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를 지켜라!, 👽 도와줘요! 지구 방위대! 👽

장준환, 〈지구를 지켜라!〉

〈지구를 지켜라!〉의 주인공 병구는 여자친구인 순이와 함께 외계인을 물리쳐야 한다는 사명으로 강만식 사장을 납치하고 고문한다. 형사들은 강 사장을 찾기 위해 수사를 시작하고, 탐욕에 눈멀어 헛다리만 짚는 이반장과 부하들 너머로 추 형사와 김 형사는 병구에게 점점 수사망을 좁혀간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과연 병구는 외계인을 무찌르고 지구를 지켜낼 수 있을까?

👽 도와줘요! 지구 방위대! 👽

세상에는 다양한 영화들이 있다. 가슴 졸이게 만드는 액션 블록버스터, 눈물 흐르게 만드는 휴먼드라마, 사랑을 꿈꾸게 만드는 로맨틱 코미디와 멜로 등. 그리고 이런 영화들과 반대되게 막장, 서브컬쳐, 일반과는 다르다고 일컫는 정서의 영화, 저예산 영화 등을 우리는 대개 B급 영화라고 부른다. 나는 이런 ‘골 때리는 영화’들을 좋아하는 편이다. 영화를 볼 때는 깔깔 웃지만, 영화의 막이 내린 후 찾아오는 나름의 철학과, 나름의 이야기와, 나름의 감동을 좋아한다. 〈지구를 지켜라!〉는 우리나라 B급 코미디의 대표 격인 영화다. 내가 5편 중 이 영화를 고른 이유는, 내 골을 총 세 번 때렸기 때문이다. 어이가 없어 골이 울렸고, 영화 속에서 병구가 물리적으로 골을 때렸고, 표면과 달리 마냥 웃어넘길 수 없는 내용이 골을 때렸다. 누가 나에게 그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너는 겉으로는 명랑하지만, 속으로는 빠그러진 영화나 캐릭터를 좋아하는 것 같다고. 〈지구를 지켜라!〉는 그런 내 취향을 관통한 영화였다.

저 혹시 고향이… 안드로메다 아니십니까?

길을 지나다 누군가에게 이런 질문을 듣는다면 벙찐 얼굴로 예? 되묻는 것밖에 못 할 것이다. 내가 지금 들은 것이 안드로메다가 맞는지, 이 사람은 혹시 미X놈인 것인지. 어딘가 돌아있는 맑은 눈에 대답을 망설이면, 어느새 어딘지도 모를 곳으로 끌려가 꽁꽁 묶여있을지도 모른다. 축하한다. 외계인들에게 대항하여 지구 방위대를 자처하는 병구에게 딱 걸렸다.

 

병구가 펼치는 논리는 21세기를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받아들이기 어렵다. 우리와 똑같이 생긴 외계인이 지구를 위협한다니, 또 이들이 머리카락으로 소통하고, 이를 막기 위해서는 때밀이로 빡빡 벗겨낸 피부에 물파스를 문질러야 한다는 소리를 어떻게 믿겠는가. 관객들은 병구에게 잘못 걸린 강 사장을 불쌍히 여기거나, 혹은 그러게 평소에 인생 좀 잘 살지 그랬냐며 혀를 쯧쯧 찰 뿐이다.

 

그러나 병구에게 다가갈수록 모든 행위를 단순히 미친 사람의 기행으로 보기는 어려워진다. 이는 병구의 불행한 삶과 연결되어 있다. 작은 우산은 어머니와의 어릴 적 추억인 동시에 아버지의 죽음이 되며, 내내 참다 어머니를 지키기 위해 반격한 행동은 또 다른 억압이 되었고, 무력함에 여자친구를 지킬 새도 없이 잃었고, 어머니는 일을 하다 약품 중독으로 쓰러졌으니 말이다. 

 

이처럼 강만식 사장이 스치듯이 언급하는 병구의 여자친구나 엄마의 이야기는 그가 강만식을 고른 것이 우연은 아님을 시사한다. 그의 불행은 어떤 이들과 연관되어 있다. 폭력을 행사하고 모욕을 주던 친구들과 선생님, 곤봉을 휘두르던 교도관, 여자친구를 폭행하던 구사대, 쓰러진 어머니와 노동자를 나 몰라라 하던 강만식까지. 

 

이들을 만난 병구가 ‘외계인 사냥’에 집착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지구에는 ‘인간의 탈을 쓰고 어떻게 그런 짓을 하냐’는 말이 있다. 폭력과 멸시를 일삼던 이들이 같은 인간이 아니라, 인간의 탈을 쓴 외계인이라면 이해하기 쉬워진다. 그때부터 그들은 그저 지구를 지키기 위해 척결해야 할 대상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그의 지구-지키기는 지구라는 큰 공간보다는 작은 개인을 지키는 데 더 가까워 보인다. 

