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은 참 신기한 계절입니다. 뜨겁게 내리쬐는 햇빛에, 주룩주룩 흐르는 땀에, 찜통에 들어와 있는 게 아닐까? 하고 느끼게 만드는 습기. 또 그칠 줄 모르고 내리는 장마는 왜인지 모를 우울함을 가져오기도 합니다. 하지만 여름이 지나가고 나면 그 모든 것들을 다 잊은 양 금세 그 뜨거운 계절이 그리워져요. 이런 우리의 그리움에는 여름을 아름답게 만들어주는 영화들의 역할도 크리라 생각합니다.
여름하면 떠오르는 많은 영화가 있죠. 우리는 여름 영화를 통해 수많은 나라의 각기 다른 여름을 엿볼 수 있습니다. 저는 여름 하면 특히 일본 영화들이 떠올라요. 〈바닷마을 다이어리〉처럼 잔잔하고 맑은 영화도 떠오르고, 〈분노〉같이 끈적하고 땀에 젖어 찝찝한 영화도 떠오르네요. 이런 많은 영화 가운데 오늘은 비의 계절이 다가오면 생각나는 〈지금, 만나러 갑니다〉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합니다.
타쿠미와 미오, 유우지의 인연은 마치 톱니바퀴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이오 가족의 모든 만남은 맞물려 돌아가고 있어요. 타쿠미와 미오는 두 사람의 관계가 각자의 일방적인 사랑으로부터 시작되었다고 생각하고 있었죠. 하지만 두 사람의 만남은 서로의 노력으로부터 나온 결과입니다.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던 조그마한 부분들까지도 서로의 선택과 다짐을 통해 달성된 것이지요.
타쿠미와 미오의 운명에는 빠진 부품이 없습니다. 미오가 다시 돌아온 것도 아이오 가족의 잠시 멈춰진 운명이라는 기계를 돌리기 위한 하나의 톱니바퀴 같다고 느껴졌습니다. 미오는 꿈같은 만남을 통해, 타쿠미는 미오의 다이어리를 통해 서로의 이야기를 모두 알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타쿠미와 미오가 서로를 더 사랑하게 만들어 주었죠. 미오는 그 꿈 같은 경험으로 자신의 미래를 알면서도 다시 한번 타쿠미와 유우지를 만나러 가는 선택을 하기도 합니다. 이 미오의 선택이 바로 아이오 가족의 운명을 돌아가게 하는 마지막 부품이 아닐까요?
미오와의 기적 같은 만남은 유우지에게도 큰 의미입니다. 사실 떠나기 전의 미오는 유우지와의 재회를 알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미오는 유우지가 자신 없이도 앞으로의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많은 것들을 남기고 가지요. 첫 번째 이별과 두 번째 이별 모두에서요. 미오가 첫 번째 이별에서 남겨준 동화책은 유우지에게 엄마와의 재회를 알려주는 역할이기도 했지만, 새로운 세상에 떨어진 미오에게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알려주는 역할이기도 하죠. 비의 계절에 돌아온 미오는 동화책을 통해 자신이 다시 떠나야 함을 알고 유우지와의 두 번째 이별을 준비합니다. 유우지에게 계란프라이를 하는 방법을 가르쳐주기도 하고, 10년 후의 유우지의 생일 케이크를 미리 준비하기도 하면서요.
마지막에 영화는 미오가 미리 준비한 생일케이크의 마지막 촛불을 끄는 날로 돌아옵니다. 타쿠미는 유우지의 생일선물로 미오의 다이어리를 전해줍니다. 아마 엔딩크레딧이 올라간 후의 유우지는 모든 일을 알게 되었겠지요? 이 기적 같은 만남들 속에서 모든 톱니바퀴를 알게 된 유우지는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요? 또 이는 앞으로의 유우지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까요. 저는 이상하게도 우리는 미처 알 수 없는 유우지의 미래가 궁금해집니다.
저는 비를 싫어하는 사람이에요. 하지만 이 영화를 생각하면 그렇게 싫어하던 장마가 기다려지고 그리워지기도 합니다. 장마가 오는 날에 이 영화를 보면 그 속의 감정들이 더 와닿는 것 같아요. 그리운 사람이 있다면 더더욱 그렇고요. 저에게 〈지금, 만나러 갑니다〉는 운명 같은 사랑의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는 방법에 대해 생각해보게끔 만들어준 영화이기도 합니다. 타쿠미와 유우지는 미오가 떠날 것을 알고 있었지만, 처음 그를 떠나보냈을 때는 제대로 이별하지 못했어요. 미오가 다시 찾아온 것은 필연임과 동시에 타쿠미와 유우지에게 제대로 된 이별을 고하기 위함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저 역시도 잠깐 넋을 놓으면 금세 찾아와 그리움에 사무치게 하는 소중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가끔은 그리움에 밤잠을 설치기도 해요. 아마 제가 제대로 된 이별을 아직 하지 못한 탓일지 몰라요. 이런 저에게 아카이브별은 큰 위로입니다. 그리움을 뒤로 한 채, 비의 계절에 나에게도 기적이 일어나지 않을까 하는 환상을 가지고 일상으로 돌아가게끔 만드는 역할을 하고 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