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탠 바이 미, 🛤️ 선연한 시절로 파고드는 길 🛤️

롭 라이너, 〈스탠 바이 미〉

캐슬록에 사는 크리스, 고디, 테디, 번은 실종된 12세 소년의 시체를 찾아 나선다. 마을의 영웅이 되겠다는 다짐을 갖고 떠난 네 소년은 미지의 숲을 헤매며 삶과 죽음, 숨 막히는 세상과 다가오는 운명에 대해 깨닫는다. 철로를 따라 걷는 소년들의 하루는 거칠고 엉뚱하고 위험하지만, 솔직하고 순수하고 서정적이다.

🛤️ 선연한 시절로 파고드는 길 🛤️

크리스는 거길 벗어났다. 나와 함께 대학 진학반에 입학했다. 힘들긴 했지만 언제나 그랬듯 이겨냈다. 크리스는 대학도 가고 변호사가 되었다. 지난주 그는 패스트푸드 식당에 갔다. 그의 바로 앞에서 두 사람이 시비가 붙었다. 그중 한 명이 칼을 꺼냈다. 크리스는 항상 그랬듯 두 사람을 말리려고 했다. 그는 목을 찔려 거의 즉사하다시피 했다.

리버 피닉스와 크리스 챔버스, 스러진 두 인물의 서사가 뒤엉키며 마음 한 구석을 괴롭히는 영화 〈스탠 바이 미〉는 시체를 찾아 떠난 네 소년의 하룻밤 여행을 담았다. 노동절 주말에 뜨겁게 내리쬐는 햇볕이나 지독한 갈증, 녹음이 우거진 숲길과 이마에 맺힌 땀방울 등의 이미지는 이 영화가 완벽한 여름 로드 무비임을 자랑한다. 하지만 영화 곳곳에 떠다니는 죽음의 감각 탓에 우리는 너무도 서늘하고 잔인한 운명의 진실을 떠안기도 한다.

 

오리건주의 작은 마을 캐슬록에 사는 크리스, 고디, 테디, 번 네 명의 소년은 레이 브라워의 시체를 찾아 길을 나선다. 이들과 또래였을 레이 브라워는 며칠 전 블루베리를 따러 나갔다가 (아마도) 기차에 치여 죽었다. 형이 시체를 발견했다는 사실을 우연히 엿들은 번이 이야기를 전하면서, 시체를 찾고 신문에 실려 레이 브라워 사건의 영웅이 되겠다는 소년들의 모험이 시작된다. 그래서 〈스탠 바이 미〉는 죽음을 꿰뚫는 모험을 떠나는 이야기이다. 아니 정확히는, 모험을 회상하는 이야기이다. 크리스 챔버스의 죽음을 다룬 기사를 읽는 고디 라챈스의 회상이 영화의 시작이기 때문이다.

1박 2일의 짧지만 긴 여정을 위해 떠나온 아이들의 차림은 아주 단출하다. 한쪽으로 멘 수통이나 움켜쥔 담요, 그리고 자신은 머리가 짧아 필요 없지만 친구들을 위해 챙긴 작은 빗 정도가 이들이 가진 짐의 전부이다.

 

가벼운 몸으로 출발한 걸음엔 크고 작은 사건들이 차이는데, 소년들의 삶의 파편을 제시하는 일련의 사건들에서 가족의 학대나 방임, 망가진 가정에서 겪는 소외감이 일렁인다. 퇴역군인 아버지를 존경하는 테디는 사실 아버지에 의해 오븐에 귀가 짓눌려 죽을 뻔한 적이 있다. 소심함 때문에 놀림받는 번은 가정폭력에 노출되어 있으며, 알코올 중독 아버지에게 학대받는 크리스는 ‘챔버스 가족’이라는 낙인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고디는 형의 죽음 이후 자신을 투명인간 취급하는 부모와 살아간다.

