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다발 같은 사랑을 했다, 💐 추억을 마음 속에 묻어두고 가끔 꺼내 보아요 💐

💐 추억을 마음 속에 묻어두고 가끔 꺼내 보아요 💐
도이 노부히로, 꽃다발 같은 사랑을 했다

여러분은 ‘인연’을 어떤 것으로 생각하시나요? 생각보다 사람들은 살아가면서 ‘인연’이라는 단어를 자주 사용하는 것 같습니다. 내가 상대방과 잘 통한다고 느껴질 때, 혹은 제삼자의 입장에서 잘 통하는 사람들을 볼 때, “인연이네.” 하는 말을 농담처럼 쓰기도 하죠. 저에게도 인연은 무거운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저 내 소중한 사람들을 인연으로 여기고, 나와 안 맞는 사람들을 인연이 아니라며 쿨하게 떠나보낼 수 있는 것. 저에게 인연은 그 정도의 의미였어요.

 

‘인연’의 사전적 정의는 ‘사람들 사이에 맺어지는 관계’, ‘어떤 사물과 관계되는 연줄’, ‘일의 내력 또는 이유’입니다. 즉 사람과 사람 사이의 연뿐만 아니라 한 사람이 이 세계에서 맺고 있는 모든 연을 ‘인연’이라고 할 수 있죠. ‘인연’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하면서 저의 정의는 더 복잡해졌습니다. 과연 인연이란 무엇일까. 어떤 관계를 인연이라고 정의할 수 있을까? 소중했던 관계라도 연이 끊겨버리면 그것은 인연이 아닌 걸까? 인연의 기준은 무엇일까? 등등. 그리고 이런 저의 ‘인연’에 대한 복잡한 생각들 속에서 영화 〈꽃다발 같은 사랑을 했다〉가 떠올랐습니다.

주인공인 무기와 키누는 21살의 대학생입니다. 이 두 사람의 인연은 막차가 끊기면서부터 시작됐죠. 무기와 키누는 처음 만난 사이임에도 누가 봐도 “너희 인연이네.” 할 수 있는 사이처럼 보입니다. 평범하면서도 특이한 취향을 가진 무기와 키누는 아마 서로가 마음껏 취향을 터놓을 수 있고, 공감할 수 있는 상대였을 것입니다. 그렇게 둘은 연인으로도 발전하죠.

 

무기와 키누의 연애는 순탄해 보입니다. 같이 좋아하는 책을 읽고, 좋아하는 영화를 보고, 서로의 감상을 나누고. 우리가 말하는 이상적인 연애처럼 보이죠. 하지만 현실은 그들을 꽃밭에만 두지 않아요. 무기와 키누는 사회인으로서도 살아가야 합니다. 키누는 구직 활동을 해보지만 압박 면접에 시달리며 좌절합니다. 일러스트를 그리는 무기도 정당하지 않은 대가에 점점 힘들어지죠. 무기와 키누는 현실과 타협해 점점 하나씩 포기하기 시작합니다. 키누는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다 결국 전혀 다른 일을 시작하고, 무기도 일러스트를 그만두고 구직 활동을 시작하죠.

 

그렇게 키누는 직장에서 점점 자리를 잡아가고, 무기도 영업직으로 작은 회사에 합격합니다. 취직에 성공한 무기가 키누에게 말하죠.

“僕の人生の目標は、絹ちゃんとの現状維持です.”
“내 인생의 목표는 키누와의 현상 유지야.”

이 영화를 보면서 처음에는 무기가 키누와의 현상 유지에 실패했다고 생각했었습니다. 키누가 현실에 타협하면서도 본인이 좋아하는 걸 놓지 않고 간직하며 계속해서 새로운 것들에도 도전하는 데에 비해, 무기는 점점 좋아하는 것을 잃어가고, 결국에는 이마무라 나츠코의 ‘소풍’을 읽어도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이 되었으니까요. 하지만 다시 한번 영화를 보면서 무기가 현상 유지에 실패한 것이 아니라 무기와 키누의 ‘현상 유지’가 달랐던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키누에게 현상 유지는 무기와 예전처럼 좋아하는 것을 나누며 힘들더라도 즐겁게 사는 것임에 비해, 무기에게 현상 유지는 키누와의 앞날을 생각해 앞으로도 함께 있을 수 있도록 더 안정적인 삶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었을까요.

 

저는 처음에 키누에 이입해서 영화를 봤었어요. 저 역시도 싫은 것은 하기 싫은, 힘들어도 즐겁게 살고 싶은 사람이라서 그랬던 것 같습니다. 같은 여성으로서 여성에게 공감되는 점도 있고요. 그런데 이 영화를 재밌게 봤던 지인과 이야기를 하면서 보는 관점에 따라 영화를 이해하는 방식도 다를 수 있구나 하는 것을 깨달았어요. 지인은 저에게 본인이 키누나 무기였다면, 무기와 같은 선택을 했을 것이라고 말해주었습니다. 키누처럼 이상적인 것도 좋지만 현실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무기와 같은 선택을 해야 할 것 같다고요. 여러분은 어떠신가요? 여러분이 〈꽃다발 같은 사랑을 했다〉 속 인물이라면, 무기인가요 아니면 키누인가요?