 

한 꺼풀 남은 주변의 인물을 지키기 위해 강만식을 고문하여 얻어낸 것은 일어나지 못하는 어머니를 살릴 수 있다는 해독제다. 그렇게 병구가 달려가던 틈을 타 그의 일기를 통해 모든 일을 알게 된 강만식은, 끝끝내 어머니까지 잃고 독기로 가득 차 돌아온 아들에게 자신이 외계인임을 자백한다.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를 떠올리게 만드는 ‘지구의 역사’는 외계인 75대조 선왕에서부터 시작한다. 지구가 마음에 든 선왕은 실수로 공룡을 멸종시킨 후 자책하며 스스로를 본뜬 실험 인간을 만들었지만, 이 실험 인간은 더 강해지고자 하는 탐욕과 이에 비롯한 ‘공격성’으로 실패한다. 그렇게 다시 유인원에서부터 시작한 현생 인류는 강만식에 따르면 여전히 공격성을 잃지 못하고 서로를 학대한다.

“너희들은 정상이 아니야! 미쳤어! 

이 우주 어디에도 니들처럼 같은 종족을 학대하고, 

그걸 즐기는 생물은 없어!”

강만식의 말처럼 가끔 그런 생각을 해보곤 한다. 인간이 가장 학대하는 존재는 같은 인간이 아닐까 하는. 서로에게 스트레스를 주는 것을 넘어 그걸 즐기기도 하고, 가차 없이 폭력을 저지르고, 이에 그치지 않고 자기 자신까지 학대하니 말이다. 한 발짝만 서로 양보하면 평화롭고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을 것인데, 욕망에 불타 자기 자신 외에는 안중에도 없고 자신보다 아래라고 생각하는 이들을 학대하는데 서슴지 않는다.

 

인간의 탐욕과 이기심, 공격성은 극 중 경찰을 통해서도 나타난다. 이 반장과 그 부하들은 사건의 범인이 누군지에는 전혀 관심이 없어 보인다. 사회에서 영향력 있는 강만식 사장을 찾아 그에게 잘 보일 생각밖에 없고, 지목한 용의자가 진짜인지 아닌지 상관없이 머리부터 때리고 볼 뿐이다. 마침내 피 웅덩이의 병구, 순이를 마주한 경찰들이 표정에 미동도 없이 강만식만을 챙기던 장면은 이들도 외계인이 아닌지 의심하게 만든다.

 

병구 역시 이런 특성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래서 그의 행동이 면죄부를 얻을 수 없기도 하다. 자신의 사명인 지구-지키기를 위해 순이를 이용하고 상처 준 것이나, 외계인이 아닌 추 형사를 죽이고, 강아지에게 ‘외계인 고기’를 먹인 것과 같이. 정말로 그가 하고자 하는 일이 개인적인 복수가 아니라 외계인에 대항하여 지구를 지키는 일이었다면, 잘잘못과는 별개로 지구를 살아가는 생명체는 모두 보호 대상이어야 하지 않겠는가.

 

강만식이 정의한 ‘인간의 특성’은 그들의 창조주 격인 외계인의 모순을 보여주기도 한다. 같은 종족을 학대하는 게 인간밖에 없다던 그의 말은 참으로 아이러니하게 들린다. 강만식은 아랫사람들을 괴롭히는데 아무런 죄책감을 가지지 않았고, 본연의 모습이자 왕자의 지위로 돌아갔을 때도 자연스럽게 신하를 때린다. 이런 행동들로 미루어보아 인간들은 창조주의 특성까지 닮았다고 보는 게 자연스러울 것이다.

한편 강만식의 정체가 밝혀지면서 그저 불행한 삶에 정신이 나가버린 것이라 여겨졌던 병구는 다시 숙제로 남는다. 과연 병구는 외계인들이 정말로 지구에 있음을 알았던 것일까? 혹은 개인적인 복수에서 시작한 지구-지키기로 진짜 외계인을 잡아버린 걸까? 그러나 그의 삶이 불행함을 증명하듯 지구를 지킨다며 했던 일들은 지구와, 인간과, 그 모든 것들을 다 날려버리는 도화선이 되었다.

 

이제 인간에게 두 번째 기회는 주어지지 않는다. 서로를 학대하고, 병구와 같은 동족을 외면하던 인간은 모두 재가 됨으로써 자신을 뉘우칠 기회조차 잃어버렸다. 그러나 영화는 스크린 밖 관객에게 여지를 남긴다. 인간들에게 자신의, 나아가 모두의 지구를 지키기 위해 해야 할 일은 무엇인지 다소 철학적인 질문을 남기면서 말이다.

230406_유안 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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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때리는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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