 

이들은 일상에서 슬픔과 비극에 시달리지만, 여전히 엉뚱하고 과격한 초등학생 소년들이다. 작은 일로 다투고, 또 금방 화해하고, 겁도 없이 달리는 기차에 마주 섰다가, 얼마나 깊은지도 모르는 물에 풍덩 뛰어들기도 한다.

 

이틀간의 여정에서 가장 사소하지만 동시에 가장 소중한 장면은 바로 캠프파이어 장면일 테다. 남은 삶 동안 하나의 음식만 먹어야 한다면 체리 맛 사탕이라는 확고한 입장, 미키 마우스 ‘구피’ 캐릭터의 정체에 관한 진지한 논의, $64,000 퀴즈 쇼는 짜고 하는 거라는 의혹. 이런 가벼운 잡담의 끝은 크리스와 고디가 나누는 내밀한 이야기로 이어진다.

크리스는 우윳값을 훔쳤지만 돈을 가져가지는 않았다. 훔친 돈을 선생에게 돌려줬으나 오히려 배신당했다. 자신이 어떻게 우윳값을 훔친 도둑이 되었는지 이야기하는 12살 소년은 세상이 (특히 자신에겐 더욱) 부당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걸 고백하며 무너질 때, 자신은 챔버스 꼬마일 수밖에 없고 그래서 아무도 자신을 모르는 곳으로 가고 싶다며 눈물을 터뜨릴 때면 언제나 내 마음 한구석도 망가지는 기분이다.

 

넌 재능이 있으니 언젠가 작가가 될 거라는 크리스의 말, 함께 대학 진학반에 가자는 고디의 말. 그 말을 들은 고디는 작가가 되었고 크리스는 대학에 가서 변호사가 되었다. 자신들을 무시하는 아버지 혹은 가족으로부터 도망쳐 부당하게 남은 삶을 고민하는 이들에게 서로는 꼭 필요한 존재이자 자아를 드러낼 수 있는 친구였다.

Do you think I’m weird?

Definitely.

No, man, seriously. Am I weird?

Yeah, but so what? Everybody’s weird.

내가 괴짜 같아?

당연하지.

농담 말고. 내가 괴짜야?

그래서? 다들 괴짜잖아.

크리스와 고디가 나눈 ‘이상함’에 대한 대화를 짚고 싶다. 툭하면 투닥거리는 번과 테디가 웬일로 행복하게 롤리팝을 부르며 지나간 뒤 심란한 표정으로 대화를 나누는 두 초등학생이라니. 귀엽고 애틋해서 자꾸 웃음이 났다. 이상한 게 뭐 어떻냐는 말에 기꺼이 이상한 아빠가 된 고디는 그의 자식으로부터 똑같은 말을 듣고 웃는다. “우리 아빠는 이상해. 글을 쓸 땐 늘 저래.”

겨우 이틀 만에 돌아왔는데 마을이 달라보였다. 작아보였다.

영웅이 되고 싶은 기대와 신문에 실릴 수도 있다는 호기심에 떠난 여행이지만 아이들은 빈손으로 돌아왔다. 시체를 가져가지 않고 담요로 덮어준 뒤에 익명으로 제보했다. 레이 브라워는 왜 죽었을까? (Why did you have to die?)

 

그 죽음이 발견된 데엔 어떠한 공(功)도 없었다. 소년들은 한 발 한 발 걸어온 모험의 끝에서 자동차를 타고 온 에이스 무리에게 총을 겨눠 어른들을 몰아낸다. 하지만 겨눈 총이 무색하게도 그 애틋한 기억/감정/추억은 끔찍한 현실 혹은 잔인한 진실에 자리를 내어주게 된다. 각자의 집으로 돌아간 뒤 간결하게 얹어지는 내레이션은 앞으로의 운명을 전해준다.