무기와 키누는 누군가가 평생의 인연을 약속하는 날, 서로와의 인연을 끝내기로 마음먹습니다. 관람차에 앉아 첫 만남의 이야기를 나누고, 드링크 바에서 그동안의 추억을 되돌아보죠. 그렇게 이제껏 걸어온 발자취를 따라가며 굳게 먹은 마음이 흔들리게 됩니다. 무기는 키누에게 다시 한번 잘해보자 설득하고, 강경하던 키누도 마음의 동요가 생기죠. 그러나 그때, 무기와 키누는 예전의 본인들과 꼭 닮은 어린 인연 한 쌍을 보게 됩니다. 심지어 그들은 두 사람이 처음 만났던 그 자리에 앉아, 똑같은 이야기를 주고받고, 똑같은 행동을 하죠. 그러면서 무기와 키누는 깨닫게 됩니다. 그때와 달리 너무 많은 것이 변했다는 사실을요.

하지만 무기와 키누는 헤어지고 난 후 의도치 않게 동거를 계속하게 되면서 다시 얼굴을 마주 보며 밥을 먹고, 같이 버블티를 마시고 TV를 보면서 웃기도 하죠. 서로에게 못 했던 이야기들도 터놓습니다. 저는 두 사람이 연인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가지고 있던 부담감을 내려놓으니 다시 이전의 “인연이네.”라고 할 수 있던 무기와 키누로 돌아간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시간이 지나 서로에게 새로운 사람이 생긴 뒤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오프닝 장면이기도 한 둘의 재회 장면은 너무나 무기와 키누스럽고, 둘의 인연이 끊기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장면이라고 생각해요. 둘만이 알고 있는 평범하지 않은 추억에서 비롯한 재회니까요.

 

무기와 키누가 연인으로 발전한 것에 아쉬움도 남습니다. 만약 둘이 연인이 아닌 친구로 만나 계속 함께했다면 어땠을까요? 그럼 지금도 같이 좋아하는 작가와 책을 이야기하고, 좋아하는 노래도 같이 부르고, 좋아하는 것들에 대한 느낌을 공유하고 있지는 않을까요? 무기와 키누의 관계는 인생에서 마주치기 어려운 ‘인연’이라고 생각해요. 너무나 다르고 다양한 사람들 속에서, 우리가 ‘좋아하는 것’을 공유할 수 있는 인연은 생각보다 많지 않습니다. 그것도 A부터 Z까지 모두 공유할 수 있는 사람은 더더욱 찾기 힘들죠. 무기와 키누의 ‘연인’이라는 관계는 깨졌어도 같이 좋아하고 공유하던 것을 보면 서로의 생각이 나고, 서로의 느낌을 궁금해한다는 점에서 둘이 더는 함께하지 않아도 ‘인연’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무기와 키누가 다시 만날 것인가에 대한 관객들의 의견이 분분한 것 같더라고요. 저는 개인적으로 무기와 키누가 다시 만나지 않을 것 같아요. 서로가 인연인 것과 다시 연인이 되는 것은 별개라고 생각합니다. 가끔은 추억으로만 묻어두는 것이 인연을 이어갈 수 있는 방법이 아닐까 싶어요. 영화를 보신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과연 무기와 키누는 엔딩크레딧이 올라간 후에 다시 만날 수 있을까요?

〈꽃다발 같은 사랑을 했다〉가 재밌는 점은 이 영화에 나오는 모든 책과 유명인, 노래들이 진짜라는 것이에요. 무기와 키누가 대화를 트게 되는 계기인 오시이 마모루도 실제 인물이고, 좋아하는 작가라고 말한 이시이 신지나 호리에 토시유키, 이마무라 나츠코 역시 모두 실제 작가입니다. 무기와 키누가 드링크 바에서 마주친 점원 포린도 실제로 Awesome City Club의 멤버이죠. 2015년에 처음 만난 무기와 키누에게 포린이 추천해주는 러브송 Lesson도 실제로 2015년에 발매된 곡이고요. 영화의 이런 디테일들이 영화를 더 재미있게 느끼게 해주면서도, 제가 일본 문화를 많이 모르는 것에 대해 아쉬움을 느끼기도 했어요. 만약 제가 일본 문학이나 노래, 영화, 게임을 잘 아는 사람이었다면 영화를 더 재미있게 즐길 수 있었겠죠?

 

이 영화의 각본가는 일본에서 유명한 드라마 작가인 사카모토 유지입니다. 저는 사카모토 유지의 팬이에요. 그래서 처음 이번 주제가 결정됐을 때부터 이 작가의 작품들이 떠올랐습니다. 그의 작품들을 볼 때마다 평범하면서도 미묘하고 특이한 인연들을 잘 표현한다고 느꼈거든요. 이 영화를 재미있게 보셨다면 이 작가의 다른 작품도 추천해드리고 싶습니다. 제가 가장 추천하는 작품은 올해 방영한 〈오오마메다 토와코와 세 명의 전남편〉이에요. 이외에도 한국에서 유명한 작품으로는 이보영 배우로 리메이크되었던 〈마더〉나 영화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를 들 수 있을 것 같네요.

저는 이 영화를 여름에 보았는데, 날씨가 쌀쌀해지면서 이따금 생각이 나더라고요. 영화는 큰 요동 없이 잔잔하게 흘러가지만 그래서 더 큰 여운을 주었던 것 같습니다. 저에게 이 영화는 말 그대로 가벼운 여담을 나누고 싶은 영화예요. 쌀쌀한 날씨에 따뜻한 듯 미지근한 〈꽃다발 같은 사랑을 했다〉를 보면서 여러분과 이야기를 나누어보고 싶어요.

211118_유안 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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