬 세상이라면 어떤 사랑이든, 어떤 사람이든 행복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정말 좋은 영화였고, 감동적인 여담이었어요💚💚

답글

원

2024년 01월 21일 / 11:17 오전

저도 이 영화를 재밌게 봐서 이번 여담이 기대됐어요. 영화를 보면서 여러 요소들이 나오지만 연관관계를 잘 생각하지 못 해서 아쉬웠는데, 이번 레터를 보면서 중간중간 연결하지 못했던 요소들을 이어주셔서 한 번 더 생각하게 되는 계기가 될 수 있었습니다. 좋아하는 영화에 대해 친구와 이야기하는 기분이라 읽는 내내 즐거웠어요! 앞으로도 다양한 영화들을 다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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