 

누군가는 가정을 이루고 누군가는 죽고 누군가는 감옥에 갔다. 세월이 지나면서 소식은 뜸해지고 각자의 삶을 살게 됐다. 서로의 전부인 것 같았던 친구들은 인생에 잠깐 나타났다 사라진 최고의 순간이었을 뿐이다. 운명은 선로를 따라 나를 잡아먹을 듯이 달려오는 기차와도 같다. 밖으로 몸을 던져 잠시 피할 수는 있지만 다시 철로로 돌아가야만 한다. 우리는 다음 열차 시간을 알게 되었을 뿐이다. 이렇게 영화를 보고 나면, 그 찬란한 여름날의 순간은 덧없는 것인가 하는 삐딱한 마음이 비죽 솟는다.

 

으레 성장영화라면 어린 시절을 뒤로하고 나아가야 할 것 같지만 〈스탠 바이 미〉는 점점 그 시절, 그 순간에 머물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죽음으로 시작해 죽음으로 파고들고 끝내 죽음으로 끝나는 이야기 때문인지, 12살 때 만난 친구들만 한 친구를 만나지 못했다는 고디의 마지막 문장 때문인지. 영원한 그리움을 갖고 12살의 그때로 영원히 회귀하는 것만 같다.

 

그래서 나쁘다는 말을 하려는 것이 아니다. 뿔뿔이 흩어져 각자 다른 일을 하며 서로의 소식도 모르고 살지만 그때의 모험과 그때의 친구들은 계속 캐슬록에 있다. 고디(혹은 스티븐 킹)가 책까지 써가며 두고두고 곱씹을 한구석이 남았다. 영화의 소년들에게도 나에게도, 이 이야기는 이렇게 계속 남아 있다. 그것뿐이다.

크리스를 못 본 지 10년이 넘었지만 나는 그를 영원히 그리워할 것이다.

230615_세림 보냄.

“스탠 바이 미, 🛤️ 선연한 시절로 파고드는 길 🛤️”의 2개의 댓글

  1. 영화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인물은 크리스 챔버스였어요. 돈을 훔쳐가지 않았는데도, 심지어 용감하게 자신의 잘못을 시인했는데도 억울함을 털어놓지 못하고 오히려 자신의 처지를 깨닫고마는 그 남자 아이요. 모두의 어린 시절에 크리스같은 아이들이 있었을 거라 생각합니다. 학교와 선생님의 권위에 맞설 능력이 없는 힘없는 아이들, 반항과 폭력으로 존재감을 확인하는 아이들, 그러면서도 동시에 “나도 아버지나 형처럼 살게 되겠지”라는 생각으로 일찍이 좌절과 한계를 배우는 아이들이요.

    그날의 연약한 크리스는 공부하고 대학을 가서 변호사라는 직업을 가지는 방법으로 자신의 챔버스 가족과 마을의 영역에서 벗어났어요. 근데! 결국 친구인 주인공 고디의 말을 통해 허무하게 죽어버렸어요. 저는… 세림님처럼 삐딱한 마음으로 그 죽음에 대해 생각해봤고 결국에는 영화가 개인의 성공으로는 해소되지 않는 문제에 대해 남기고 싶었던 게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변호사가 된 크리스도 있지만, 여전히 그 마을에서 ‘챔버스’로 살아가는 크리스들이 더 많이 존재하는 세상이잖아요. 쓰면서 저도 모르게 암울해졌어요… 영화일 뿐이니까!로 웃어 넘기고 싶은데 자꾸 더이상 이 세상에 없는 크리스와 리버 피닉스의 모습이 아른거리네요.. 1986년 영화라 더 아련하고 맘에 콕콕 박히는 것 같아요. 이 영화를 골라줘서 세림님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글 잘 읽었습니다. 파이팅!💚

  2. 마음 한 구석에 생채기이자 눈부심으로 남겨두게 될 소년들의 성장담이라는 점에서 얼마전 본 영화 〈클로즈〉가 함께 떠올랐어요. 그래서 더 아리게 잔상이 남는 편지였어요. 영원히 회귀하고야 말 유년의 조각을 “이렇게 계속 남아있다. 그것뿐이다.” 라고 맺으실 때 감상을 남겨야지, 다짐하게 되었네요. 더없이 명료하고 적확한 마무리였다는 생각이 들어요. 아름다운 편지에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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