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영화를 처음 만난 게 2021년 여름이었을 것이다. 마스크 착용과 사회적 거리 두기에 익숙해져 극장보다 OTT 플랫폼을 떠돌다 만난 보석 같은 영화였다. 그즈음의 나를 좀 더 떠올려보자면, 여담 프로젝트의 초석을 다지다 첫 글을 발송했고, 학기말 페이퍼와 시험이 몰아쳤고, 향후 몇 년의 계획(3년 가까이 지난 지금 대부분은 이루어지지 않음)을 세우며 끙끙댔다. 개봉작은 뜸하고 극장에 가도 옆자리는 막혀 있는 상황임에도 매주 수요일이면 영화를 보러 나갔고, 전주에 며칠 내려가 있기가 부담스러워 당일치기로 영화제 상영작 한 편을 보고 돌아왔다.
이 영화를 다시 만난 건 2023년 8월 28일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서였다. 정확히 말하자면 커스틴 존슨의 〈카메라퍼슨〉을 보고 2년 전의 기억을 더듬으면서였다. 〈딕 존슨이 죽었습니다〉에서도 몇 차례 언급되듯, 딕 존슨의 아내이자 커스틴 존슨의 어머니인 캐서린 조이 존슨은 알츠하이머를 앓다가 2007년 사망했다. 커스틴은 어머니와 함께한 짧은 영상 위로 “난 30여년간 다큐멘터리를 찍었지만 내가 소장한 엄마 영상은 거의 이게 전부다.”라는 내레이션을 얹는데, 이날 촬영한 기록의 일부는 〈카메라퍼슨〉에서도 만나볼 수 있다.
〈카메라퍼슨〉(2016)
그 장면을 보면서 생각했다. ‘아, 이 사람 아버지의 죽음에 관한 멋진 다큐멘터리를 만들었었지.’ 죽음은 망자의 것이지만 그를 둘러싼 모든 것은 남은 자들의 것이다. 이 영화도 결국 살아 있는 사람들을 위한 것이다. 커스틴은 아버지의 죽음을 받아들일 수 없어서, 그의 죽음에 관한 영화를 제작해 아버지가 영원히 살 수 있도록 하려 한다. 알츠하이머로 가족을 떠나보내는 일을 경험한 뒤 아내와 같은 병에 걸린 딕을 위해, 어머니의 영상을 많이 찍어두지 않은 아쉬움이 남았을 감독 본인을 위해.
그렇게 ‘딕 존슨의 죽음’이라는 허구의 사건을 다루는 다큐멘터리가 제작된다. 이들은 딕이 죽는 다양한 경우의 수를 예행연습하며 그와의 이별을 준비한다. 영화 속에서 딕은 누군가 떨군 에어컨에 맞아 죽고, 계단에서 굴러떨어져서 죽고, 발을 헛디뎌서 죽고, 공사장 인부가 휘두른 물건에 맞아 죽고, 심장마비로 죽는다. 각각의 장면은 너무나도 현실적이어서 딕 본인마저도 “내가 쓰러졌어!”라며 놀라거나, 피를 쏟으며 죽는 경험이 ‘춥고 무서워서 끔찍했다’고 고백한다. 그리고 그 과정을 모두 지켜본 나 역시, 심장마비로 구급차에 실려 가는 장면 뒤에 장례식이 이어지면 이제는 그가 ‘진짜로’ 죽은 것일까 조마조마한다.
“이게 진짜라고 생각하나 봐”
친한 친구의 죽음은 아직 다가오지 않았을 뿐 분명히 일어날 일이다. 따라서 그의 슬픔과 고통은 너무나도 현실적인 것이다. 나 역시도 때때로 주변인의 죽음을 상상하기 때문에, 교회 한쪽에서 울음을 그치지 못하는 친구의 마음이 서글프게 와닿았다.
영화에서 죽음을 마주했을 때 우리는 주로 약속을 한다. 스크린 속의 사건은 꾸며진 것이고 배우 역시 죽지 않았지만, 내러티브 안에서 저 인물은 죽은 것이라고. 하지만 〈딕 존슨이 죽었습니다〉에선 죽은 딕 존슨이 놀랍게도 다시 일어난다. 영화의 제목을 뒤로하고 일어서고, 커스틴의 말을 따라 팔을 옮겨도 보며 계속해서 살아난다. 영화는 그의 죽음을 믿지 않는다. 영화가 믿는 것은, 어머니가 부른 ‘케 세라 세라’, 아버지와 함께 본 ‘영 프랑켄슈타인’, 할아버지의 86번째 생일을 위해 만든 초콜릿 케이크 등의 기억 조각들이다.
그리고 그 조각들을 녹인 상상력은 딕 존슨의 사후 세계를 상상해 보는 것으로 이어진다. 평온하고 행복해 보이는 딕의 환한 웃음은 고속 카메라를 통해 슬로모션으로 기록된다. 이는 현재를 몇 초 이상 지속하기 힘들어하는 아버지를 위한 선택이었지만, 동시에 지금을 늘려 놓고, 이곳을 확장하고, 불안과 긴장을 지연하는 도구로 사용된다. 그곳엔 버스터 키튼과 이소룡을 비롯한 예술가들과의 만찬, 초콜릿 분수, 딕의 발을 씻겨 주는 예수, 함께 춤을 추는 아내 캐서린이 있다. 이들은 모두 딕 존슨의 현재를 반영한 세상이자 영화가 끝내 믿는 이미지다.
찍고 조립하는 다큐멘터리의 단순한 특성에 빗대어 보았을 때, 〈딕 존슨이 죽었습니다〉는 ‘카메라를 든 사람이 재조립한 딕 존슨의 죽음이라는 명제’라고 요약할 수 있겠다. 영화는 단순히 딕의 ‘죽음 리허설’을 찍는 데에 그치지 않는다. 커스틴의 말마따나 “꾸며내는 것보다 현실이 더 재미있기” 때문이다. 그의 사후세계를 상상하고, (꾸며낸) 죽음을 둘러싼 영화 제작기와 상호작용하며, 딕의 삶과 가족, 친구들을 기억하는 데에 초점을 맞춘다.
중요한 것은 기록 그 너머에 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기록 자체가 아니라 그곳에서 생겨나는 기억과 회고다. 사진과 영상을 찍어뒀거나 일정을 캘린더에 저장해뒀다는 사실이 아니라, 그때의 내가 만든 기억과 지금 떠올리는 감정이 중요하다. 그리고 이건 현실을 포착하고 잘라내는 다큐멘터리 영화가 가장 잘 하는 것이기도 하다.
딸은 아버지를 영원히 살 수 있게 만들었고 아버지는 딸과 함께할 시간을 벌었다.
딕 존슨은 죽었지만,
아니.
딕 존슨은 영원히 살아 있다.
| 수많은 죽음과 행복한 장례식까지 기록한 뒤, 영화가 처음 공개되고 오늘의 여담을 쓰기까지 딕 존슨은 죽지 않았다. 그는 치매 요양 시설에서 지내고 있으며 커스틴은 매달 그를 방문한다고 한다.
이번 딕 존슨 다큐도 좋았는데 글도 너무 좋았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