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레이션] 🎁 여담의 여담 : 지난 1년 돌아보기 🎁

회의 시간에 글을 나누다 보면 상대의 글에 깊이 개입하기보다는 좋았던 점을 나누는 감상회가 되어버릴 때가 많습니다. 저도 감상만 잔뜩 늘어놓은 회의가 끝나면 ‘도움은 안 되었겠다’는 후회 섞인 회고를 안고 집으로 돌아오곤 하는데요. 그런 제가 여담에서 처음으로 다른 의견이랄 것을 제기해 보았던 게 바로 이 글이네요. 돌이켜 보면 여름의 저는 “솔직하게 클리셰를 밟는” 만복의 선택도 결국 영화니까 가능한 것 아닌가, 하는 삐딱한 생각을 갖고 있었어요.

[노력에도 끝이 있다]를 다시 만난 것은 지난 연말, 여담의 첫 책을 만들기 위해 교열을 볼 때였습니다. 봐도 봐도 수정사항은 남아 있었고, 며칠 동안 하루 두 번씩 22편의 글을 훑어야 했죠. 반복적인 작업에 지쳐가던 어느 새벽, 저는 이 글에서 멈칫하게 되었습니다. 찬찬히 단어 하나하나를 다시 살피니 글이 첫인상과는 사뭇 다르게 느껴졌어요. 여름의 우리는 “잘 걷는 법을 알려주는 영화”라는 설명답게 경쾌한 매력을 가진 글이라는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다시 마주한 글은 그보다 더 어려운, ‘잘 멈추는 법’에 대해서도 이야기해주고 있었습니다.

“출퇴근 시간 지하철에서 누군지도 모를 사람들에게 떠밀려 강제로 걸어보신 경험이 있으신가요. 걷는다는 자각도 없이, 오늘의 일정이나 불투명한 미래를 생각하며, 혹은 몇 걸음 앞서지 못한 자신을 책망하며. 그러다 내딛는 걸음걸음이 너무도 무겁게 느껴지는 날이 오면, 잠시 비켜서서 멈춰 보세요. 바쁘게 나아가는 사람들은 그대로 두고 두 다리를 땅에 단단히 고정해버리는 겁니다. 노력하지 마세요, 멈춰도 괜찮습니다.“

일일 평균 5,367걸음을 걷는 동안 생각에 잠겨 있느라 내 걸음 하나 살피지 못하고, 지각을 면하기 위해 급히 달려가다 넘어지기 일쑤인 저는, 몇 번을 읽어도 이 마지막 문장에 오래 머물게 됩니다. 세림의 글을 읽고 있으면, 깨끗한 책상 위에 종이를 한 장 꺼내 깔끔하게 깎은 연필로 써 내려간 편지를 읽는 기분이 들어요. 그건 단지 꼭 맞는 단어를 찾기 위해 고심한 흔적이 곳곳에 드러나기 때문만은 아닐 거예요. 아마도 세림이 스러지기 쉬운 순간이나 기억, 삶 같은 것들을 소중하게 품어 두었다가 글에 꺼내놓았기 때문이지 않을까 짐작해 봅니다. 그렇기에 이 문장들은 “종이 위에 영원토록 남아 일렁일 글자들”(애플, 🍎 기억하겠다는 낯선 다짐 🍎)처럼 마음을 움직이면서도 단단함을 지니고 있어요.