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 🍎 기억하겠다는 낯선 다짐 🍎

기억이라는 게 그렇게 특별한 것이 아닌데. 나의 삶을 구성하는 것은 사과를 한 입 베어 무는 것인데. 기억과 망각, 상실과 시작 사이엔 건너지 못할 커다란 강이 있는 것이 아니다. 그 틈은 얇은 사과 껍질과도 같다. 기억하고자 하면 기억하고, 잊고자 하면 잊게 된다. 상실한 무언가(혹은 누군가)는 잊기로 선택하지 않는 한 내 기억 속에 여전히 살아 있다. 그렇게 상실을 기억하고 도려낸 상처를 받아들일 때 비로소 또 다른 기억이 시작된다. 이제 남은 건 그 기억을 어떤 방식-덮어쓰기 혹은 새 문서 작성하기-으로 보관할지 결정하는 것이다. 어쨌든 그 모든 선택과 받아들임은 나의 몫, 우리의 숙제이다.

아내의 죽음을 부정하고 자신의 기억을 통째로 도려냈던 알리스는 다시 135번지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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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일기를 다시 쓰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애플의 아이패드를 구매한 이후로 멈췄던 ‘종이에 글을 적는 행위’를 다시 시작했다는 뜻이다.

방 안에 고립되어 혼자 남은 적막을 즐기고 있(다고 착각했)을 때, 이런 생각이 들었다. 삭제 버튼 하나로 지워지는 기록들엔 의미가 없다. 그건 기록이 아니지. 저장된 데이터에 불과하다. 아무 의미 없는 SNS 피드를 내리다가 나를 둘러싼 것들이, 살아 있는 순간이 아닌 깜빡이는 데이터임을 인지했을 때 비로소 전원을 끈다. 화면이 꺼지면 공기가 가라앉는다.

살아오며 마주한 수많은 순간들을 떠올려 본다. 개중에서도 너무 즐거워서, 혹은 너무 슬퍼서 소중하게 보관 중인 추억을 꺼내는 중이다. 손이 자연스레 휴대폰의 사진첩, 애플의 아이클라우드로 향한다. 소중한 순간을 마주했을 때 나의 태도는 어떠했는가. 휴대폰 카메라를 집어 드는 우리의 모습을 지나고 나서 곰곰이 생각해 보자. 그 순간 내가 보고 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실재였나, 현상을 본뜬 유리판이었나.

〈애플〉에서 자판기처럼 부여되는 미션에 데이터로 저장된 나의 기억들을 맞댄다. 사진을 찍어 기억을 보관한 줄 알았으나 가장 중요한 순간은 그때에 두고 환영만 챙긴 오류를 돌이킨다. 사람을 구성하는 것이 고유의 기억들이라면. 부서져 사라질 기억들이 날 구성해도 좋은 걸까. 종이 위에 영원토록 남아 일렁일 글자들이야말로 날 받쳐줄 만한 힘을 가진 게 아닐까. 어설프게 ‘반짝반짝 작은 별’을 연주하는 남자나, 자신도 모르게 ‘Sealed with a kiss’를 흥얼거리는 알리스로부터 새어 나오는 여유롭고 단단한 힘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