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러 퍼플, 🪻 보라색의 꽃말은 🪻

한편 스필버그는 ‘이 영화는 흑인 감독이 맡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처음에는 감독 제안을 거듭 거절했다고 한다. 그러나 스필버그를 움직인 건 ‘당신이 〈E.T.〉를 만들 때 외계인일 필요가 없었다’는 흑인 제작자 퀸시 존스의 설득이었다. 물론 이런 퀸시의 말도 일리가 있다. 하지만 흑인 여성은 외계인이 아니고, 앨리스 워커의 소설 역시 완전한 상상의 영역이 아니다. 흑인도, 여성도, 흑인 여성도, 앨리스 워커도, 어쩌면 셀리도, 모두 그 시대를 직접 겪어온 이들이자 그 후손이다. 그렇기에 그 공동의 기억 바깥에 존재하는 스필버그는 비판을 피해 갈 수 없다.

특히 영화가 아프리카를 묘사하는 방식에 아쉬움이 남는다. 밀린 네티의 편지를 읽게된 셀리는 이 모두를 숨겨놓았던 미스터에 대한 분노를 참을 수 없어진다. 그를 향한 적 없던 면도칼은 날카롭게 세워지고, 그런 셀리의 모습과 교차되는 건 아프리카 한 부족의 전통 의식이다. 이 장면은 셀리의 정체성을 일깨우며 강조하는 역할도 하지만, 아프리카를 전근대적인 신비의 공간으로만 여기는 서구의 시각이 담겨 있기도 하다. 셀리가 살의를 느낄 때만 이런 묘사가 이루어진다는 것 역시 의문을 던지게 되는 부분이다.

그가 보인 조심성도 영화의 한계가 됐다. 영화 촬영 당시 앨리스 워커는 촬영장에 자주 방문했고, 스필버그는 한 씬이 끝날 때마다 워커의 반응을 살폈다고 한다. 비록 워커는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지만, 스필버그는 워커의 깊고 따뜻한 눈에서 확신을 느꼈다고 말했다. 그의 노력이 드러나듯 〈컬러 퍼플〉은 마치 소설이 눈 앞에 펼쳐지는 것처럼 기본적인 묘사가 원작에 충실하다. 그러나 소설과 영화의 서술 방식은 다를 수밖에 없다. 〈컬러 퍼플〉은 영화를 위한 플롯을 구성하기보다는 원작 스토리의 흐름을 그대로 따라가기에 바쁘고, 따라서 중요한 사건들만 피상적으로 묘사됨과 동시에 이외의 것들은 생략되면서 인물들의 미묘한 정서와 연대는 숨어버렸다. 

예를 들어 영화에서도 슈그와 셀리의 복잡하고 미묘한 관계성을 표현하고 있지만, 그들의 성애적 사랑과 우정의 연대를 넘나드는 감정은 충분히 묘사되지 못한다. 미스터가 숨겨둔 네티의 편지를 얻어내기 위해 미스터에게 애정을 연기하는 소설 속 슈그의 모습은 셀리를 향한 사랑을 담고 있다. 그러나 영화에서는 우연히 발견한 편지를 계기로 미스터가 자리를 비운 틈을 타 편지꾸러미를 찾아내는 데 그친다. 여기서 강조되는 감정은 사랑이 아닌, 미스터가 돌아오기 전에 찾아야 편지를 찾아야 한다는 긴박함이다. 중요한 사건을 위해 축약될 수밖에 없는 디테일에 슈그의 감정은 제대로 드러나지 못하게 된다. 이는 셀리 역시 마찬가지다. 영화만 본 관객이라면 셀리에게 슈그가 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유일한 사랑이었음을 깨닫기는 어려울 것이다.

삐약이 메리 아그네스도 아쉬움을 남기는 인물이다. 하포의 수동적인 삐약이 여자친구에서 노래하는 메리 아그네스가 되기까지의 과정은 단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슈그를 보며 꿈을 키우고, 주변의 방해에도 불구하고 꿋꿋이, 소피아를 돕다가 백인에게 폭력을 당해도 삐약이는 포기하지 않았다. 복잡하게 쌓여온 과정에 마침내 삐약이가 아닌 자신의 이름 ‘메리 아그네스’를 내뱉었지만, 영화에서는 이 모든 과정이 생략된 채 혼란스러운 식탁의 한복판으로 이어질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